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의 자리

by 에티텔
final.jpg 이효연, 사이와사이, 종이에 유채, 150x120cm, 2020

우연히 플루트 연주를 맨 앞줄에서 듣게 되었다. 앞줄은 소리를 듣는 자리가 아니라, 소리가 만들어지는 장면을 목격하는 자리였다. 음은 공중으로 퍼져 나갔지만, 나는 그보다 먼저 연주자의 몸을 보았다. 이마의 미세한 긴장, 쇄골 아래에서 오르내리는 숨, 그리고 입술.


연주는 훌륭했다. 곡도 익숙했다. 그러나 내가 오래 붙들고 있던 것은 선율이 아니라, 선율과 선율 사이의 짧은 공백이었다. 그 공백은 비어 있지 않았다. 거기에는 반드시 숨이 있었다. 들이마시고,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내보내는 숨. 음악은 그 왕복 위에 서 있었다.


숨을 들이마실 때 연주자는 입을 조금 벌렸다. 입술 사이로 어두운 구멍이 잠깐 드러났다 사라졌다. 어떤 순간에는 그 안쪽에서 혀가 보였다. 낯설고도 솔직한 장면이었다. 처음에는 시선이 멈칫했다. 음악은 매끈하게 흘러가는데, 그 안쪽은 이렇게 분주하다는 사실이 어딘가 뜻밖이었다.


조금 더 지켜보자 이해하게 되었다. 그녀는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사이, 플루트에 혀를 가볍게 내어주고 있었다. 혀는 소리를 시작하게 하고, 끊고, 다시 이어 붙였다. 음은 공기에서 태어났지만, 그 경계는 혀가 정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미세한 합의들. 그 합의가 어긋나지 않을 때, 한 음이 또렷해졌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음악이 얼마나 신체적인 예술인지 생각했다. 우아한 선율 아래에는 젖은 입안과 급하게 드나드는 숨이 있다. 몸은 감춰지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정확한 순간에,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완벽하게 이어지는 프레이즈보다도, 나는 들숨 직전의 얼굴을 기억한다. 아직 소리는 없지만 이미 모든 것이 준비된 상태. 숨이 들어오는 순간, 세계는 잠시 멈춘다. 그리고 곧 다시 흐른다. 음악은 그 멈춤과 흐름의 반복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숨을 조절하며 살아간다. 말을 시작하기 전의 들숨, 울음을 참기 전의 들숨, 어떤 결심 앞에서의 들숨. 그 짧은 사이에 마음이 모인다. 연주자가 혀로 소리의 문을 열어주듯, 우리는 보이지 않는 문을 열고 닫으며 하루를 건넌다.


그날 나는 음악을 들었다기보다, 한 사람이 숨 쉬는 방식을 보았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음악은 소리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끝내 숨을 놓지 않는 몸에 의해 지탱된다는 것을. 숨은 사라지지만, 그 숨이 지나간 자리에는 분명히 어떤 형태가 남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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