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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문법

by 에티텔
fountainscape.jpg 이효연, Fountainscape, oil on linen, 90.9x72.7cm, 2025

관계, 나에게 그것은 조금 거대한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나 사소한 일이다. 나는 늘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살아왔고, 그 안에서 기쁨을 배웠고, 또 상처를 배웠다. 관계 맺음은 나의 역사이자 나의 언어이며, 어떤 때는 그것이 삶의 전부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들여다보면, 그 모든 관계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거리’가 있다. 거리는 우리를 갈라놓지만, 동시에 이어주기도 한다. 사랑과 믿음의 버팀목, 혹은 이별의 완충지대. 나는 그 거리 두기를 자주 실패했다. 너무 가까워져 타버리거나, 너무 멀어져 사라지거나. 거리는 늘 상대적인 일이라서, 나 혼자만으로는 다룰 수 없는 문제였다. 마치 체스의 수를 두는 것처럼, 상대의 움직임을 읽어야만 가능한 일.


그래서 관계는 언제나 불안정한 평형 위에 있다. 너무 가까우면 숨이 막히고, 너무 멀어지면 목소리가 닿지 않는다. 그 사이 어딘가, 손끝이 닿을 듯 말 듯한 곳. 나는 그 미세한 떨림을 좋아한다. 완전히 섞이지 않은 온도, 침묵 속에서도 서로를 알아보는 기척. 그러나 그런 순간은 길지 않다. 어느 날은 내가 다가서고, 또 어느 날은 상대가 물러선다. 그렇게 흔들리는 진폭 안에서 관계는 잠시 빛나고, 이내 사라진다. 어쩌면 그 흔들림이야말로 관계의 본래 얼굴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 진폭 속에서 사람을 배우고, 나 자신을 배운다. 관계의 흔적들이 내 삶의 결을 만든다. 상처이기도 하고, 선물이기도 한 것들. 그래서 나는 알게 되었다. 관계란 완성되는 일이 아니라, 계속 조율되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서로의 거리를 재며 살아가는 일, 어쩌면 그것이 사랑의 또 다른 형태일지도 모른다.


왜 나는 그림 대신 관계 이야기를 하는가. 그것은 내 작업의 심장도 결국 관계의 리듬으로 뛰고 있기 때문이다. 삶이 틈으로 갈라질 때, 그 틈에서 작업은 태어난다. 거리 두기의 어려움은 언제나 새로운 이미지를 낳는다.


어쩌면 나는 관계라는 말을 믿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관계는 형태 없는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닌다. 어떤 날은 내 옆에서 숨 쉬고, 또 어떤 날은 내 발목을 붙잡는다. 나는 누군가와의 거리 속에서 나 자신을 확인한다. 관계가 아니라, 그 사이의 공기. 말로 닿지 않는 온도, 스쳐가는 시선, 무심한 손끝의 진동. 그 틈들이 나의 언어가 된다.


그림을 그릴 때도 그렇다. 나는 대상과 배경 사이, 대상과 대상 사이를 오래 바라본다. 색이 겹쳐지는 과정마다 멈추고, 주저하고, 되뇐다. 색이 색과 번지기 직전의 경계, 마르지 않은 물감의 수줍은 섞임. 그것은 누군가를 향해 내민 손의 마지막 온도와 닮아 있다. 그리고 나는 관계에 있어 많은 부분, 빛에게 빚지고 있다. 빛과 그림자의 관계처럼 세상을 더 명료하게 보여주는 일도 드물기 때문이다.


그림은 관계를 재현하는 일이 아니라, 그 부재를 기록하는 일이다. 한때 존재했으나 이제는 없는 것들. 그러나 여전히 내 안을 흔드는 잔향. 나는 그것을 거리라 부른다.


거리 안에는 사랑과 단절, 욕망과 냉담, 기다림과 무관심이 섞여 있다. 그 모순이 아름답다. 가까워질수록 멀어지고, 멀어질수록 더 선명해지는 얼굴들. 나는 완성된 관계를 믿지 않는다. 닿는 순간, 그것은 이미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그 이전의 순간을 그린다.


그리고 그 순간 속에서, 나는 잠시 사람을 이해한 듯한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착각이 없다면 관계는 불가능하고, 그림은 더 이상 그려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 착각을 가능한 한 천천히, 가능한 한 아름답게 유지하는 일에 나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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