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살이 된 <광주극장>
영화 <모리의 정원>을 보기 위해 광주극장을 찾았다. 이 영화는 불행히도 오늘자로 종영했는데, 나 포함 총 4명의 관객이 이 멋진 영화의 마지막을 함께 했다. 영화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나는 어릴 적 광주극장을 이용해본 기억이 없지만, 극장 앞에는 멋을 한껏 부린 대학생들로 가득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아마 그 대학생들의 한 명이었을 내 지인 A은 그의 대학시절 극장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고 한다. 광주극장뿐만 아니라 무등극장, 제일극장 등이 자신의 터전이었다고. 그의 말에 따르면 한 해동안 관람한 티켓들을 모아 오면 그중 가장 많은 티켓을 모아 온 사람에게 '3개월 무료극장 이용권'을 주는 이벤트를 했는데, 그는 그 이벤트의 주인공이 되었다고 한다.
건물 외부는 20세기 초 건물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나는 만약 이 건물이 20세기 초의 건물이라면 르 코르뷔지에 급의 엄청난 건물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의 '빌라 사보아'가 1931년에 완공된 걸 고려하면. 하지만 인터넷을 찾아보니 현재의 건물은 1968년 화재사건 이후 다시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표를 미리 끊어놓고 동명동에 구경 갔다가 영화 시작시간에 맞춰 다시 극장을 찾았다. 사람이 없으니 매표하시는 분과 잠깐 대화를 할 수도 있었는데, 덕분에 독립서점 <소년의 서> 주인분의 근황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사장님, 파이팅입니다.)
영화가 시작되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극장 1층을 좀 둘러보았다. 책과 각종 굿즈를 파는 공간이, 어느 벽면에는 책이 놓여 있었다.
현대적인 멀티플렉스 극장에 익숙해진 나로서는 갈 곳을 잠시 잃을 수밖에 없는데, 직원은 2층으로 올라가면 된다고 했다.
2층에 올라가서도 여전히 나는 방황했다. 다른 사람들이라도 있으면 아무 생각 없이 그들의 뒤를 따라가기라도 할 텐데. 나는 출입구를 찾아 상영관에 들어섰다.
자유석이라서 번호를 찾을 필요가 없었다. 나는 정중앙에 앉았는데, 앉고보니 커플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허전한 내 왼쪽 자리에 백팩을 올려놨다. (커플석은 짐 놓기에 좋은 자리이로구나)
특이하게도 영화 시작 전에 광고가 없었다. 즉, 화면이 켜지고 1분(?)도 안되는 시간에 영화가 시작됐던 것이다. 광고를 안 봐서 좋기는 한데, 뭔가 워밍업없이 시합에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단순히 오래됐다는 이유로 존재해야 할 극장은 아니다. 지역 최초의 조선인이 세운 극장이라는 점, 신문화운동을 통해 항일정신을 이어갔다는 점에서도 이와 같은 문화유산은 보존되어야 할 이유가 있다.
굉장히 낮은 좌석점유율(코로나 때문이 아니더라도)로 인해 극장의 위기는 여전할 것으로 보이는데, 2015년부터는 영화진흥위원회 지원사업을 거부했다고 한다. 지원금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히는데, 과연 후원을 통해 이 극장은 존속될 수 있을까. 이 극장의 100년 생일은 찾아올지 미래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