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 지키고 싶은 소중한 보물』
『용이 지키고 싶은 소중한 보물』막심 드루앙 지음, 이성엽 옮김, 지양어린이, 2023
『Un Trésor Lourd à Porter』(2021)
“엄마, 용은 원래 저기 살아? 공주는 코~ 자는데, 용은 친구도 없이 심심하지 않아?”
아이가 어릴 때 같이 슈렉 <Shrek 2001>을 보다가 용이 나오는 장면을 보고 한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했다.
“그래, 그러네… 진짜 용은 저 재미없고 심심한 성에서 혼자 있기 싫었겠다.”
그 영화에 나오는 거대하고 위협적인 용은 동키가 건네는 칭찬 한마디에 눈 녹듯 사르르 녹았다. 어쩌면 아이의 말 대로 그는 지독히도 외롭고 친구가 그리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의 고정된 프레임으로만 보면 이상할 게 하나도 없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의 시선으로 볼 때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용이 지키고 싶은 소중한 보물』 또한 아이 같은 새로운 시선에서 시작하고 있다.
철학을 전공한 작가 막심 드루앙의 글은 매우 시적이면서도 철학적이다. 삶과 존재에 대한 주제를 판타지 세계 속에서 드래곤 신화를 차용하여 풀어냈다. 반면 그림은 검은색과 황금색만을 이용한 단순하고 익살스러운 펜화로 다소 무거울 수 있는 글을 가볍게 중화하는 역할을 한다. 이 책의 분량은 80쪽으로 그림책으로 보기엔 글 밥이 조금 많은 편이다. 그러나 글과 그림이 상호 보완하며 작품 전체의 주제를 잘 전달하고 있다. 글 내용이 클라이맥스로 향하면서 그림 또한 절정으로 달려간다. 그림의 크기가 반페이지 -> 한 페이지 -> 양쪽 페이지를 다 차지하며 시각적 서사도 역동적으로 표현된다. 글과 그림이 결말을 향해 함께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너의 보물을 지켜라!”, “왜?”
이 작품은 ‘오랜 시간 누구도 만나지 못한 채 보물만을 지키는 용의 삶이 행복할까?’라는 다소 엉뚱한 질문에서부터 출발한다. 황금이나 보물 따위에 관심이 없는 주인공 용은 대대로 내려오는 가훈 - “너의 보물을 지켜라!”- 을 이해할 수 없다. 보물을 빼앗으러 밤낮없이 찾아오는 예의 없는 마법사, 요정, 기사들을 물리치는 일도 넌덜머리가 난다. 원치 않는 삶을 살던 용은 삶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어느 날, 자신처럼 황금에 관심이 없는 작은 소녀가 찾아와 서로 친구의 정을 나누며 잃어버린 삶의 의미를 되찾는다. 그러나 소녀 마르고의 정체가 무엇이든 만지면 황금이 되는 힘을 가진 공주임이 밝혀지며 용의 인생에서 가장 큰 위기가 찾아온다.
전설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만큼 독자들이 책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옛이야기와 신화들이 다양하게 섞여 있다. 용이 외로움에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동굴로 오는 길을 쉽게 발견할 수 있도록 보석을 뿌려 두는 장면은 샤를 페로의 거인을 물리친 <엄지 동자>, 용과 친구가 되는 마르고 공주의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 <미다스의 손>, 샤를 페로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그림 형제의 <백설공주>와 <라푼젤>이 떠오른다. 유명한 용사냥꾼 지그프리드는 게르만 영웅 서사시 <니벨룽의 노래>에서 사악한 드래곤 파프니르를 무찌르는 영웅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데, 이는 마치 우리가 살아가며 맺는 인간관계와 비슷하다. 작품 속에서도 다양하고 가지각색의 인물들이 결국 각자의 시선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자신의 보물을 찾아 나서는 과정을 그린다.
“마침내 친구가 생겼고, 나는 행복했다.”
공주나 기사의 입장에서 보면 용은 물리쳐야 할 나쁜 존재이지만, 용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피해야 할 무서운 대상일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그런 일방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나에게 맞는, 내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말한다. 그 힘은 다름 아닌 사랑을 바탕으로 한 진실된 인간관계에서 싹이 튼다. 선입견을 버리고 상대를 바라보면서 비로소 ‘나’도 보게 된다. 절대 만나지 말아야 할 두 존재, 용과 공주가 만나 우정을 쌓고 행복을 알아간다. 삶의 의미는 결국 사회적 관계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나도 결국 보물의 노예가 아니었을까?”
미다스의 손을 가진 마르고 공주는 탐욕스러운 계모 때문에 탑에 갇혀 황금을 만들도록 강요받았지만 결국 그 손아귀에서 탈출했다. 그러나 용은 보물에 관심이 없으면서도 대대로 내려오는 가업을 버리지 못하고 오랜 기간 그것을 지키며 살았다. 무력감에 빠져 있을 때는 본인의 상태를 제대로 마주할 수 없었지만, 마르고와 관계 속에서 그녀를 보고 자신의 문제점을 직면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를 알아차리면 그 뒤 해결로 가는 길은 보다 쉽다. 이제 용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금은보화를 지켜야 한다는 속박에서 벗어나, 마르고와 함께 하늘을 날아 떠나는 용의 모습을 작가는 가장 멋지고 아름답게 그렸다. 황금과 보석은 세속의 눈에는 가장 값어치 있는 보물일지 몰라도 용과 마르고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기에. 둘은 서로의 보물을 찾았다. 이제 그 보물을 지키기 위해 비상하고 있다.
“나의 산은 무너졌지만, 마음은 평화로웠다.
태어나면서부터 나를 짓눌렀던, 보물을 지키는 의무에서 나는 완전히 해방되었다.
이제 내가 지켜야 할 소중한 보물은 따로 있었다.
마침내 나는 자유롭게,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