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화, 이효리, 제시, 화사의 환불원정대가 반갑다. 어린 시절 엄정화나 이효리를 좋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의 등장은 중년이 된 나에게 뭔가 힘을 솟구치게 한다. 아마도 댄스 가수로서 무대에 서기로는 조금은 무리지(?) 싶었는데 멋진 무대를 보고나니 응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래 제목인‘Don't Touch Me.’부터 센 기운이 느껴진다. 강렬한 사이렌 소리와 시작되는 노래의 첫 부분과 당당하게 계속 반복되는 ‘Don't Touch Me.’21세기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필수어가 되어버린 ‘Don't Touch Me.’ ‘세다’라기 보다당연하다 해야겠다.
성경의 구약시대에 ‘Don't Touch Me.’를 외쳐 자신을 지킨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소재로 한 그림이 있다. 바로 틴토레토(1519~1594)의 ‘수산나의 목욕’이다. 수산나 이야기는 성경에서 외경으로 분류되는 다니엘서 13장에 나온다. 바빌론에 요야킴의 아내 수산나라는 미모가 출중한 여인이 있었다. 요야킴은 큰 부자로 넓은 정원을 가지고 있었고, 마을에서 존경받는 사람인지라 마을 사람들이 집에 자주 드나들었는데, 마을의 원로들이 수산나를 보고 음욕을 품게 되었다. 그러던 중 무더운 어느 여름날 두 원로 훔쳐보는줄도 모르고 수산나가 더위에 정원에서 목욕을 한다. 두 원로는 이때다 싶어 보는 것을 넘어 뛰쳐나와 수산나에게 잠자리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지 않으면 젊은이와 간통했다 거짓 증언 하겠다고 협박까지 한다. 물론 수산나는 그들에게‘Don't Touch Me.’,를 날렸고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이야기가 그렇듯 사형집행이 이뤄지려는 찰나 어린 다니엘이 등장 여인의 누명을 풀어주게 된다.(어떻게 누명을 풀게 되었는지 궁금하다면 다니엘서 13장을 읽어보시길….)
틴토레토는 수산나 이야기 중 원로들이 훔쳐보고 있는 순간을 그렸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원 왼쪽으로 사슴 두 마리가 노닐고 있고, 목욕하는 앞으론 담벼락이 있는데 장미 넝쿨이 자연스럽게 말아 올라갔다. 그리고 그 장미 담벼락 아래로(그림의 앞쪽) 대머리 원로가 수산나를 훔쳐보고 있다. 수산나가 앉아있는 곧 위쪽으로 연못도 있는데 오리 두 마리와 새끼 다섯 마리가 노닐고 있다. 요야킴은 역시 대단한 부자다. 담벼락 위쪽으론(그림의 뒤쪽) 머리가 하얀 원로가 수산나가 목욕하는 것을 훔쳐보고 있다.
수산나의 하얀색 피부가 매우 돋보이는데, 수산나의 두 손목엔 금으로 장식된 금팔찌가, 오른발 앞으론 은 빗(우리나라 참 빗과 비슷하다.), 은 머리핀 진주목걸이, 금반지 그리고 화려한 화장품 통이 있다. 다리 위에 하얀색 천을 살짝 걸치고 앉아 거울을 보고 있다. 왼쪽 다리는 물에 들어가 있는데, 물이 얼마나 맑은지 종아리가 훤히 비친다.
여인의 역동적인 자세와 풍만한 살집, 하이라이트로 처리된 하얀 피부, 여인의 것으로 보이는 갖가지 화려한 장신구들에 대한 섬세한 표현, 그리고 푸른 정원과 원로의 붉은색 옷의 대비, 철저히 계산된 원근법. 역시 ‘베네치아파의 마지막 거장’이라 불릴 만한 한 그림 솜씨다.
그림 속 수산나는 곧 닥쳐올 위험을 순간은 모른 체 거울에 자신의 미모를 비추며 목욕을 즐기고 있다. ‘수산나 이야기’의 전반부 클라이맥스다. 틴토레토는 왜 이 순간을 이토록 자세하게 실재하는 것처럼 그렸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틴토레토의 의도를 추측해보자. 내셔널갤러리에는 귀도 레니의 ‘수산나의 목욕’이 있다. 귀도 레니는 원로들이 수산나에게 자신들과 잠자리를 같이 할 것을 조심스레 말하는 순간을 그렸다. 또 루브르에 있는 렘브란트의 ‘수산나의 목욕’은 원로들의 목소리를 듣고 자신의 몸을 감추는 순간을, 장-밥티스트 상테르 ‘수산나의 목욕’은 제목만 그럴 뿐 이야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수산나를 관능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틴토레토의 의도는 무엇일까? 아마도 틴토레토의 ‘수산나의 목욕’은 장-밥티스트의 상테르의 작품처럼 노골적으로 여인의 누드만을 강조하고 있지는 않지만 보여주기 위한 그림이 아닐까 한다. 수산나의 이야기의 핵심은 ‘Don't Touch Me.’다. 강하게 밀쳐내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순간의 모습을 그렸어야 했다. 마치 귀도 레니나 렘브란트처럼 말이다.
틴토레토는 대놓고 볼 수 없는 여인의 누드를 수산나라는이야기로 관람객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거다. 그리고 그 작품을 보고 있는 우리는 어느새 공범이(?) 되었다.
르네상스 때부터 ‘수산나 이야기’는 그림으로 많이 그려졌다. 대체로 성화라는 것이 일반 대중들이 라틴어를 모르기 때문에 성경에 쉽게 풀어주기 위해 그렸다. 하지만 틴토레토의 그림은 그런 목적과는 쪼깨 먼 듯 보인다. 그림을 그림으로 볼 수 없는 시대가 된 것 같아 아쉽기도 하지만 그 시대적 상황과 작가의 의도를 생각해보고 그림을 읽는 것이 더 가까이 가는 길이지 않을까?
그리고 중요한 오늘의 교훈, 21세기 언제든 ‘Don't Touch Me.’가 들릴 수 있는 시대임을 잊지 말자!
귀도레니, 렘브란트, 장-밥티스 상테르
■ 참고
1. 정경-하느님의 권위 있는 말씀으로 확정된 것(구약 39권, 신약 27권)
외경-정경처럼 절대적 권위는 없지만, 교회가 존중해 온 책들
위경-성경과 유사해 보이는 내용을 담고 있으나 교회가 올바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책들
2. 다니엘서 13장은 외경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어린 다니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래서 정경만을 보는 개신교의 성경책에는 나오지 않는다.
3. 70인역 구약성경 중 그리스어로 집필된 는 유딧, 토비트, 바룩, 지혜서, 집회서, 마카베오기 상권, 마카베오기 하권, 다니엘 3장 24절~90절[1], 13,14장,에스텔 10장 4절~16장을 로마가톨릭(정교회 포함)은 외경(제2경전) 으로 하고 있다. 정경, 외경, 위경에 대한 구분 및 효력에 대한 인정은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 개신교가 모두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