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애리 Mar 14. 2018

기억으로 먹는 돈까스

내가 돈까스만 보면 마음이 약해지는 이유

어릴 적 주택 이층집에 잠깐 세들어 살았던 적이 있다. 우리가 살던 2층에는 건물과 옥상 테라스가 꽤나 넓었다. 그 시절 엄마는 가끔씩 마당에 자리를 깔고 상을 펴고 야외 저녁식사를 차리곤 했다. 부엌에서 저녁을 짓느라 열기가 온 집안을 후끈달구는 초여름 해질녘, 엄마는 낮에 튀겨놓은 돈까스를 한 번 더 튀기고 양배추를 썬다. 고소한 냄새가 열기와 함께 집안을 달굴 즈음 엄마는 접시에 밥과 양배추, 돈까스를 푸짐하게 담아서 부엌에 서서 나와 동생을 부른다. 그러면 우리는 얼른 뛰어가서 각자의 접시를 받아와서 엄마가 마당에 깔아놓은 자리에 가서 앉았다. 


바람이 불어오면 내 앞에 놓인 접시에선 고소한 기름냄새와 고기냄새가 솔솔 올라왔다. 나는 엄마가 잘라놓은 돈까스 조각에서 떨어진 튀김옷 한조각을 손가락을 찍어서 입으로 가져간다. 바삭바삭하게 튀겨진 갈색 튀김옷에서는 너무나 고소한 맛이 났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엄마가 자신의 접시와 함께 김치, 반찬 따위를 가져오기를 기다렸다. 


엄마가 오면 나와 동생은 환호를 지르며 돈까스에 달려들었다. 그 시절, 돈까스는 특별한 날 가족 외식으로 경양식집에나 가야 맛볼수 있는 음식이었다. 돈까스는  평범한 한끼의 저녁식사를 마법같이 특별해지게 만들었다. 우리는 음식이 조금씩 줄어가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바삭바삭한 황금빛 돈까스를 베어물고 아삭한 양배추 샐러드와 밥을 먹었다. 


저녁 식사를 하고 있다보면 돈까스 냄새 때문인지 아래층 집주인 댁에서 키우는 개가 계단으로 슬그머니 올라오곤 했다. '줄리'라고 불리는 포인터 잡종견은 상 옆으로 와서 접시 옆에서 코를 킁킁거리면서 돈까스 한 조각 받아먹고 싶은 기색을 보인다. 애처로운 눈빛. 금방이라도 달려들 기세로 꼬리를 흔드는 개에게서 접시를 멀리 치우면서, 우리는 꺄악 거리며 소리를 질러댔다. 


엄마는 돈까스 고기에 붙어있는 비계나 질긴 부분을 뜯어서 저 멀리 던져주고는, '줄리 오기 전에 얼른 먹어'라고 우리에게 말했고 우리는 개가 돈까스 조각을 다 먹을 때까지 서둘러 밥을 먹었다. 그렇게 여러번을 반복하며 즐겁게 웃고 하다보면 어느새 해는 저물어간다. 어둑어둑해진 마당에서는 줄리 만이 또 얻어먹을 고기 없나 코를 킁킁거리며 돌아다녔고, 나와 동생은 엄마를 도와서 접시를 치우고 상을 접었다. 




내가 떠올리는 가장 행복한 기억은 바로 마당에서 돈까스를 먹던 나날이다. 생일선물로 엄마가 사주셨던 비커와 삼각플라스크 같은 실험도구, 학교에서 몰래 사먹던 아이스크림, 운동회날 받은 용돈으로 구입한 괴상한 장난감도 여기에는 미치지 못한다. 나는 돈까스를 볼 때면 마당에서 자리를 펴넣고 먹던 저녁식사가 생각나서 늘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돈까스는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소울푸드였다. 그래서 돈까스는 늘 내 인생의 크고 작은 순간을 함께했다. 수능시험을 치러 갈 때 엄마가 나에게 싸준 도시락에는 돈까스가 있었다. 집을 떠나서 대학원 기숙사에 있을때, 서울에 동생과 함께 살때 동생과 나는 종종 학교 식당이나 근처 분식점에서 돈까스를 사먹었다. 대학원 논문과 진로 때문에 우울이 사무치던 시기, 영화관에서 '토니 타키타니'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아무도 없는 빈 집에서 돈까스를 우걱우걱 씹어먹는 장면을 보고는, 영화가 끝나자마자 참깨를 갈아서 소스와 섞어 먹는 일식 돈까스를 사먹었다. 


어쩌다보니 나는 서울역의 돈까스도 특별히 좋아하게 되었다. 1년 넘게 일 때문에 매주 기차를 타고 서울역과 조치원을 오갈 때, 나는 종종 기차역 카페테리아에서 달콤한 소스가 뿌려진 경양식 돈까스를 먹었다. 트렁크 가득 짐을 든 사람들이 시끌시끌 오가는 가운데 혼자 앉아서 먹었던 그 돈까스는 유난히 맛있었다. 해외에 살 때는 늘 서울역 카페테리아에서 먹던 돈까스 타령을 했고,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서는 만나는 지인들마다 전부 나에게 돈까스를 사줬다. 




이제 나이가 드니 튀긴 음식과 육고기는 소화에 치명적인 음식이 되어버렸다. 이 둘을 섞어놓은 돈까스는 정말이지 위장을 뒤집어놓는 음식이다. 여행을 가는 날 공항에서 돈까스를 먹다가 체한 경험을 몇 번 한 뒤, 나는 나 자신이 돈까스를 맛보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 때문에 주문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소한 기름 향기를 코로 느끼고 바삭바삭하고 두툼한 고기를 입으로 베어물고, 달콤한 소스와 감칠맛 나는 튀김옷, 고기의 맛을 혀로 감각하지만, 나는 돈까스를 내 몸이 아니라 기억으로 먹는다. 


오늘 저녁에는 돈까스나 튀겨볼까. 











매거진의 이전글 열정이 없는 삶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