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탐색 page.08
수치심:
수치를 느끼는 마음
수치:
다른 사람들을 볼 낯이 없거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함. 또는 그런 일.
표준국어대사전
감정을 세분화하여 인지하기 전에는 꽤 오랫동안 죄책감과 수치심을 비슷한 감정으로 분류했던 것 같다. 막연히 죄책감이 더 깊어지면 자연스레 수치심으로 심화되어 가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전 글에서는 죄책감의 생성과 그것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들여다보았다면, 본 글에서는 죄책감과 한 쌍을 이루는 수치심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인간의 발달에 따라 에릭슨*은 몇 단계의 층을 만들어두었는데 죄책감과 수치심에 대해 우리는 그의 이론을 참고해 볼 수 있다. 발달 2단계에서 에릭슨은 1~3세 유아의 자율성이 침해가 되면 수치심이 생긴다고 보았다. 또한 3단계에서는 3~6세 아동의 주도성이 침해가 될 경우, 죄책감이 생성된다고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유아가 신발을 신는 시도를 할 때 스스로 할 때까지 지켜봐 주지 않은 채, 부모가 모든 것을 다 해주려고 하면 유아는 자신에 대해 수치심을 느낀다는 것이다. 또한 아동이 엄마를 도와 무엇인가 하고 싶은 욕구를 드러낼 때, 다양한 이유로 부모가 이를 막는다면 죄책감을 느낄 수 있다.
위의 이론에 빗대어 볼 때,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현재의 우리를 형성하는 데 밀접한 연관이 있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인정받지 못한 채, 오랫동안 삶을 살아가다 보면 본인이 수치스럽다는 생각이 형성된다. 그것이 또 자아관념을 만들어내고 이미 성인이 된 자신을 수치스럽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마음에 오랫동안 내재된 감정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을 때, 가장 놀랐던 사실이 있다. 그것은 죄책감이 우리의 내부에서부터 발산되는 영역에 가깝다면 수치심은 개인이 외부를 지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앞선 글에서 말했듯, 죄책감은 자신이 죄를 지었다고 느끼는 감정이다. 반대로 수치심은 '내가 이렇게 행동했으니, 저 사람이 나를 이상하다고 생각하겠지.'라고 하는 자신만의 기준이 만들어 낸 감정인 것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어린 시절, 엄마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엄마가 주무실 때 설거지를 해놓은 적이 있었다. 아마 만 6세 무렵이었을 것이다. 물론 손이 여물지 않아 그릇을 씻어놓고 거품은 여기저기 튀어있었을 것이며, 음식쓰레기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을 것이었다.(그때의 시각적 상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엄마의 목소리는 생생하다.)
잠에서 깬 엄마의 반응은 내가 생각한 그것은 아니었다. 엄마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 했던 행동이 도리어 엄마를 화나게 한 것이다. "도대체 이게 뭐야?" 어린 나는 순간 내가 이걸 다 해놓아서 엄마가 기뻐하시는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나는 주방을 어지럽혔다는 죄로 벌을 서야 했다.**
거기에서 의도와 결과의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어린 나는 분명 아주 좋은 의도로 그 행동을 한 것이다. 그런데 내가 받았던 피드백은 엄마의 체벌이었다. 핑계일지 모르겠지만, 그 이후 나는 자연스레 설거지가 거들떠보기도 싫어졌고, 청소년기가 되어서도 밥 먹으면 설거지해놓으라는 엄마말씀은 잘 안 들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린 나는 자신의 긍정적 의도에 대해 죄책감과 더불어 수치심을 느꼈던 것 같다. 실제로 그러한 반응이 반복되면 한 개인은 자동적으로 '남들이 내가 이렇게 행동하고 이렇게 말하면 나를 안 좋게 보겠지.'라는 신념이 형성된다. 말하자면 그들이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내게 책임이 있기 때문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는 눈치를 보는 상황과 비슷하다. 그럴때마다 이 수치심이라는 감정은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데 이 때는 남이 나를 어떻게 볼 것 같은지, 경우의 수를 글로 써보는 방법을 활용하면 좋다. 수치심은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시도 때도 없이 눈치를 보고 수치감을 느낀다면 상상을 통해서 그 상황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이다.
거기서 있는 그대로 나를 관찰한다. '그때 나는 어떤 행동을 했지.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했더라. 내 안에서 어떤 생각과 감정이 일어났지.'하고 그때로 돌아가보는 것이다. 그리고 기억을 재설정한다. '그 사람이 나를 보고 얼굴을 찌푸린 건, 나랑 마주쳐서가 아닐 수도 있어. 사실은 오늘 아침에 먹고 온 음식이 방귀를 유발하는 음식이라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쓴 것이 아닐까?'라는 다른 경우의 수를 만들어보는 것이다. 설령 나를 보고 얼굴을 찌푸린 게 사실이라 한들, 그것은 그 사람 책임이지 내 책임이 아니다.
수치심은 타인이 나에게 주고 싶다고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수치심을 떠안기로 선택한 것일 뿐이다. 앞으로는 누군가 수치심이라고 적힌 공을 나에게 건네주려고 할 때, 이것이 정말 내 공인지 생각해보자.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이거, 내 거 아닌데?
*에릭슨: 연령별로 인간의 일생을 8단계로 나누어 설명한 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
**감정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누누히 말하지만, 성인이 되어서 저 때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무의식 정화작업을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