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구덩이, 혹은 가라앉는 법

by 에티텔
starry night.jpg 이효연, Starry Night, oil on linen, 116.7x91cm, 2015


간절했다는 말은 조금 단단하게 느껴진다. 그날의 마음은 그보다 더 물렁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시의 구덩이 근처를 서성이고 있었다. 빠지고 싶다기보다, 가장자리에 앉아 안을 들여다보는 쪽에 가까웠다. 깊이를 재보려는 것도 아니고, 뛰어들 용기를 낸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 안쪽의 어둠이 나를 오래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다.


저녁 후식으로 마신 커피 한 잔이 밤을 얇게 늘여 놓았다. 별생각 없이 고른 선택이었는데,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생각이 평소보다 조금 또렷해졌고, 또렷해진 생각은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나는 의자에 오래 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실은 무언가가 천천히 젖어가는 시간을 통과하고 있었다.


나는 대체로 새벽에 일어나는 사람이다.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시간 위를 걷는 일이 좋다. 말이 붙지 않은 공기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면, 하루가 조금 덜 소란스럽게 느껴진다. 그렇게 살아오며 밤을 접어두는 법을 배웠다. 밤은 자주 나를 불렀지만, 나는 다음 날의 나를 위해 돌아섰다. 미래의 나를 배려하는 일은 종종 현재의 나를 조금 접어두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돌아서지 못했다. ‘시 구덩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빠진다는 표현은 지나치게 극적이고, 가라앉는다는 쪽이 더 정확할 것 같았다. 말이 아직 문장이 되지 못한 자리, 의미가 되기 전의 숨이 머무는 곳으로 조용히 내려가는 일. 나는 그 애매한 상태를 견디고 싶었다.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라기보다,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를 그대로 두어보기 위해서였다.


잘 정리된 문장은 언제나 그럴듯하다. 하지만 그럴듯함이 꼭 진실은 아니다. 나는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것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더라도, 아니, 아름답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판단을 서두르지 않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힘을 요구한다.


그날 밤 내가 바란 것은 완성된 시가 아니었다. 몇 줄의 성취도 아니었다. 다만 나의 속도가 조금 느려지는 경험, 말이 나를 스쳐 지나가지 않고 잠시 머무는 감각이었다. 머문 말은 체온을 갖는다. 체온을 가진 것들은 쉽게 식지 않는다.


아침이 나를 다시 불러내더라도 나는 알고 있을 것이다. 어젯밤 어둠 속에서 무엇이 조용히 나를 적셨는지. 그것이 문장이 되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한 번 깊이 젖어본 사람은 예전과 같은 속도로 마르지 않는다. 나는 그 부드러운 사실을, 천천히 믿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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