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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10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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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린 Oct 28. 2021

불안을 대처하는 자세

-친애하는 10대의 부모들에게

어째서 놀 때는 잘 되고, 실제 경기는 안 될까?     


  아주 오래전 중학교 때 일입니다. 친구들과 방과후에 재미 삼아 배구를 즐겼던 적이 있었습니다. 잘하지는 않았지만 공을 넘길 줄은 알았으니까요. 체육대회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어쩌다 배구 경기를 뛰게 되었죠. 방과후에 부담 없이 즐기던 터라 크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경기가 시작되니 불안했습니다. 평소와 다른 경기장, 전에 없던 심판. 게다가 반 친구들과 담임 선생님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온몸에 긴장이 흘렀죠. 


  첫 번째 서브. 내 차례였습니다.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곧이어 환호성이 울렸죠. 상대팀 환호성이었습니다. 서브가 보기 좋게 네트에 걸렸으니까요. 비난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비극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죠. 상대팀 서브가 계속 내 쪽을 향해 날아오는 것이었습니다. 목적타였던 거죠. 결과는 완패. 내가 구멍이었던 것입니다. 참 이상했습니다. 놀 때는 그렇게 잘 들어가던 서브가 그날따라 왜 그렇게 꼬인 건지. 돌이켜 보면 체육대회도 일종의 평가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연스럽게 즐기는 놀이는 아니었던 거죠.


  10대들이 겪는 온갖 불안도 내가 체육대회 때 겪었던 불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요즘 10대들은 각종 평가에 시달립니다. 정기 시험은 물론이고, 수행평가, 실기시험, 온갖 발표에, 동아리 면접까지. 수시전형을 준비하려면 대학교수 앞에서 인터뷰까지 치러야 합니다. 그렇다고 평가를 미룰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까요?          



떨지는 않는 방법은?     


  도움이 될 몇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익숙해져야 합니다. 일단 스포츠 경기를 떠올려봅시다. 배구도 좋고, 야구나 축구도 좋습니다. 육상, 봅슬레이 같은 기록경기도 좋고요. 흔히 사람들이 홈어드밴티지라는 말을 쓰곤 합니다. 연고가 있는 곳에서 경기를 하면 이득이 있다는 말이죠. 실제 승률이 앞설지는 모르지만 어웨이 경기를 유리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왜 홈을 더 유리하다고 느낄까요? 다른 게 아닙니다. 익숙함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죠. 


  익숙하다는 것은 그만큼 주의를 분산할 여지가 적다는 뜻입니다. 경계하거나 점검할 것이 적다는 뜻이지요. 사람은 낯선 곳에서 불안합니다. 위험이 있을지 모르니까요. 불안을 느낀다는 것은 편도체가 활성화된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뇌의 이성적인 기능은 떨어지겠죠. 반면에 익숙한 곳에서는 주의를 살필 필요가 없기에 편도체 활성이 줄어듭니다. 그만큼 이성이 방해를 덜 받는다는 뜻입니다. 순간순간 판단을 잘 내릴 수 있죠. 특히 분초를 다투는 기록 경기에서는 홈어드밴티지로 예상보다 좋은 결과를 얻습니다. 


  자, 이제 불안을 줄일 방법이 떠올랐을까요? 그렇습니다. 불안을 줄이는 데는 익숙해지는 것이 최고죠. 공포와 불안을 느끼는 공간을 보다 편안한 공간, 이른 바 컴포트 존으로 바꿔보는 것입니다. 운동 경기를 하기 전에 현지 적응 훈련을 하는 것처럼, 평가를 받는 공간을 미리 체험해서 익숙함을 높이는 거죠. 모의 평가, 모의 면접, 연습 경기를 거칠수록 낯섦은 줄어들고 익숙함은 늘 것입니다. 


  불안을 줄이는 두 번째 방법은 이미지 트레이닝입니다. 하루에 몇분씩 해당 장소에 있다고 상상해보는 거죠. 뇌과학자들에 따르면 상상할 때의 뇌는 실제 행동할 때의 뇌와 거의 비슷하게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상상도 연습이 될 수 있습니다. 머릿속에서 상상이 어렵다면, 상황을 글로 써보거나 스케치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비슷한 영상을 보면 더 도움이 되겠지요. 축구 경기를 보고 난 후, 축구에 더 몰입해서 경기력이 좋아지는 것처럼, 꾸준히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면, 불안을 줄이는 데에 도움이 되겠죠. 편도체 활성은 줄고, 주의를 집중하는 전대상피질과 판단을 내리는 전전두엽 등이 제 기능을 발휘할 테니까요. 


  셋째, 명상이 불안을 낮출 수 있습니다. 불안이 가시지 않으면 3분만이라도 명상을 해보는 거죠. 호흡을 길게 해서 긴장을 이완시킨 뒤에 눈을 감고 집중해보는 겁니다. 집중은 주의 분산을 막아줍니다. 대개의 불안이 주의가 분산되어 불필요한 걱정에서 시작되는 만큼 명상을 통해 집중하면 주의 분산을 막고 불안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럼 명상하는 동안 무엇에 집중하는 게 좋을까요? ‘불안을 없애야 한다, 불안을 없애야 한다, ······’ 이렇게 집중하면 불안이 사라질까요? 이럴 경우 불안에 더 집중하는 꼴이어서 편도체는 더 활성화될 것입니다. 투수가 마운드에서 ‘잘못 던지면 어쩌지, 잘못 던지면 어쩌지, ······’를 신경 쓰다가 실제 잘못 던지는 것처럼 말이죠. 이보다는 ‘잘 던질 수 있다, 잘 던질 수 있다, ······’에 초점을 맞추면 두려움은 천천히 사라지겠죠. 두려움은 희망으로 줄어드는 거죠.           



두려움? 즐기면 그만이지!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즐기는 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롤러코스터를 떠올려보세요. 위로 솟아오르고 아래로 내리닫는 위태로운 롤러코스터에서 두려움이 사라지는 때는 언제일까요? 바로 즐기자고 마음먹는 순간입니다.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를 떠올리면 기구를 타는 내내 공포를 체험하겠지만 즐긴다고 마음을 바꿔 먹으면, 꽉 잡았던 두 팔을 자유롭게 허공으로 풀어줄 수 있죠. 그러니 불안을 이기려면 그날을 즐기자고 생각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부모들이 할 일은 10대 자녀가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결과에 대한 부담을 내려주는 것이겠죠. 

  몇 해 전 수능 날 대박을 터트린 한 친구는 아침마다 라떼 한 잔을 들고 여유롭고 등교하던 녀석이었습니다. 누가 뭐라 하든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며, 흔들리지 않는 여유로 평가를 즐기던 친구였죠. 즐기는 것만큼 불안을 쫓는 것은 없습니다.     


      

슬기로운 부모생활을 위한 팁!


부모가 불안하면 자녀는 더 불안합니다. 저는 그랬거든요.
자녀가 다 느낍니다.
불안은 전염되니까요. 
롤러코스터도 좋고, 조금 가파른 산행도 좋고, 불안해보여도
도전적인 일을 자녀와 함께 시도해보죠.
그럼 자녀도 불안을 이기는 요령을 찾아갈 겁니다. 
불안했던 본인 이야기를 10대에게 들려주세요.
 성공한 것보다 실패한 이야기가 좋습니다. 성공이 배울 게 많을까요?
잎이 무성한 나무 밑에서 작은 나무는 크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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