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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트랑제 Aug 21. 2018

집주인 가족에 대한 관찰기

집주인, 부인, 그리고 세 아들

#1 - 집주인


집주인은 50대 남성으로 집안의 기원은 터키다. 그 말을 듣던 날부터 상당히 터키인처럼 생겼다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남성다운 외모와는 달리 굉장히 친절하고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의 취미는 가드닝이라서, 우리 둘은 만나기만 하면 자주 식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이전에 살던 집주인은 정원을 싫어했으나, 내가 만든 정원을 나중에 무상 취득했다.)  


언젠가 그는 식물의 녹색이 너무 좋다면서 집 주변을 모두 녹색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는데, 그의 바람대로 수많은 식물들이 우리들 집 주변에서 쑥쑥 자라고 있다. 그의 포부를 현실화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식물은 다름 아닌 담쟁이덩굴인데, 건물 한쪽 벽면을 다 채워야 하는 중책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전 그의 포부가 좌절되는 일이 발생했다. 3층에 사는 세입자가 담쟁이덩굴을 잘라내 버린 것. 자신의 집 창문과 테라스를 가린다는 이유에서였다. 담쟁이는 2층까지만 영역을 확보하게 됐고, 이를 보면서 집주인은 매우 슬퍼했다. 그러면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그 사람은 식물을 싫어할 수가 있지?"


"... (그럴 수도 있지요)"


집주인의 또 다른 취미는 음악. 망돌(Mandole)이라는 알제리 전통 현악기를 연주하고, 흥에 겨우면 노래도 한다. 많은 나라의 전통음악이 그렇듯 사실 그리 흥미롭지는 않은데, 그는 때로는 밤늦게까지 연주를 한다. 가만 보니 주말에 지인을 초대한 다음 그들에게 연주를 선보이는데, 주말이 다가올수록 늦은 시각까지 그 준비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2 - 집주인 부인


집주인 부인은 금발에 자상한 미소를 짓는 사람이다. 지금도 미인이시지만 젊었을 때 한 외모 하셨을 것 같다. 언젠가 한 번은 내게 '우리 남편은 당신이랑 얘기하는 걸 너무 좋아해요'라고 말했는데, 약간 집주인과 나 사이를 질투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저 우리는 식물 얘기를 많이 하는 것뿐인데 말이다.


지난 달이었을까. 자신의 핸드폰이 이상하다며 내게 보여주는데, 나는 핸드폰 수리 기술자도 아니고 내가 어떻게 고치겠습니까라며 정중히 거절했다. 그런데 뭔가 눈치가 '너는 한국 사람이고 한국 핸드폰인데, 왜 못 고치냐'를 말하고 있어서 그럼 한 번 들여다보겠다고 핸드폰을 건네받았다.


외관이 멀쩡한 걸로 봐서 외부 충격에 의한 원인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고,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 현상이 있었다. 전원 키를 눌러도 켜지지 않는 상황. 어쩌면 충전이 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란 생각에 나는 그녀에게 요청했다. 마치 의사가 간호사에게 말하듯.


"충전기를 가져와 주세요."


간호사처럼 그녀는 신속히 움직였고, 내 손에 메스를 들려주듯 충전기를 내려놓았다. 그 충전기로 충전을 시켜보니 예감대로 충전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었다.


"제대로 된 충전기가 아닙니다. 핸드폰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고, 불량 충전기로 인한 것입니다."


그녀가 눈을 깜박이며 되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제대로 된 충전기를 구입하십시오."


그날 나는 내게 경탄의 눈길을 보내는 그녀를 뒤로 한 채,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3 - 집주인의 아들들


아들들이라고 한 이유는 집주인에게 아들이 3명 있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3명이 정말 다 다르게 생겼는데, 그런 이유로 나는 서로 배다른 형제가 아닐까란 의심을 하고 있다. 이슬람권에서는 4번까지 결혼할 수 있기 때문에 나의 가설은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 하지만 집주인에게 배다른 형제가 맞는지에 대해서 아직까지 물어보지는 않았다.


첫째는 허리가 아프다. 20대 중반인데 허리가 아파서 항상 허리를 꼿꼿이 세우는데, 처음에는 뭔가 위엄을 세우려는 듯한 태도로 보여 첫인상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그런데 심성이 착하고 내가 도움을 청하면 쉽게 응해준다. 집주인하고 가장 얼굴이 닮았고, 같은 직장에 다닌다.


한 번은 집주인과 첫째 아들에게 어떻게 같은 직장에 다닐 수 있냐며 집주인이 직장에 손 쓴 것 아니냐고 했더니, 집주인과 첫째 아들이 배꼽을 잡고 한참을 웃어댔다. 어느 외국인이 자신들의 비리를 정확하게 집어내니까, 웃음만 나왔나 보다. 


둘째는 말랐다. 집주인네가 전반적으로 넉넉한 풍채를 하고 있는데, 둘째만 말랐다. 머리를 묶고 다니고 패션에 관심이 많은 친구인데, 알고 봤더니 고등학생이었다. 어떻게 고등학생이 머리를 묶고 다닐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다. 둘째도 착한데, 얼굴도 정말 착하게 생겼다.


셋째는 뚱뚱하다. 초등학생인데, 키는 작지만 아무래도 내 몸무게와 비슷할 것 같다. 위로 두 명의 형과 나이 차이가 꽤 많은지라, 형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주로 혼자서 논다. 항상 웃고 다니는데, 한 번은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와 마주칠 때 인상을 써봤는데 그때도 날 보고 웃어서 조금은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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