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농의 기억>
작은 촛불하나 켜두고
지나온 슬픔을 바라본다
내게 왔던 사람들
나를 떠났던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이 촛농이 되어 내 살을 움푹 덜어간다
하얀 찌꺼기가 양 발 아래로 미끄러져 굳으면
나는 엷은 가지처럼 으슬으슬 흔들리며 마저 불빛을 태운다
사람을 만나는 것
산다는 것
내 살을 내어주고
나를 지나가게 하는 것
나는 엷어지는 것
그런데 왜 몰랐을까
움푹 패인 살들이
어느새 나의 발등을 덮어
나는 큰 덩어리가 되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엷어지면서
넓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넓어진다
형태를 알 수 없는 덩어리로
그 누구도 규정지을 수 없는 덩어리로
움푹 패인 나의 살점들이 촛농처럼 흘러내려
나는 고요히 단단히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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