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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Oct 26. 2024

팝 아트를 소개합니다!

『최고 예술가는 바로 나야!』

『최고 예술가는 바로 나야!』매리언 튜카스 지음, 서남희 옮김, 국민서관, 2020

Bob Goes Pop! (2020)

 





학창시절, 아무리 노력해도 제 시간에 과제를 끝낼 수 없고 너무도 당연히 점수도 낮았던 미술은 공포 그 자체였다. 자연스럽게 스스로에게 미술에 재능이 없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낙인을 찍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막상 학교를 졸업하니 미술이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예술은 시간 제한을 두고 완성해야 할 과제도 아니고 남이 점수로 평가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정규교육과정을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다짐했다. ‘내 아이들은 절대로 예술을 어렵게 생각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도록, 우리 생활에 늘 숨쉬고 있음을 알려줘야지’ 하고 말이다. 그림책 『최고 예술가는 바로 나야!』는 그런 목적에 딱 부합한다. 



원 제목을 보면 좀 더 직관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다. Bob Goes Pop! 팝 아트(Pop Art, Popular Art)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소개하는 책이다. 작가 매리언 튜카스(Marion Deuchars)는 예술을 그림책으로 알리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이전에 이미 앙리 마티스와 잭슨 폴록을 이야기하는 『나보다 멋진 새 있어?』 Bob The Artist (2016), 피카소의 청색시대를 보여주는 『내가 왜 파란색으로 그리냐고?』 Bob’s Blue Period(2018) 두 권의 작품을 썼다. 작가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예술에 참여해야 한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다. 미학의 이해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전 작에서 앙리 마티스, 잭슨 폴록, 피카소를 대표했던 빌리(원작이름 Bob을 번역본에서는 빌리로 바꾸었음)네 동네에 유명한 조각가 로이가 이사 온다. 요즘 핫하다는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에 빌리는 로이를 찾아가는데, 로이의 조각 작품들은 정말로 재미나고 독특했다. 회화를 그리던 빌리는 로이를 의식하며 조각을 시작하고 작품 경쟁을 한다. 그러다 아이디어의 한계를 느낀 빌리는 로이의 작업실을 몰래 훔쳐보고 같은 작품을 만들어 선보인다. 서로 자기가 먼저 생각한 거라며 싸우다 풍선으로 만든 작품이 터졌다. “POP!” 미안한 마음에 빌리는 로이에게 사과를 하고 둘은 합심하여 전보다 더 화려하고 멋진 작품을 완성한다. “이제 우리 둘 다 최고 예술가야!”라고 외치면서. 


재미난 스토리에서 잠시 눈을 떼면, 실제 팝 아트 작품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그림책 곳곳에 숨어 있다. 책 겉장을 넘기자 마자 나오는 속지 속 배드민턴 셔틀 콕은 대형 오브제를 도시 공간에 설치했던 클레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과 아내 코샤 밴 브룽켄(Coosje Van Bruggen)의 <셔틀콕>이 떠오른다. 그들의 작품 중 <스프링>은 서울 청계천에서도 만나 볼 수 있다. 지극히 일상적인 소재들이 예술이 되어 미술관이 아닌 일상 생활 공간에 나타나 개개인과 연결된다. 

    

<그림책 속지>   클레스 올덴버그 & 코샤 밴 브룽켄 <셔틀콕> , <스프링>

                   

속지를 넘기면 보이는 속표지 옆에는 눈에 띄는 노란 바탕에 빨간 점들이 있다. 어디서 본 듯한 이 점들은 바로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의 트레이드 마크인 벤데이 닷(Benday dot)이다. 색을 점으로 분할하여 찍어내던 19세기 대량 인쇄 기법을 개발한 사람의 이름에서 따왔다. 리히텐슈타인의 작품들은 확대하여 보면 모두 이 점을 볼 수 있다. 팝 아트 사조 이전 추상미술주의는 일반인들은 쉽게 볼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이에 반대하여 나타난 팝 아트는 1950년대 대량 생산/소비 분위기와 맞물려 대중에게 친숙한 이미지들을 작품의 재료로 선택했다. 그래서 리히텐슈타인은 수작업으로 그림을 그렸지만 대량 인쇄기로 찍어낸 듯한 느낌을 주고자 벤데이 닷을 이용했다. 


<그림책 속표지>,  로이 리히텐슈타인 <행복한 눈물>, <음 어쩌면>


대중적 소재를 작품으로 표현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비슷한 내용이 재생산되는 문제가 발생하는데, 작가는 이를 제프 쿤스(Jeff Koons)의 <풍선 개>로 풀어낸다. 팝 아트를 통해 고급 예술이 대중적인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하지만 대중적이기에 소재가 겹치고, 예술의 고유성에 대한 질문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서로 따라쟁이라 비난하며 대립하던 빌리와 로이는 결국엔 서로 잘하는 부분을 맡아 공동 작업을 하며 해결점을 찾는다. 예술에 초점을 맞추지 않아도 갈등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딱이다. 


<그림책 본문>,  제프 쿤스 <풍선 개>


팝 아트를 단순히 상업적으로 트렌디한 면만 지녔다고 보기엔 뭔가 아쉬운 부분이 많다. 팝 아트는 예술을 누구나 즐길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동시에 의식 없이 관습적으로 보고 행하는 모든 것들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시대를 빠르게 읽어내는 매우 영민한 예술 사조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지나가면서 만져도 보고 동전을 던지기도 하고 같이 기념촬영을 하다가 파손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손 닿는 거리에서 삶을 예술로 만들어줄 수 있도록. 그것이 팝 아트가 추구하는 지향점 아닐까? 예술을 사랑하고 아이들과도 같이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 어른들에게, 혹은 관심은 많지만 아직 예술에 다가가기 어려운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플로렌타인 호프만 <러버덕 프로젝트>,  제프 쿤스 <퍼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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