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10대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린 Nov 28. 2021

10대들의 스트레스, 뇌를 공격한다.

10대들은 한국을 좋아할까?  

   

  “아빠, 나는 정말 우리나라가 싫어!”

  밥 먹다 말고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큰딸이 말을 툭 내뱉습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여유가 없는 일상이 싫다는 것이었습니다. 교사인 내가 봐도 딸의 불만은 이유가 있습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10대들의 스케줄은 정말 빡빡합니다. 각종 수행평가, 동아리 활동, 자율활동, 진로활동, 과제평가, 정기시험, 모의고사, 독서활동 등 하루가 멀다하고 해야할 일들이 빼곡이 놓여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모든 일상이 생활기록부에 기록됩니다. 사소한 활동도 모두 관찰되고 평가받는 것이죠. 마치 학교가 학습기관이 아니라 평가기관인 것처럼 보일 정도죠. 


  아무리 사소한 평가라 해도 평가 자체는 스트레스를 주기 마련입니다. 평가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친구들도 심리적으로 불편하고 짜증이 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평가를 받는 동안 무기력한 자신을 마주하게 되니까요. 10대들은 상시적인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죠. 


  우리나라 스트레스 지수는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성인들은 주로 과도한 업무로 스트레스를 받고, 10대들은 학습량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합니다. 물론 스트레스가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주의력을 높이고 적당한 긴장감을 갖고 학습과 일에 몰두하도록 해주니까요. 스트레스를 받았다가도 충분한 휴식을 통해 회복하면 삶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가 뇌를 공격한다고?     


  우리 몸에는 항상성을 유지하는 시스템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100M 달리기를 전력으로 한 뒤에 별 의식없이 털썩 주저 앉아 호흡을 가다듬는 게 항상성의 작용이죠. 위협적인 상황에서는 주의력을 높여 신체에 에너지를 집중하다가도 위협이 사라지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시스템이 항상성이죠. 그런데 만성적인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면 항상성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지요. 늘 주의를 기울이고 긴장하니 항상성이 깨질 수밖에요. 잦은 평가, 예기치 못한 시험은 10대들의 항상성을 깨뜨립니다. 


  10대들에게 스트레스가 정말 안 좋은 것은 스트레스가 감정의 중추인 편도체를 활성화시키고 전두엽의 기능을 떨어뜨리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10대들의 전두엽은 공사중인데, 편도체가 과활성화되면 10대들은 감정적으로 몹시 불안정해질 것입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10대들이 감정이 격해지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죠. 


  더 나쁜 것은 스트레스가 신경세포를 공격한다는 것입니다. 신경세포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것이죠. 그중에서도 기억과 학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해마를 공격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만성 스트레스적인 상황에서는 학습 효율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죠. 제가 지도하는 고등학교 교실에서는 이런 현상을 종종 목격하고는 하는데, 아무리 오래 앉아서 공부를 해도 성적이 잘 오르지 않는 10대들은 대체로 스트레스에 많이 노출된 학생들이었죠. 성적이 나오지 않아 불안하고, 주위의 기대를 저버릴까 불안하고, 자신감과 자존감이 낮아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도 효율이 잘 오르지 않죠. 열심히 했는데도 결과가 안 좋으니, 악순환이 반복되고는 합니다. 


  해마가 약해지면 학습 효율만 떨어지는 게 아닙니다. 해마는 어떤 일이 발생하면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별일 아니니 크게 신경 쓰지 말라고 편도체를 진정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아 편도체가 활성화되어 코르티졸을 분비시킬 때 해마가 일종의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는 거죠. 해마와 편도체가 일종의 시소 게임을 하는 것인데, 적당한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해마와 편도체가 번갈아 가며 우세를 보이지만 과도한 스트레스는 편도체 쪽에 무거운 바위를 올려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됩니다. 이렇게 되면, 아주 사소한 자극에도 불같이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게 되죠. 인지기능, 기억력, 학습 능력은 떨어지고 늘 긴장상태기 때문에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합니다.      



스트레스에 빠진 10대에게 부모는?     


  딸을 보며 참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때는 실기시험은 자주 있지도 않고 별로 긴장도 안했는데, 2021년 딸이 다는 학교는 교과성적은 물론이고, 동아리활동, 진로활동, 심지어 독서활동과 교우관계까지 평가에 반영되니 얼마나 괴로울까. 자기를 바라보는 평가자의 시선에 상시적으로 노출되어 있다는 게 얼마나 짜증이 날까. 거기에 친구, 부모, 교사와의 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적지 않을테니 대부분의 10대들은 만성 스트레스에 노출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죠. 한국 학생들의 학교생활만족도가 낮고, 학업 스트레스가 높은 이유가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었지요.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부모만이라도 스트레스를 주지 말아야겠다고. 스트레스의 또 다른 원인이 대인관계니까 부모만이라도 스트레스의 총량을 줄여준다면 10대들이 그만큼 회복력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일까요? 다행히 큰딸은 집에 있는 걸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집에 오면 자기 공간이 있고, 노력해주는 부모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제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부모님들에게 종종 말하고는 합니다. 악역은 교사가 맡을 테니, 부모님들은 지친 자녀들을 따뜻하게 품어달라고 말이죠.      



슬기로운 부모생활을 위한 팁!


자녀가 무턱대고 짜증낸다고 같이 짜증내지 마세요. 
파국입니다.
 따뜻하게 해주면 30분도 안 돼서 해결될 일을,
같이 짜증내면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하루, 이틀 냉전입니다. 
자녀가 짜증내면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냥 따지려 말고 공감하세요. 그럼 항상성을 회복해요.
스트레스가 안 풀리면, 만성이 되고,
만성이 되면 우울이 도둑처럼 찾아옵니다.
스트레스 푸는 데에는 운동이 짱입니다!
운동을 싫어한다면, 가벼운 산책이라도 시도해 보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불안을 대처하는 자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