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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트랑제 Apr 16. 2020

광주 탐구생활 03

85살이 된  <광주극장>

영화 <모리의 정원>을 보기 위해 광주극장을 찾았다. 이 영화는 불행히도 오늘자로 종영했는데, 나 포함 총 4명의 관객이 이 멋진 영화의 마지막을 함께 했다. 영화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영화 <모리의 정원> 포스터

나는 어릴 적 광주극장을 이용해본 기억이 없지만, 극장 앞에는 멋을 한껏 부린 대학생들로 가득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아마 그 대학생들의 한 명이었을 내 지인 A은 그의 대학시절 극장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고 한다. 광주극장뿐만 아니라 무등극장, 제일극장 등이 자신의 터전이었다고. 그의 말에 따르면 한 해동안 관람한 티켓들을 모아 오면 그중 가장 많은 티켓을 모아 온 사람에게 '3개월 무료극장 이용권'을 주는 이벤트를 했는데, 그는 그 이벤트의 주인공이 되었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영화 간판이 '그려져' 있다

건물 외부는 20세기 초 건물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나는 만약 이 건물이 20세기 초의 건물이라면 르 코르뷔지에 급의 엄청난 건물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의 '빌라 사보아'가 1931년에 완공된 걸 고려하면. 하지만 인터넷을 찾아보니 현재의 건물은 1968년 화재사건 이후 다시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외부 매표소는 운영되지 않는다. 건물 안에 들어가야 표를 구입할 수 있다.

표를 미리 끊어놓고 동명동에 구경 갔다가 영화 시작시간에 맞춰 다시 극장을 찾았다. 사람이 없으니 매표하시는 분과 잠깐 대화를 할 수도 있었는데, 덕분에 독립서점 <소년의 서> 주인분의 근황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사장님, 파이팅입니다.)


영화가 시작되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극장 1층을 좀 둘러보았다. 책과 각종 굿즈를 파는 공간이, 어느 벽면에는 책이 놓여 있었다. 

다음 프로는 사진가 세실 비튼이라니요. 좀 당황스럽습니다.
코카콜라의 빨간색과 저 빨간 포스터가 이렇게 절묘하게 어우러지다니

현대적인 멀티플렉스 극장에 익숙해진 나로서는 갈 곳을 잠시 잃을 수밖에 없는데, 직원은 2층으로 올라가면 된다고 했다. 

사람도 없으니 약간 으스스한 분위기가 난다
녹색과 파란색과 핑크색이 병치된 풍경. 나라면 절대 시도하지 못할 색의 조합이다.

2층에 올라가서도 여전히 나는 방황했다. 다른 사람들이라도 있으면 아무 생각 없이 그들의 뒤를 따라가기라도 할 텐데. 나는 출입구를 찾아 상영관에 들어섰다. 

극장 건물에 스크린이 단 하나뿐이다. 2층에 자리를 잡았다.

자유석이라서 번호를 찾을 필요가 없었다. 나는 정중앙에 앉았는데, 앉고보니 커플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허전한 내 왼쪽 자리에 백팩을 올려놨다. (커플석은 짐 놓기에 좋은 자리이로구나)


특이하게도 영화 시작 전에 광고가 없었다. 즉, 화면이 켜지고 1분(?)도 안되는 시간에 영화가 시작됐던 것이다. 광고를 안 봐서 좋기는 한데, 뭔가 워밍업없이 시합에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상영관의 뒤편 모습

단순히 오래됐다는 이유로 존재해야 할 극장은 아니다. 지역 최초의 조선인이 세운 극장이라는 점, 신문화운동을 통해 항일정신을 이어갔다는 점에서도 이와 같은 문화유산은 보존되어야 할 이유가 있다.


굉장히 낮은 좌석점유율(코로나 때문이 아니더라도)로 인해 극장의 위기는 여전할 것으로 보이는데, 2015년부터는 영화진흥위원회 지원사업을 거부했다고 한다. 지원금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히는데, 과연 후원을 통해 이 극장은 존속될 수 있을까. 이 극장의 100년 생일은 찾아올지 미래가 궁금하다. 

극장 뒤편에는 '영화의 집'이 있다. 건물과 정원이 아름다운 곳인데, 현재 문은 닫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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