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린 Sep 26. 2021

아빠, 10대들의 독서 발판이 되다.

10대들은 왜 책 읽기에 흥미를 잃을까?


  큰딸이 아주 어릴 때였습니다. 안 자는 아이를 재우려고 이야기를 해주던 일이 기억납니다. 처음에는 동화를 읽어주다가 밑천이 바닥나자 얼렁뚱땅 이야기를 지어냈지요. 애들이 가지고 놀던 콩순이라는 인형을 주인공으로, 옛이야기를 허무맹랑하게 뒤섞어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아마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이야기를 들려줬던 것 같네요. 


  부모라면 비슷한 경험들이 다들 있을 겁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동화를 들려주거나 책을 낭독해주던 경험이. 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부모들은 아이들과 함께 읽기를 대부분 그만둡니다. 시간도 없고, 배울 것도 많은데 언제 책을 하나씩 읽고 있나 하는 조바심도 들고, 웬만큼 글 읽는 능력을 갖췄으니 혼자 충분히 읽을 거라고 여기기 때문이죠. 


  그런데 사실 자녀들은 부모와 책을 읽었던 시간에 애착이 많습니다. 큰딸은 아직도 그때를 잊지 못한다고 말하고는 합니다. 부모는 귀찮고 힘들 수 있지만 자녀에게는 부모가 온전히 자기에게 집중하는 시간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 시절에 대한 향수를 10대들은 지니고 있습니다. 물론 학습을 위해 강제로 함께 읽었던 경험을 제외하면 말이죠. 


  책읽기에 흥미를 지닌 몇몇 친구를 빼면 보편적으로 10대는 책을 읽을 때 만족감을 그다지 느끼지 못합니다. 일단 10대들은 읽을거리가 별로 없습니다. 애들 보는 책은 시시하고 어른들이 보는 책은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홀로 읽어야 하니 흥미와 만족이 떨어질 밖에요. 인내심을 발휘해서 끝까지 읽어야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책을 읽느니 손쉽게 보상과 만족을 가져다 줄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게 됩니다. 지루한 독서보다 즉각적인 만족을 주는 콘텐츠를 즐기며 도파민 중독에 가까워지는 것이죠. 



부모, 10대들의 독서발판이 되어볼까     


  10대들이 독서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10대들의 독서 발판, 즉 비계가 되어 줄 필요가 있습니다. 함께 책읽기를 하는 것입니다. 가능하다면 소리 내어 읽는 게 좋지요. 부모와 10대가 함께 소리 내어 책을 읽는 것은 꽤 어색합니다. 하지만 함께 책읽기는 여러모로 이점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자녀는 누군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외로움을 덜 느낍니다. 10대들은 독립 욕구가 강한 동시에 외로움도 많이 느끼는데 잔소리만 아니라면 부모가 가장 좋은 동반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옥시토신 같은 친밀의 호르몬도 생성되어 저절로 안정감도 생기지요. 


  함께 책을 읽는 것은 뇌 발달에도 많은 도움을 줍니다. 우리 뇌에는 언어를 담당하는 브로카 영역과 베르니케 영역이 있습니다. 전두엽에 위치한 브로카 영역은 표현을, 측두엽에 있는 베르니케 영역은 이해를 담당하지요. 이 두 가지 영역이 발달해야 사람은 언어적 능력을 발휘합니다. 그런데 이 두 영역이 대대적으로 정비되는 시기가 바로 사춘기입니다. 따라서 이 시기에 얼마만큼 언어적 자극을 주느냐에 따라 언어 능력이 결정될 수 있습니다.


  낭독을 하는 동안 우리 뇌는 다양한 활동을 수행합니다. 가장 먼저 후두엽의 시각피질에서 글자, 도표 등 시각 정보를 처리하고, 그 정보들은 베르니케와 브로카 영역을 지나 음성언어로 표현됩니다. 그리고 그 소리가 다시 귀를 통해 측두엽의 청각 피질을 거쳐 베르니케 영역에 도달하죠. 또한 글의 내용을 이해하고 판단하고 공감하는 과정에서 전두엽도 활성화됩니다. 마치 배구 경기 때 코트 곳곳에 꽂히는 공처럼 낭독은 뇌의 여러 부분을 자극해서 총체적인 뇌 사용을 가능하게 하지요. 당연히 언어능력이 우수해집니다


  그렇다고 글자만 소리 내어 읽는 것이 낭독이라고 생각해선 안 됩니다. 흔히 학교에서 돌려 읽기를 할 때가 있습니다. 먼저 읽기 시작한 사람이 잘못 읽을 때, 다른 사람이 그 뒤를 이어 읽는 방식이죠. 이 방식은 시각 정보만 처리하는 데에 집중해서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하게 합니다. 읽어도 이해가 안 되고 뇌 발달의 측면에서는 최악의 읽기 방법이죠. 


  부모가 함께 소리 내어 읽는 것은 맥락을 파악하며 읽는 장점이 있습니다. 잘 이해되는 부분은 속도를 내기도 하고, 재밌는 부분은 서로 웃고 공감하며 읽을 수 있습니다. 어려운 부분은 부모가 맥락을 설명해줄 수도 있죠. 이 모든 과정들은 10대의 언어와 두뇌를 발달시키는 좋은 자극이 됩니다. 


욕심 버리고 함께 읽기     


  얼마 전 중학생이 된 둘째에게 오헨리 단편소설집을 선물했습니다. ‘마지막 잎새’,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단편은 둘째가 즐겁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 외의 작품들은 시간이 걸렸죠. 왜 그런가 하고 살펴보니 어휘의 수준이 중학생이 읽기에는 아주 높았습니다. 그래서 무심코 딸과 함께 소리 내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읽어가는 동안 둘째는 주식거래소, 출판사, 군인계급 등 사회의 구체적인 맥락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맥락이 나올 때마다 아빠가 둘째의 독서 발판이 되어 주었지요. 


  언어의 습득은 단순한 어휘 암기가 아니라 상호 의사소통 속에서 가능합니다. 우리가 많은 노력을 기울여도 외국어를 익히기 어려운 건 일상생활에서 소통하는 데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죠. 소통하지 않으면 언어 능력은 향상되기 어렵습니다. 부모와 함께 책읽기는 좋은 소통 방법입니다. 그중 소설을 함께 읽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등장인물의 심리, 시대 상황을 함께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가벼운 토론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요.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갑자기 너무 진지하게 책을 읽자고 덤벼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독서에 대한 부정적인 마인드만 형성되고 말테니까요. 함께 읽기는 어디까지나 재미있는 놀이에 가까워야 합니다. 만족감을 느낄 때 경험을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함께 읽을 때는 부담 없고 재밌는 책부터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한 달에 한 권, 한 달에 반 권만 같이 읽어도 뭔가 달라질 겁니다. 언제까지요? 그건 아마 10대들이 정해줄 겁니다. 읽기 독립이 이뤄졌다고 생각할 때, 스스로 이야기하겠죠. 이제 혼자 읽겠다고. 



슬기로운 부모생활을 위한 팁


막연히 책읽기를 강요하지 않았나요?
자녀가 읽는 책 한 번 훑어보시게요. 어느 수준인지?
부모 말은 흘려듣고 행동은 따라한다고 했었죠.
유튜브만 보시는 건 아니죠?
하루에 단 몇 분이라도 함께 읽기를 추천해요.
성장담을 다룬 에세이, 단편소설, 때로는 시읽기도 좋습니다.
언제 시를 읽겠어요?
가능할지 모르나 시도해 보시죠.
책읽고 짧은 글쓰기. A4 반장이라도.
 단, 부모와 함께.
“부모 말은~, 행동은~” 아셨죠?


이전 18화 아빠들이여, 10대들의 비계가 되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