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애리 Jan 24. 2018

삽질의 기술

삽질하기에 관한 인문학적인 한담(閑談)

삽-질[-찔]  「명사」
1. 삽으로 땅을 파거나 흙을 떠내는 일.
2. 별 성과가 없이 삽으로 땅만 힘들게 팠다는 데서 나온 말로, 헛된 일을 하는 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


모모로 유명한 작가 미카엘 엔데의 환상 동화 <끝없는 이야기> 는 책을 읽던 중 그 속으로 들어가서 모험을 하게되는 바스티안 발타자르 북스라는 소년의 이야기이다.


바스티안이 읽는 환상계에 관한 그 책에는 '아트레유'라는 소년이 나온다. 그는 병들어가는 어린 왕녀를 구하기 위해서 약을 찾기 위해 환상계를 떠도는 모험을 떠난다. 친구처럼 아끼던 말도 잃고 상처투성이가 되어서야 그는 어린 왕녀에게 다시 돌아와 보고를 한다. 임무는 실패였다고. 어린 왕녀와 함께 환상계도 사라질 것이라고.


그러나 어린 왕녀는 오히려 웃으면서 그녀는 아트레유가 겪은 모든 모험의 과정을 이미 알고 있었고 환상계를 구원할 구세주도 이미 오고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을 듣고 속된 말로 '빡친' 아트레유는 어린 왕녀에게 반문한다. 자신이 했던 모든 일이 쓸데없는 것에 불과했냐고. 그의 심정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제껏 나 삽질한거로군요.

 



인간은 경제적인 동물이다.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했다고 생각하면 화부터 치밀어오른다. 게다가 인간이란 존재가 다른 동물에 비해 기억력은 엄청나게 좋은지라, 그렇게 낭비한 에너지와 시간, 비용을 밤마다 생각하며 이불킥을 하게 된다. 최악의 경우 생존까지 좌우하는 비경제적인 행위라는 것을 배워왔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오래전부터 삽질을 했왔고 현재도 삽질을 한다.  


사냥을 하기 위해 돌을 쌓아서 열심히 덫을 설치해놨는데 이미 매머드 무리가 이동해버린 사실을 알게된 뒤 허탈해진 네안데르탈인부터, 며칠동안 뼈빠지게 파종했던 종자가 범람한 강물에 깨끗하게 쓸려가는 것을 본 호모 사피엔스, 가까이는 에테르라는 가상의 물질까지 생각해내며 우주의 원리를 알아내려고 했더니 결국 우주가 진공이라는 걸 알게 된 19세기의 과학자들까지 인류의 삽질은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다양성의 폭이 넓어졌다.


인류의 위대한 삽질의 전통을 이어받아 나도 지금껏 많은 삽질을 해왔다. 특히 다른 호모 사피엔스에 비해서 삽질하기에 알맞은 능력을 타고난 나는, 날이 갈 수록 세련되어져 가는 헛짓하기의 기술을 몸으로 체득할 수 있었다. 쓸데없는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 없이도 혼자서 소위 '셀프 삽질'을 다양하고도 풍부하게 할 수있다는 점이 나의 최대 특기라고 할 수 있다.


삽질하기의 지평을 넓히는데 가장 필요한 능력은 삽질의 형태만큼이나 다양하다. 그 중에서 산만하고 주변 사물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주의력 결핍은 생각없이 저지르고 보는 행동력과 결합하여 수많은 실수를 낳게 될 것이고 이 실수들은 다양한 헛짓거리들을 가능케 할 것이다. 예를 들어서 수첩과 녹음기와 다양한 질문지를 다 준비해와서는 정작 인터뷰를 하면서 녹음 버튼을 안눌러서 세 시간에 걸친 구술을 날려먹는다거나, 작품 크기를 생각도 안하고 전시공간 벽에 와이어부터 걸어서 결국 처음부터 다시 걸게되는 행위 등이 있다. 공간인지능력의 부족도 필요한데, 이러한 능력은 여행지에서 특히 빛을 발하는데 길을 잃어서 시간과 에너지와 돈을 낭비하는데 큰 기여를 한다. 그 외에도 중력 방정식은 쓸데없이 기억하면서 10분 전에 샀던 물건을 기억못해서 세 번인 더 사는 일상적인 기억 결함이나, 딴 생각을 어찌나 했던지 10분 뒤 출발하는 기차를 놓치고 딴 생각을 하다가 다음 기차를 또 놓치는 몽상가적 기질도 일상 속의 삽질을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 밑거름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특히, 의지력 부족은 이러한 모든 삽질 원인과 결합하여 위대한 삽질을 형성하는 데에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서, 시험 전에 게임을 끊지 못해서, 쓸데없는 것을 기억하기 귀찮아서, 등등 수많은 이유로 지금까지 해온 모든 노력을 헛짓으로 돌리는 삽질에 이르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헛짓을 바탕으로 우리는 위대한 문명을 세웠고 많은 실수에서 배움을 얻을 수 있을 거야, 라고 화기애애하게 결론지었으면 좋겠지만 사실 삽질이 좋은 결과로 귀결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삽질은 인생의 낭비이자 실패인 것은 맞다. 뭐든 의미부여하고 갖다붙이기 좋아하는 인간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을 만들어냈지만 결과가 좋다고 해서 낭비한 시간과 자원이 다시 되돌아오는 건 아니다. 에디슨은 전구를 발명할 당시에 수천번의 실험실패를 통해 결국 알맞은 필라멘트를 찾아낼수 있었다고 했지만, 과학적 사고와 사고실험을 통해서 수천번의 실험을 할 필요가 없다는 테슬라의 말에 따르면 그것도 시간낭비요 삽질이다.




다시 미카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로 되돌아가자면, 자신의 모험이 한낱 쓸데없는 헛짓이었냐고 묻는 아트레유의 질문에 어린 왕녀는 그가 떠난 모험이 어린 왕녀의 병을 고치고 환상계를 구원할 구세주 바스티안이란 소년을 불러 올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대답한다. 바스티안은 아트레유의 모험 이야기를 읽으며 책 속에 점점 빠져들었고 결국 환상계와 만나게 되는 것이다.


지각되지 않는 것은 실체가 없다라고 주장하던 영국의 철학자인 조지 버클리에 따르면 우리는 '신이 꾸는 꿈 속의 존재'다. 그의 말 처럼 내가 경험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 모든 사물과 심지어 나 자신까지도 어떤 허구의 산물이라면, 삽질하기 역시 모든 행위와 마찬가지로 실재할 수 없다. 대신에 그것은 꿈이라는 이야기 속 거대한 문학적 흐름의 일부이며 스토리 전개를 위한 사건이다. 아트레유의 실패한 모험담이 그 이야기 자체로서 서사 바깥의 어떤 존재를 끌어들였듯이 말이다.


삽질하기가 의미를 가지는 것은 그 헛수고를 통해서 어떤 바람직한 결과를 얻기 때문도 아니고,  시간낭비와 감정소모를 통해서 바람직한 인생의 교훈을 얻기 때문도 아니다. 끊임없는 삽질로 점철된 인생이 의미를 가지는 것은 삽질하기 행위 자체를 내러티브의 일부로 받아들였을 때이다. 내가 저지르는 인생의 삽질들이 시간낭비와 실패, 교훈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내 삶의 일부를 부정하는 것이며 그것을 다른 곳으로 이르기 위한 도구로 받아들이는 것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몇주간에 걸친 일련의 삽질하기는, 나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쓰기위한 필수적인 플롯이었다고 믿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병아리콩은 배신하지 않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