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압력에 취약한 10대
“왜 나한테는 말 안 해?”
식탁 위에서 밥을 먹다가 큰딸의 진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밥 먹다가 딱 체하기 좋은 이야기죠. 고등학교 2학년이지만 큰딸은 진로를 찾지 못해 애를 먹었고, 그래서 종종 진로 이야기가 가족의 화젯거리가 되곤 했습니다. 물론 큰딸은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지만요. 그런데 문제는 엉뚱하게 둘째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왜 나한테는 아무것도 안 물어봐?”
어느덧 뾰로통해진 표정에 건조하고 딱딱한 말투가 당장에라도 숟가락을 내려놓을 기세였습니다. 곧바로 달래기 시작했죠.
“언니는 아직 진로를 못 정했지만 너는 미술 아니면 디자인으로 정했잖아. 그래서 그런 거지. 지원이 오늘 그림은 어땠어?”
이럴 때는 곧바로 화제를 바꾸는 게 상책이죠. 계속 둘째한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가는 큰일입니다.
“그저 그래. 이따가 내가 그린 거 보고 싶으면 보여줄게.”
새침한 말투였지만 둘째의 마음이 녹아내리고 있는 게 느껴졌습니다. 다행입니다.
언젠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어쩌다 큰딸이 갓난아이였을 때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죠. 갑자기 둘째가 왜 그때 자기는 없었냐고? 왜 자기만 쏙 빼놓고 자기들끼리만 살았냐고? 자기 없던 시절 이야기는 그만하라고 시큰둥하게 말했었죠. 속으로 너무 귀여웠지만 둘째는 나름 진지했습니다. 그러니 식탁 위에서 큰딸 이야기만 계속하다가는 둘째가 가만있지 않았겠죠.
만약 둘째의 말을 무시한 채 계속 큰딸 이야기만 했다면 어떨까요? 아마 둘째는 자신을 마치 식탁 위에 손 안 가는 음식처럼 느꼈을 것입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죠. 아무도 말 시켜주지 않으면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민망하고 불편한 마음이 들 것입니다. 그럼 이런 상황에서 머릿속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걸까요?
미국 UCLA의 신경과학자 나오미 아이젠버거 교수팀은 집단 내에서 소외를 경험할 때 머릿속에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 실험했습니다.
세 사람이 공을 패스하는 비디오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두 사람이 나머지 한 사람에게 공을 주지 않고 점차 소외시킵니다. 소외당한 사람은 당연히 기분이 나쁘겠죠. 그때 그 사람의 뇌를 촬영했습니다. 놀랍게도 실험 결과, 소외당한 사람의 뇌는 마치 누군가에게 물리적으로 폭행당할 때 뇌와 거의 비슷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신체적인 고통을 당할 때 활성화되는 전대상피질과 배쪽전전두피질에 변화가 관찰된 것이지요. 그러니까 식탁 위에서 언니의 진로만 이야기할 때, 둘째의 머릿속은 누군가에게 얻어맞은 것처럼 된 것입니다. 영혼에 따귀를 맞은 셈이죠.
우리 뇌를 세로로 자르면 뇌의 앞쪽에서 뒤쪽까지 길게 이어진 띠가 있는데 이를 대상피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앞부분을 전대상피질이라고 하죠. 이것의 본래 기능은 사회적 유대감을 느끼는 것이랍니다. 다른 동물에는 없고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 젖먹이 동물에게만 존재한다고 하지요. 그러니 전대상피질은 인간이 사회적인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는 뇌 구조물입니다. 그런데 따돌림을 당할 때는 사회적인 유대감에 위기가 생겨 이 부분이 마치 누군가에게 얻어맞을 때처럼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된다고 하는군요.
인간은 가장 고등한 동물이지만 홀로 있을 때는 나약하기 그지없죠.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면 강력한 생존력을 지니지만, 홀로 있을 때는 생존에 위협을 받습니다. 그런 까닭에 집단에서 소외를 받으면 전대상피질이 위험 신호를 주는 것입니다. 신체적인 고통을 느끼면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 할 테니까요. 이처럼 집단 내 소외는 생존에 대한 위기를 느끼게 만듭니다.
안타깝게도 10대들은 어느 세대보다 집단압력이 강하게 느낍니다. 10대들은 독립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강력한 소속감을 느끼려는 욕구를 지니고 있습니다. 정체성이 혼란스럽기 때문이죠. 결과적으로 10대들은 어른들과는 분리를 지향하지만 자기들만의 집단을 형성하려는 의지도 강합니다. 그 안에 소속되어 불안정한 상황을 극복하려는 것이죠. 그런데 그 안에서 소외를 겪는다면 어떨까요? 집단 따돌림을 당한다면요? 10대들은 자신도 모르게 절박해질 것입니다. 생존의 위기를 느끼니까요. 그래서 종종 불합리한 집단압력에 굴복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한참 문제 됐던 이른 바 뺭셔틀 같은 일이 언제든 반복될 위험이 있죠.
이런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10대들이 평상시 소외를 겪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10대가 불합리한 집단압력에 굴복하는 이유는 그들이 되돌아갈 안전 기지가 없기 때문이죠. 그러니 평상시 가족 구성원은 10대들이 가족 내에서 소외를 경험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편애는 금물이고, 대화를 할 때에도 누군가 소외되지 않도록 더 배려하고 신경을 써야 하죠. 거기에 공감과 정서적 지지는 필수입니다.
만약 어디선가 자녀가 영혼에 따귀를 맞고 왔다면, 먼저 ‘호~’하고 위로해야 합니다. ‘못난 놈’, ‘가서 너도 똑같이 해줘’. ‘그걸 가만뒀어.’, ‘어디 한 번 가서 혼구녕을 내자.’ 이런 말들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대신에 ‘속상했겠구나?’, ‘힘들었겠다.’, ‘우리가 있어.’ ‘지켜줄게.’, ‘나아질 거야’라고 따뜻하게 품어줘야 합니다. 그러면서 더 좋은 관계가 존재한다는 걸 느끼게 해야 하죠. 그러면 10대는 위기를 벗어나 다시 더 나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모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는 것만으로 부정적인 집단압력에서 벗어나 자신을 보호할 힘을 얻으니까요.
가족과 대화를 할 때는 기회를 골고루 주고 있는지 살피는 게 좋겠죠.
10대들과 놀이를 하거나 내기를 할 때 지나친 승부욕은 금물!
3번에 1번만 이기세요. 너무 지면 재미없음요.
트럼펠린처럼 안전기지가 되어 줍시다. 그래야 부당한 집단 압력이 있을 때,
자녀가 솔직히 말하거든요.
첫째와 둘째는 언제나 똑같은 기회를... 양보는 형제 간에 독이 됩니다.
양보라는 단어! 잠시만 우주에 내다 버립시다. 돈이 들어도 편애는 피하자고요.
마음이 훨씬 편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