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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린 Sep 26. 2021

아빠들이여, 10대들의 비계가 되자!

친애하는 10대의 부모들에게

10대들도 소통할 어른이 필요할까?    

 

  10대들의 기억력은 아주 빠르게 성장합니다.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의 성능이 좋아지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단순히 암기력이 좋아진다고 해서 체계적이고 구조화된 지식이 저절로 쌓이는 것은 아닙니다. 성능이 뛰어난 해마만으로 지식을 습득한다면, 10대들 대부분은 아주 훌륭한 성취를 이룰테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아주 뛰어나지만, 누군가는 기초적인 문해력마저 갖추지 못해서 애를 먹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고성능 해마를 갖췄는데 무엇이 문제일까요? 안타깝게도 새로운 것을 알고 익히는 것은 기억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우리말 겨루기에서 우승할 만큼 풍부한 어휘를 기억하는 사람이 글도 잘 쓰고 말도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어 단어를 수천 개 외워도 회화를 제대로 못하거나 듣는 귀가 없는 것도 비슷하죠. 


  진정한 어휘력은 자신이 알고 있는 어휘로 읽고, 쓰고, 말하고,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뭘까요? 그것은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상대입니다. 어린아이가 말 배울 때를 떠올려 보세요. 혼자서는 도저히 말을 깨우칠 수 없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말하고 읽고 직접 써봐야 어휘가 활용 가능한 지식이 되는 것이죠. 비단 어휘뿐일까요? 세상의 모든 지식은 의사소통 없이 내면화하기란 곤란할 것입니다.     


발 딛을 비계가 있어야 올라서겠죠?     


  이탈리아 심리학자 비고츠키는 인지의 발달은 사회적 상호작용에 그 뿌리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지식을 쌓아간다는 것입니다. 


  아주 오래 전 일입니다. 마트에 처음 가 본 딸이 캐릭터 인형을 꺼내서 무작정 포장을 뜯으려 했습니다. 아마 뽀로로 정도였겠죠. 당연히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딸은 떼를 쓰고 울먹였죠. 자기가 좋아하는 인형을 마음껏 가지고 놀았는데 갑자기 부모가 제지하니까요.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아이는 한 가지 지식을 깨우쳤을 겁니다.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도 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부모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한 가지 지식을 얻은 것이죠. 다른 지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상호소통을 통해 지식을 깨우치고 내면화합니다.


  10대들은 누구보다 지식 획득이 절실합니다. 독립을 준비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10대들이 마주하는 지식과 경험들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습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 지식은 물론이고 또래와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과, 앞으로 진입할 성인 사회의 규범도 만만치가 않죠. 이 모든 지식들이 10대들에게는 버겁기만 합니다. 이럴 때 누군가 약간의 도움만 줘도 10대들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식과 경험을 획득합니다.


  비고츠키는 혼자서 도달하기 어렵지만 누군가 도움을 주면 성취할 수 있는 영역을 근접발달영역이라고 불렀습니다. 마치 건설 현장에서 비계를 발판삼아 높은 곳에서 작업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지요. 임시로 설치한 발판, 곧 비계 위에 서서 건물을 한층 한층 높이는 것처럼 누군가와 사회적 상호작용을 한다면, 이를 발판 삼아 더 높은 지식의 구조를 만들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10대들에게 비계는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그런데 비계는 절대로 부실해서는 안 됩니다. 건설 현장에 불량한 비계가 있으면 작업자의 안전이 위협받는 것처럼 10대들에게 비계가 잘못 설정될 경우, 왜곡된 지식과 경험이 쌓일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껄렁거리는 선배들이 자녀의 비계가 된다고 상상해보세요. 상상만으로 아찔할 겁니다. 따라서 비계를 마련할 때는 상당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10대에게 비계로서 가장 적합한 존재는 누굴까요? 부모는 좋은 비계가 될 수 없을까요?     


아빠는 좋은 비계가 될 수 있을까?   


  우선 비계가 되기 위해서는 친숙한 존재여야 합니다. 그래야 위험을 덜 느끼고 소통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엄격하거나 심리적인 부담을 주면 10대의 불안만 높아지고 자칫 사고로 이어지겠죠. 여러 차례 반복하지만 공감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10대의 수준을 파악하고 그 눈높이에 맞춰줄 수 있어야죠. 지나치게 높은 곳에 비계를 설정하면 그 자체만으로 10대들은 겁을 먹습니다. 10대들이 배우고 익혀야 할 과제의 양과 난이도를 조절해주고, 때로는 방향을 제시하며, 경우에 따라 시범을 보일 수 있어야 좋은 비계죠. 


  부모, 그중에서도 아빠는 10대에게 좋은 비계가 될 수 있습니다. 10대로 성장하면서 애착의 대상이 엄마에게서 아빠로 이동하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아빠들은 10대들의 성장을 엄마에게 맡기거나 학교나 학원에 일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에 엄마들은 비계로 자처할 때가 흔하죠. 그런데 종종 엄마들은 자신을 비계가 아니라 튼튼한 구조물로 오해하고는 합니다. 비계는 임시가설물일 뿐인데 자녀들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자신을 튼튼한 구조물로 세우려고 합니다. 그러면 10대들은 스스로 지식을 쌓을 이유를 상실하겠지요.


  에라 모르겠다, 비계로서의 역할을 처음부터 포기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학교, 학원, 과외에 떠맡기는 것입니다. 운 좋게 훌륭한 비계를 만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쩌면 바쁜 일상에서 현실적인 선택일 수 있죠.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비계의 상태를 잘 검증하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10대들이 때때로 부모에게 비계의 역할을 요구할 때 꼭 들어주는 게 좋습니다. 과제를 제출하기 전에 검토를 부탁한다거나, 시험 준비를 하면서 문제를 내달라고 할 때, 아주 잠깐이라도 10대들에게 귀를 기울여준다면 그것만으로 10대들은 새로운 지식의 세계로 도약할 힘을 얻을 것입니다.      



슬기로운 부모생활을 위한 팁


자녀가 도움을 청할 때는 가능하면 꼭 들어주세요.
자존심 강한 10대가 얼마나 망설이면서 부탁했겠어요.
아주 가끔, 아빠가 하는 일을 자녀에게 이야기해주세요.
아빠의 경험이 비계가 될 수 있죠.
아빠가 무슨 일 하는지 모르는 10대, 생각보다 많습니다.
아빠들, 자기 일이 힘들더라도 부정적인 표현은 자녀 앞에서 참으세요.
 자녀가 비계가 부실하다고 느끼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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