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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10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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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린 Oct 25. 2021

시험 때 떨어도 너무 떠는 까닭은?

친애하는 10대의 부모들에게

시험을 포기하는 이유는?     


  수능 1교시. 

  갑자기 한 학생이 일어서더니 안절부절못하다 감독관의 지시를 무시하고 교실 밖으로 나갔습니다. 시험을 포기한 거죠. 제가 가르치던 학생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그 자리에 있지 않았죠. 나중에 그 친구한테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말수가 적고 소극적이었지만 성실한 학생이었습니다. 평소에 불안이 높아서 자주 상담을 했었죠.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상담 요령을 전혀 몰라 대체로 듣기만 했습니다. 그 친구는 학기초부터 자기 성적으로 어느 대학을 갈 수 있는지 다짜고짜 물어보고는 했죠. 불안하고 초조한 눈빛으로요. 


  학기초에는 마음이 급한 친구들이 꽤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긴장을 풀어줄 겸 농담 삼아 웃으면서 말하고는 했었죠. 

  “이 성적으로 대학 가려고? 갈 대학이 있겠어?”

  “네?”

  이렇게 깜짝 놀랄 때, 다시 말해주죠. 

  “이 성적으로 대학 가려고? 이제 겨우 3월인데, 설마 3월 성적으로 대학 가려는 건 아니지? 너무 걱정 말고 11월까지 꾸준히 해봐. 그럼 원하는 대학 갈 수 있어.”

  대체로 이렇게 말하면 마음이 급한 친구들도 한숨을 돌리고 새롭게 계획을 짜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아까 그 친구는 다시 묻습니다.

  “선생님, 제가 잘 할 수 있을까요? 저는 꼭 이번에 대학에 가야돼요. 갈 수 있을까요?”

  네 마음먹기에 달렸다, 불안하면 오히려 시험을 망친다, 천천히 하나씩 하자, 무엇 때문에 불안한 거냐? 

  잦은 상담 때마다 저는 학생을 진정시키려 애를 썼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시험을 치를 때마다 집중이 안 된다, 머리가 어지럽다, 식은땀이 난다고 호소하더니 결국 수능을 망치고 말았습니다. 



높은 시험불안은 대체 어디서 만들어지나?     


  사실 이 학생은 특정한 학생이 아닙니다. 학교에 이런 학생들이 매년 한두 명씩은 있죠. 원인은 높은 시험불안 때문입니다. 

  사람이 불안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생존 전략입니다. 숲에서 길쭉한 물체를 보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불안을 느낍니다. 이 순간 감정의 뇌는 피하든지, 맞서든지 재빠른 결정을 내리려고 하지요. 이성의 판단을 기다렸다간 자칫 치명상을 입을 수 있으니 감정이 먼저 대처하는 겁니다. 뒤이어 이성의 뇌도 정보를 처리합니다. 길쭉한 것이 뱀인지, 나뭇가지인지 판단하는 거죠. 만약 이성이 물체를 나뭇가지라고 처리하면, 그후 감정의 뇌는 차츰 진정이 됩니다. 


  그런데 불안이 지나치게 높을 경우, 이성의 뇌가 작동하는 데에 시간이 꽤 걸리거나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불안을 높이는 뇌에 혈액이 몰려 이성의 뇌가 하얗게 질리는 것이죠. 그럼 이성적인 대응은 어려워집니다. 시험불안도 이런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낯선 문제, 낯선 공간, 심리적인 압박, 흐르는 시간, 이 모든 것들이 불안을 높입니다. 마치 들판에서 홀로 야수를 만난 느낌이랄까요. 물론 모든 친구들이 과도하게 불안한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은 감정의 뇌를 진정시키고 이성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죠. 그럼 누가 이렇게까지 불안한 걸까요?


  하버드 대학의 스리니 필레이 교수는 우리 안에 존재하는 두려움은 대개 인생 초기에 특정한 연상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후, 편도체에 자리를 잡는다고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어릴 때, 어두운 골목이 위험하다는 연상이 편도체에 자리를 잡으면 그 후 어두운 거리를 지날 때, 무의식적으로 공포를 느낀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런 불안이 과할 경우, 편도체가 진정을 못하고, 대뇌피질, 그중에서도 주의나 집중을 담당하는 전대상피질에 오류를 일으킨다고 합니다. 


  시험불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시험이 공포 체험과 연결되고, 그것이 편도체에 새겨져 시험 때만 되면 과도한 불안을 느끼는 것이죠. 그렇다면 시험과 연결된 공포의 정체는 뭘까요? 아마도 부정적인 피드백과 관련이 깊을 것입니다. 꾸지람, 체벌, 모욕, 수치심 같은. 물론 일회적인 피드백은 아닐 것입니다. 무의식에 공포를 만들려면 지속적이고 강력한 피드백이어야겠지요. 이를테면 같이 생활하면서 영향력이 큰 존재에 의해서 행해지는... 누굴까요? 90%는 부모일 가능성이 높겠지요. 가장 믿고 의지할 사람에게 부정당하면, 10대들은 시험을 불안과 공포에 연결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의 깊은 한숨, 꾸지람, 어두운 얼굴 표정, 실망감, 꾸지람과 질책, 좌절감 등은 자녀에게 심리적 불안을 주기에 충분하죠. 부모들은 압박하지 않는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압박을 받는 10대는 말 못할 고통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10대는 뇌 구조 중 편도체와 후두엽이 가장 활성화되어 있어서 부모의 부정적 반응을 민감하게 느끼고 시험을 불안과 연결할 것입니다.  

  우리 집 큰딸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죠. 큰딸은 시험을 치를 때는 집중해서 보는데, 채점을 할 때면, 심장이 멎는 것 같다면서 채점을 피했습니다. 어째서였는지 생각해보니, 아빠의 얼굴 표정, 한숨, 걱정이 다 읽힌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만약 10대가 시험불안을 호소한다면, 아마도 불안의 뿌리에는 부모의 부정적인 반응이나 그에 못지않은 또 다른 공포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시험불안을 떨치도록 도우려면     


  다행히 교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뇌는 변할 수 있는 가소성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스리니 필레이 박사는 과도한 불안을 없애기 위해 편도체에 형성된 부정적인 연상 작용을 다른 감정으로 대체할 것을 제시합니다. 시험과 연결된 불안의 끈을 끊고, 그 대신 긍정적 피드백을 새롭게 연결하라는 것입니다. 그럼 시험 불안이 배경으로 사라진다는 것이죠. 이때 주의할 점은 부정적인 정서를 압도할 아주 강력한 긍정적 경험을 지속적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뇌는 불안을 더 강하게 느끼기 때문에, 적어도 다섯배 이상의 긍정적 노력이 있어야 불안이 극복된다고 하지요. 

  우리집 큰딸은 아직이지만 불안이 높았던 둘째는 실제로 아주 좋아졌습니다. 시험 점수가 기대보다 낮아도 부모 둘이서 꾸준히 안아주고, 위로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곁들이며 꾸준히 긍정적 피드백을 해주자, 시험 불안이 차츰 사라지고 있으니까요. 아마 조만간 큰딸도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불안은 질책이나 꾸중 등 부정적 피드백을 먹고 삽니다. 불안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죠. 만약 시험불안으로 고통스러워하는 10대가 있다면, 질책이나 꾸중 등 불안의 불씨를 치우고 그 자리에 사랑을 심어주세요. 그럼 천천히 회복할 것입니다. 



슬기로운 부모생활을 위한 팁!


부모가 압박하지 않는데도 자녀가 불안이 높다고요?
그럼 무의식적으로 기대가 높았던 것은 아닌지 돌이켜 봐야죠.
애들은 다 느끼거든요.
혹시 조부모님이나 다른 친척이 기대가 높은 것은 아닌지 점검할 필요도 있죠. 
점수가 낮다고 혼내기보다는 위로와 격려가 있어야 하겠죠.
속이 가장 상한 것은 당사자 본인이거든요.
10대들은 눈치가 귀신 같아서, 부모의 미세한 표정, 떨림, 목소리까지 알아냅니다. 그러니 실망하는 마음은 갖지 마세요.
실망을 숨길 수 없을 때는 일단 실망을 떨쳐낼 때까지
다른 데에서 먼저 스트레스를 푸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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