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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트랑제 Aug 28. 2018

텃밭이 달라지고 있다

가을이 오면 또 달라지겠지

이번 여름, 정원의 구석진 공간을 텃밭으로 변신시켰다. 오래간만에 육체노동을 했는데 하필 매우 더운 시기였다. 가만히 있기만 해도 더웠던 날씨에 나는 곡괭이와 삽을 들고 하루 종일 씨름을 했으니 저녁만 되면 그냥 뻗어버렸다. 딱딱하게 다져진 흙을 일구고 큰 돌을 골라내는 과정을 하는 동안 잠시나마 화전민들의 고된 삶을 떠올렸다. 


농업전문가 K 박사님이 지난번 내게 '먹지도 못하는 것을 왜 키우냐'라는 농담 아닌 농담을 하신 적이 있는데 그 말씀을 받아들여 이 곳에는 오로지 먹을 수 있는 작물만 심기로 했다. 텃밭의 공간은 4개로 구분되었고, 나름 각 공간별로 작물 유형을 정했다. 허브, 약용식물, 엽채류, 과일 및 채소류 등이 그것.

 

1. 허브 공간

사실 지중해에서 어려움 없이 구할 수 있는 녀석들이 많고 키웠거나 키우고 있기 때문에 천천히 조성할 계획이다. 우선 민트 하나만 심었는데 얼마 전 집주인이 바질을 선물로 줘서 세입자가 하나 더 늘었다. 로즈마리가 번식되는 시기가 오면 꺾은 가지를 꽂을 계획이고, 묘목장에 갈 일이 생길 때 라벤더도 하나 업어오면 얼추 조성이 될 것 같다. 


2. 약용식물 공간 -> 고구마밭

애초 목적인 '먹을 수 있는 작물을 키우자'에 부합되지 않아 공간 이용을 변경했다. 약용식물 대신 고구마밭으로 바꾸고자 고구마 줄기 2개를 심었다. 오늘 파릇한 잎사귀들이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드는 것으로 보아, 뿌리가 잘 활착 한 것 같다. '약용식물'이라고 쓸 때는 뭔가 있어 보이는데, '고구마밭'이라고 하니까 좀 없어 보인다. 게으른 농부에게는 고구마가 딱이라는 말을 듣고 바로 고구마를 키우기로 결심했다는 건 비밀 아닌 비밀이다. 


3. 엽채류 공간 -> 미나리밭

엽채류라 해봤자 지금 있는 것은 상추뿐이라(그것도 고작 한 포기) 미나리밭으로 변경했다. 미나리는 참 번식력이 좋아 줄기를 눕혀놓는 대로 공간을 잠식하고 있다. 부엌 옆에서 화분 상태로 키울 때는 벌레가 많이 생기던데, 텃밭에 심어놓으니 벌레도 없고 훨씬 건강한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옛말에 자식은 꽁꽁 싸매며 키우는 게 아니라 했겠다.  


4. 과일 및 채소류 공간

과일나무는 주로 덩치가 크기 때문에 텃밭 안에는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했다. 우선 방울토마토를 심었는데, 테라스에서 키우던 녀석을 이사시켰다. 그러던 중 튼실한 가지 하나를 잃었는데, 덩달아 그 가지에 달려있던 방울토마토도 역시 잃었다. 추가로 딸기를 심었는데 제대로 활착하지 못했고 감자는 싹이 나다가 말았다. 딸기는 물에 담가서 뿌리를 좀 더 내야 할 것 같고, 감자는 어쩌면 시기가 안 맞는 것 같다. 방금 감자가 채소인지 찾아봤는데, 채소라고 한다. 


당초 계획대로 조성된 곳도 있지만, 변경된 곳도 여러 군데 생겼다. 배추 모종 4포기가 테라스에서 자라나고 있기에 나중에 텃밭에 아주심기를 하게 되면 공간 이용이 또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처음엔 텃밭이 꽤 넉넉한 크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비좁게 느껴진다. 


(배경 사진: 허브 중 하나인 바질. 일반적으로 키우는 스위트 바질에 비해서 잎이 작은 종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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