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린 Oct 01. 2021

잘하는 것만 계속할 수는 없다.

친애하는 10대의 부모들에게

왜 국어만 못하는 걸까?     


  “다른 과목은 괜찮은데 국어 성적이 안 좋구나.”

  “그러게요. 저는 왜 이렇게 국어 성적이 안 오르는지 모르겠어요.”

  10대들의 학습 상담을 하다 보면 특정한 과목에서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이 은근히 많습니다. 수학이나 과학은 우수한데 국어에서 성취도가 높지 않아서 골치를 앓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자기는 아주 열심인데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마음이 괴롭다고 했죠. 


  그런데 이 친구가 공부하는 걸 보니 국어를 못하는 게 당연했습니다.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죠. 수학과 과학을 너무 좋아했던 것입니다. 이 친구는 초등학교 5, 6학년 시절을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서 2년을 보냈습니다. 다들 알다시피 초중등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수학 수준은 세계적입니다. 이 친구는 미국에 가자마자 영재반에 들어갔고 그곳에서도 아주 우수한 성취도를 보였죠. 수학은 이 친구에게 큰 만족감을 주었습니다. 과학도 아주 잘했죠. 


  문제는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발생했습니다. 국어 공부에 균열이 생긴 것이었죠. 하지만 중학교 국어는 교과서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 겉으로는 별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시험기간에 집중해서 공부하면 좋은 성취도를 얻었으니까요. 하지만 상급학교에 진학하면서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자기 딴에는 아무리 국어를 공부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쾌감을 주는 경험만 계속하는 건 아닐까?    


  일단 이 친구는 수학과 과학에서 아주 성취도가 높았습니다. 뇌 가소성 덕분에 수학, 과학 머리가 발달한 거죠. 단순히 성취도만 높은 게 아니라 수학을 공부할 때는 행복감을 느끼는 수준이 되었죠. 이 정도라면 뇌에 쾌감을 주는 도파민이나 엔도르핀이 분비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수학을 공부할 때 보상회로가 탄탄하게 만들어진 것이죠.


  쾌감을 느끼며 학습하는 것은 효율이 아주 높습니다. 누구나 전에 배웠던 지식 중에 기억에 남는 지식을 떠올려 보면 대부분 즐겁게 공부했던 것들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것들은 그 순간에만 기억날 뿐이죠. 시험이 끝나자마자 벼락치기로 외웠던 걸 모두 잊어버리는 까닭은 아무 감정 없이 기계적으로 암기했기 때문입니다. 이 친구는 수학 문제를 해결하며 쾌감을 느꼈기에 그 분야의 지식이 축적되고 실력이 좋아졌던 것입니다. 


  안타깝지만 국어 공부는 이 친구에게 쾌감을 주지 못했습니다. 미국에 있던 시절 보상은커녕 제대로 교육받아 본 적도 없었고, 한국에 와서도 수학과 과학은 잘한다는 보상을 꾸준히 받은 반면, 국어는 보상이 거의 없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만족을 주는 일에 자기도 모르게 집중합니다. 민감한 보상회로를 지닌 10대들은 그 정도가 더 심하겠죠. 결국 이 친구는 자기도 모르게 같은 시간을 공부해도 수학과 과학은 몰입해서 공부했고, 국어는 집중하지 못한 채 공부했지요. 그러다 성취도마저 하락하자 국어는 어느덧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고 꺼려졌으며 국어 시간은 불쾌한 시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당연히 불쾌한 학습경험이 오랫동안 뇌에 저장될 리 만무하겠지요. 


냉정한 모니터링, 정교한 컨트롤     


  더 큰 문제는 스스로 자신이 맞닥뜨린 문제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간을 들여 애써 공부하는데 어째서 국어 성적이 안 나오는지 모르겠다며 답답함을 호소했죠. 생각에 대한 생각, 이른바 메타인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입니다. 


  버나드 칼리지의 리사 손 교수는 메타인지를 ‘내가 안다고 믿는 것들을 다시 비춰주는 내면의 거울’이라고 정의하면서, 이 거울이 종종 왜곡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특히 10대들은 판단하고 성찰하는 전두엽이 온전치 않아서 자신을 냉정하게 모니터링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지요. 국어 성적이 나오지 않은 이유를 그저 막연히 ‘국어를 못한다’, ‘국어는 싫다’, ‘국어는 두렵다’는 왜곡된 감정으로만 받아들인 겁니다.


  만약 10대들이 이런 문제로 호소를 해 온다면 먼저 시간과 교재를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친구 경우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공부가 가장 잘 되는 시간, 혹은 가장 집중력이 좋은 시간에는 늘 자신이 좋아하는 수학과 과학만 공부했습니다. 거기에 공부의 우선순위도 국어는 항상 후순위였죠. 수학과 과학을 공부한 뒤, 뇌의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고 나서야 비로소 국어를 공부했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교재의 수준도 자신의 실력과 맞지 않았죠. 주변 친구들이 보는 지나치게 고난도 문제만을 보고 있었습니다.


  모니터링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컨트롤이 필요합니다. 컨트롤이 이뤄지지 않고는 학습의 개선이 이뤄지기 어렵지요. 이 친구 같은 경우 매일은 아니더라도 국어를 가장 집중력 있는 시간 대에 한동안 배치해야 맞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만큼은 무엇보다도 국어를 최우선 순위에 둬야 하고요. 또한 자기에게 맞는 교재는 필수입니다. 그래야 교재를 해결하면서 자신감, 만족감이 쌓이고 그것이 국어공부에 대한 보상회로를 서서히 형성해줄 것이기 때문이죠. 


  비단 국어뿐일까요?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최우선에 놓고자 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반드시 해결할 과제가 있을 때는 그것을 가장 우선해야 합니다. 그 일이 즐겁지 않았거나 심지어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꼭 필요하다면 해야 하죠. 이런 판단은 스스로에 대한 판단, 곧 메타인지적인 판단으로 가능합니다. 다만 10대들에게는 그 힘이 생애 어느 때보다 약할 수 있으니, 가장 친밀한 타인이 사려 깊게 도움을 주어야겠죠. 눈 질끈 감고 시작할 용기를 곁에서 북돋워야 합니다. 



슬기로운 부모생활을 위한 팁     


못한다고 나무라면 부정적 피드백이 쌓여요.
자칫 트라우마?
긍정을 잃지 않게 격려하세요.
특정 영역에 곤란을 겪으면 머리 탓이 아니라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어요.
자녀와 함께 다섯 가지 이유를 떠올려 보세요.
부족한 영역을 단계별로 쪼개서 성취감을 맛보도록 유도하세요.
경우에 따라 원포인트 레슨을······.
막힌 통로만 뚫어줘도 괜찮습니다. 


이전 21화 내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누구인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