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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린 Sep 30. 2021

내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누구인가?

진짜 실력은 왜 알기 어려울까?     


  “아빠, 이번 시험은 망했어.”

  모의고사를 보고 온 큰딸의 말입니다. 국어 시험지를 보니 얼마 전에 함께 살펴봤던 문법 문제를 틀렸습니다. 그때는 잘 이해한다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정작 시험에서 틀리고 말았지요. 오지선다의 객관식 문제였는데 매력적인 오답에 그만 답을 하고 만 것입니다. 지식이 온전하지 않았기에 벌어진 일이지요. 딸은 수학도 다 알고 있는 문제를 놓쳤다며 투덜거렸습니다.


  이런 일은 학교에서 매우 빈번히 있는 일입니다. 평소에 잘 안다고 거드름을 피우던 학생이, 정작 시험을 치를 때 결과가 좋지 않을 때가 꽤 있죠. 선행을 많이 한 학생일수록 수업 때는 다 아는 것처럼 앉아 있다가 정작 문제를 내면 제대로 풀지 못하는 것입니다. 


  더한 경우도 많습니다. 동료 수학 선생님들 말에 따르면 기본 개념을 설명하는 것은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블랙라벨 같은 최고 수준 문제집만 온종일 붙들고 있는 친구도 있다는 거죠. 개념원리 같은 기본서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모의고사에서는 가장 쉬운 1, 2번을 틀리는 친구들. 뭔가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효율이 떨어지는 공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우선 큰딸이 문제를 틀렸던 까닭은 다른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얼마 전에 개념을 봤기에 문제를 쉽게 생각하고 실수를 한 것입니다. 순간적으로 자기가 다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죠. 자기 자신의 진짜 실력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고난도 수학 문제를 붙들고 있던 친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해서 쉽다고 여기는 문제들을 그냥 지나쳤던 것이죠. 사실은 핵심적인 개념과 원리를 적용해야 하는 문제가 있는데도 말이죠. 


  정말 안타까운 일은 고난도 문제집을 보는 친구들 중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해설지를 보거나 유명 강사의 해설 강의를 보는 친구가 많다는 것입니다. 공부를 안 하는 건 아니지만 머릿속은 유흥에 빠진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유명 강사의 현란한 풀이 과정을 감탄하는 뇌는, 문제를 해결하는 뇌가 아니라 프로게이머의 기술에 탄성을 지르는 뇌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10대들은 자신이 어려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착각하죠. 자기 수준을 제대로 인식했더라면 같은 노력을 기울여도 훨씬 효율이 높을 텐데 말이지요.      


자기를 생각할 겨를이 없나     


  자기 수준을 안다는 것, 비단 10대뿐 아니라 성인들 역시 참 어려운 일입니다. 오래전 소설 제목처럼 내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참 어렵고 철학적인 질문이죠. 일단 자기 수준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기 생각을 점검할 줄 안다는 의미입니다. 생각의 수준이나 정도를 파악하는 능력, 곧 자기 생각에 대한 생각이 자기를 이해하게 만듭니다. 내가 얼마나 문법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내가 어느 수준의 수학 실력을 지녔는지, 축구할 때 포지션을 소화하는 정도는?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내 위치는? 이처럼 자신이 실행하는 생각과 행위에 대한 성찰이 자기를 이해하는 바탕이 됩니다. 이런 성찰 능력을 갖춰야 자기 수준을 이해하고, 그래야 어떻게 노력할지 제대로 판단할 수 있죠. 


  그런데 이런 성찰을 하기에 10대들은 참으로 난관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판단이나 성찰은 전두엽을 동원한 고등적인 사고를 요구하는데 10대의 뇌는 공사 중이기 때문이죠. 게다가 우리나라의 학부모들은 자녀에게 판단을 맡기는 적이 별로 없습니다. 자주 성찰하고 판단해봐야 하는데 10대들에게는 그런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죠. 특히 열성 학부모들은 자녀의 의사와 무관하게 이미 학습 프로그램을 짜놓고 그 안에 10대를 들이밀기 일쑤죠. 그리고 진도와 성과에만 애를 태웁니다. 10대 청소년이 자기 의견을 말할라치면, “너는 가만히 있어.”라고 몰아붙이고, 행여 입바른 소리를 하면, “어린놈의 자식이······.”라며 무시해버리지요. 이런 상황에서 생각에 대한 생각이 만들어지기란 참 어렵습니다.   

  

생각에 대한 생각은 무엇이 필요할까?   


  큰딸은 시험을 끝낸 뒤, 들끓는 화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책상에 앉았습니다. 다행히 노트를 꺼내고 자기가 틀린 문항들을 하나둘씩 정리하기 시작했죠. 자기 생각이 어디서 어떻게 꼬였는지, 어디서 부족했는지 스스로 점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기다려주길 참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딸의 실수에 화를 벌컥 낼 뻔했거든요. 만약 화를 냈다면 큰딸이 자기 생각을 점검할 시간을 빼앗는 것은 물론, 부녀 사이에 큰 불화가 생길 뻔했지요.


  생각에 대한 생각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기다림, 혹은 잠시 멈춤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스스로 점검할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유명 강사의 프로페셔널한 인강을 듣는 친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강을 잠시 멈춘 뒤, 자기 생각이 어느 정도 만들어졌는지 점검하는 멈춤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스스로 정리가 잘 안 된다면 그것은 잘 만들어진 한 편의 쇼만 본 것이나 다름없지요. 그러므로 수학이든, 과학이든, 사회든, 그 무엇이든 10대들은 풀이를 하고, 노트 정리를 하고, 마인드맵을 그려보면서 스스로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럴 시간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강의를 들어도 오랫동안 남는 것은 거의 없겠지요. 

     


슬기로운 부모생활을 위한 팁 

    

자녀에게 스케줄을 점검해보라고 조언해주세요.
무작정 좋다고 또래를 따라할 수 있거든요.
단, 친절하게 말하세요.
자녀의 판단을 어릴 때부터 존중해주세요. 어릴수록 실수로 배우는 게 쌓입니다.
단, 책임은 지게 해야죠. 
학교에 있다보면 인강을 멍하니 듣는 친구들 꽤 많습니다.
가끔 어른들이 멍하니 드라마 보는 것처럼 말이죠.
불필요한 인강을 과감히 다이어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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