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_호작도
베이스기타의 반복되는 멜로디 반주가 일품인 이날치(李捺治, 1820년 ~ 1892년, 조선시대의 명창이다. 전라도 담양 출생하였으며 서편제의 거장이다.)밴드의 ‘범 내려온다’라는 노래가 요즘 각종 방송과 커뮤니티에서 뜨겁다. 나도 노래가 너무 재밌어서 하루에 한 번은 꼭 보고 있다. 이 글을 쓰기로 하면서도 10번은 넘게 본 것 같다. 그래도 질리지가 않고, 흥얼흥얼 따라 부르기도 하며, 따라 춤추기도 하고 싶은 중독성을 느끼는 노래다.
이 노래는 수궁가에서 자라가 ‘호선생’이라 부르는 장면을 현대적으로 만든 곡인데, 자라가 물에서 막 나오다 보니 숨이 차서 ‘토선생’이라 부를 것을 잘못 불러 ‘호선생’을 부른 이야기 대목이다. 그런데 잘못 부른 줄도 모르는 우리 호선생은 자신을 불러 준 자라가 고맙기도 하고, 멋지게 보이고 싶은 마음에 잔뜩 힘을 주고 내려오게 된다. 상황이 웃기기는 하지만 백두산 호랑이 하면 울던 아이도 그치게 만드는데, 늠름하고 용맹하게 묘사한다.
‘범 나려 오다 범인 나려온다 송림 깊은 골라 한 짐생이 내려온다 누에머리를 흔들며 양귀 쭉 찢어지고 몸은 얼쑹덜쑹(여러 가지 빛깔로 된 큰 점이나 줄이 고르지 아니하게 뒤섞이어 무늬를 이룬 모양) 고리는 잔뜩 한발이 넘고 동이 같은 앞다리 전동 같은 뒷다리 새낫 같은 발톱으로 엄동설한 백설격으로 잔디뿌리 왕모래 좌르르르르르르 헛치고 주홍입 쩍 벌리고 자래 앞에거 우뚝서 홍행홍행 허는 소리 산천이 뒤덮고 땅이 툭 깨지난 듯 자라가 깜짝놀래 목을 움치고 가만히 엎졌을 때’
이 노래를 듣다 보니 그림이 절로 따라 나온다. 당연히 이번에 같이 볼 그림은 ‘호작도’다. 누가 그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메시지만은 분명하며 우리 머릿속에 갖고 있는 그 호랑이 이미지, 바로 민화. 오늘은 국립중앙박물관의 ‘호작도’를 함께 보자.
아무래도 김홍도가 그린 ‘송하맹호도’에 비해 조금(?) 그 실력이 달리기는 하지만, 호랑이의 무시무시함 만큼은 절대 꿀리지 않는다. 수궁가에서 범을 묘사한 것처럼, 머리를 이리 저리 흔들다 무슨 소릴 들었는지 옆을 쳐다보고 있다. 자라가 ‘호선생’하고 부른 소리를 들은 게 분명하다. 몸에는 검은 줄이 고르지 않게 뒤섞여 있고, 꼬리는 길게 구부러져 소나무 가지까지 올라갔으며, 앞다리와 뒷다리에는 하얀 발톱이 툭하니 튀어 나와 있다. 단연 돋보이는 곳은 얼굴이다. 위로 삐죽 올라간 커다란 노란색 눈동자, 눈 주변은 빨갛게 채색되어 역시 무서워 보인다. 그리고 하이라이트는 입. 턱 끝까지 쩍 벌어진 잎에는 날카롭게 뾰족한 이빨이 보인다. 내 앞에 저런 호랑이가 나타난다면 땅바닥에 넙죽 엎드릴 것 같다. 정말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다소 실제 호랑이 보다 과장되게 그려지긴 했지만, 할머니의 입으로 전해 듣던 그 무시무시한 호랑이의 모습과 똑 닮았다.
소나무 잎을 그리면서 국화점과 수엽점 그리고 송엽점이 한데 어우러져 산만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녹색의 담채가 여름의 습윤한 소나무 잎을 그럭저럭 잘 표현하기도 했다. 그림의 오른쪽 상단의 넝쿨식물이 소나무와 어울리지 못하고 어색함을 더하기도 하지만 날렵한 까치는 제법 잘 그리기도 했다. 이외에도 뭔가 어색한 구석들이 많기는 하지만 조선후기 일반 백성들이‘호작도’를 통해 액막이와 경사를 바랬던 마음을 담기에는 충분하다.
2020년을 돌아보니 정말 흉흉했던 일들이 많았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코로나19 지긋지긋 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예부터 연말연시에 액막이와 경사의 마음을 담아 ‘호작도’를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로 나눠줬었다고 한다. 조금 이르기는 하지만 올 한해 무사히 넘기기를 바라는 마음과 2021년 좋은 일만 넘쳐나기 바라는 마음을 담아 ‘호작도’를 선물하면 어떨까 한다. 이때, 배경음악은 물론 이날치밴드의 ‘범 내려 온다’가 되겠다.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장림깊은 골로 대한 짐승이 내려온다 몸은 얼숭덜숭 꼬리는 잔뜩 한 발이 넘고 누에머리 흔들며 전동같은 앞다리 동아같은 뒷발로 양 귀 찌어지고 쇠낫같은 발톱으로 잔디뿌리 왕모래를 촤르르르르 흩치며 주홍 입 쩍 벌리고 워리렁 허는 소리’
- 참고 -
국화점 : 국화모양으로 가운데를 중심으로 일곱 또는 여덟 개의 점이 한 다위를 이루도록 그렸다.
수엽점 : 아래로 늘어진 점으로 수분을 잔뜩 머금어 밑으로 처진 나뭇잎을 묘사한다.
송엽점 : 소나무의 침엽을 묘사흔 점으로 대개 다섯 또는 일곱 개의 가느다란 선들로 뻗어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