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애리 Jun 04. 2018

보다 격렬하게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1

목표 따윈 미뤄놓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데에 엄청나게 공을 들이기

<나를 위한 월든 프로젝트>의 목표는, 무기력을 극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목표를 만드는' 것이었다.


월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나는 (중간에 슬럼프는 있었지만) 조금씩 신체건강을 회복하고, 거의 미립자 수준으로 흩어졌던 멘탈을 추스렸으며, 삶의 싸이클을 다시 찾아나갔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삶을 살아갈 '목표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던 이놈의 월든 프로젝트에서 내가 유일하게 시작도 못한 것이 바로 '목표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월든 프로젝트는 실패다.


나는 '내 삶을 개선하기 위해 목표를 만들겠다'는 최우선의 목표는 놔두고 그 가장자리만 긁어댔다. 결국 내가 1여년 동안 해놓은 것은, '여전히 아무것도 안하고 목표를 만들겠다는 골Goal도 잠시 미뤄놓은 채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데에 엄청나게 공을 들이기'였다.





요즘 나의 일상은 이렇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밥을 먹는다.


요즘 메뉴는 늘 똑같다. 된장국과 밥, 댤갈프라이, 우엉조림과 오이. 된장국은 일주일치를 한 냄비 끓여놓는지라 사실 차리는 데 손은 거의 가지 않는다. 아침을 먹고 나면 늘 입는 똑같은 셔츠와 검은 색 바지를 꺼내입고(그걸 소위 나의 '근무용 유니폼'으로 정했다) 저녁때 딱히 꺼내놓은 게 없어서 아침에도 딱히 뭘 챙길 필요 없는 가방을 들고 현관문을 나선다. 그렇게 일주일에 5일은 회사를 간다.


최근에 저녁때 너무 과식을 하는 것 같아서 아침식사와 저녁식사를 맞바꾸었다. 그래서 저녁 메뉴는 오트밀 스무디이다. 오트밀과 그때그때 손에 잡히는 과일이나 채소를 갈아넣고 만든 스무디로 배를 채운 뒤, 가벼운 운동을 나간다. 달리기는 아니다. 그냥 산책 정도. 절대로 근육에 무리가 가지 않게, 현재의 체중을 유지하면서 잠을 잘 자기 위해서, 정도로만 운동을 한다. 그것도 몸이 쑤시거나 귀찮거나 하면 안하고 만다.


그렇게 나는 일상을 영위한다.


주말에는 친구를 만날 때도 있지만 대도시에 나가는 것은 너무 피곤하고 도까지 나가는 것이 시간낭비인 것 같아서 집에 있는 날이 더 많다. 유일한 화분인 난초에 물을 주고, 이따금씩 윈덱스를 뿌려 창문을 닦고, 복잡하지 않은 요리를 해먹고, 목욕을 하고, 책을 읽고 넷플릭스를 본다. 수면의 질은 무진장 중요하므로 주말에도 늦잠은 되도록이면 자지 않고 세끼를 다 챙겨먹으며 밤늦게 깨어있는 것도 자제한다.





좌절한 세대. 포기한 세대. 거창한 대의가 아닌 소소한 일상을 추구하는 세대.

소확행, 리틀 포레스트, 평범한게 뭐 어때서.


나도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처럼 지나친 경쟁 속에 지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작은 데서 행복을 찾으려고 하는 걸까. 평범한 일상의 싸이클을 되찾으며 안도감을 느끼고 스스로를 치유하고 싶은 걸까.


그런데 그게 뭐 어때서?


나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한다.


사실 월든 프로젝트는 단어에 불과하다. 나는 내 삶을 좀 추스리고 싶었을 뿐이다. 나는 무기력 속에서 몸을 일으키기 위해서 목표가 필요했다. 주저앉은 말을 일으켜세우기 위해서 마부가 채찍질 하듯이 목표를 위해서 나 자신을 몰아붙이면 삶이 나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나를 위한 월든 프로젝트에서 내가 실수한 것은 바로 그 '목표를 세우겠다'는 목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목표를 위한 목표를 일단 소거했다. 그리고 일상을 영위하기로 했다. 몇 년 전 어떤 카드사 광고에서, 어떤 배우가 보는 사람까지 세상 귀찮고 하기 싫고 서럽게 만드는 표정으로 던졌던 그 말처럼, 나는 '더욱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하기'로 했다.


출처: http://www.hani.co.kr/arti/culture/entertainment/698594.html


바꾸어 말하자면, 현재 일상을 영위하는 행위를 제외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리고 일상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 죄책감도 느끼지 않으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목표가 없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목표를 만들지 않는 자기 자신을 흘겨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삽질의 기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