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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진 May 30. 2022

하루에도 내 마음은 사계절

[연재] 엄마와 딸의 오늘은 사춘기

 




꼬마는 이제 숙녀가 되려고 하는 모양이다. 내가 무릎을 꿇고 운동화 끈을 고쳐 묶어 줬었던, 여전히 손에 잡힐 듯 우리들의 어제의 수많은 장면이 눈앞에 나풀거린다. 그렇다고 해서 지난 시간이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도 아니다. 분명 나의 꼬마는 자랐다. 게다가 지금도 자라고 있으니, 어제의 시간이 이 아이를 도담도담 돌봐주며 여기에 데려다 준거라 생각한다.


이제 아이는 걷다가 신발 끈이 풀리면 스스로 다시 묶을 줄 안다. 약병의 안전 뚜껑을 힘을 꼭 주고 돌려 열 줄 알며, 시계를 보고 자신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줄 안다. 나보다 더 잘 뛰고, 나와는 또 다른 방법으로 말한다. 나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 모양인데, 나만 여전히 이것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있다.

 엄마라는 책임감의 이름표를  갑자기 떼기가 아쉽다.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 아니 잉태의 첫 순간부터 여자는 엄마가 되지만, 이 영역의 본질에는 자의든, 타의든 책임감이 어느새 깊게 스며들어 나의 존재를 아이에게서 찾으려는 경우가 많다.


나는 전보다 아이의 짜증을 더 많이, 자주 듣고 있다. 그리고 나도 동시에 비례하여 짜증과 화로 받아친다. 본래 서로 자주 티격태격하던 엄마와 딸이라 일상에 화해와 갈등의 경계가 흐릿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결이 조금 다른 방식의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아이의 말투, 성량이 드러나는 태도는 ‘나는 책임감이 있는 엄마잖아.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당황스러운 물음이 자주 튀어나온다.


-내 아이는 자신의 유년시절에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너는 내게 어떻게 기억될까


딸과 나 사이에 이전과는 다른 바람이 미세하기 불기 시작했다. 예민하게 느끼지 않으면 짜증과 화라는 이름으로 쉽게 넘겨버릴 기류를 타고.


-무엇이 너의 마음을 조금씩 바꾸고 있는지.


딸은 자신만의 삶의 조각을 이어 보려고 움직이기 시작했나 보다. 그러자 비로소 봄이 여름이 되고, 이내 가을이 오고, 가을이어도 겨울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로서 나는 당연한 듯 담담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든다. 내가 네 요즘에 별명을 붙여 준다면 이 정도가 좋겠다.


“하루에도 내 마음은 사계절”


하루에도 네 마음은 사계절. 매일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수없이 왔다 가서 네 마음속엔 봄비도, 꽃비도, 소나기도, 보슬비도, 그리고 무지개와 차가운 눈이 쏟아지는 것 같아. 그리고 금세 잊어버리는 것처럼 보이지. 네 맘의 잔디 위에 꽃비가 언제 내렸나는 듯 화가 폭풍처럼 네 마음을 뒤집어 놓고, 그랬다가도 이내 다시 잠잠한 호수가 되어 버리네. 그럼에도 나는 너의 온계절을 사랑해. 왜냐하면 지나간 것은 다시 돌아오기 때문이야 더 깊고 진하게 자란 모습으로.


이것은 아이의 요즘 기록이기도, 지금의 나를 기억하기를 위한 글이다. 우리를 관찰한 기록이 되길, 여기에 훗날 손을 얹고 글 속의 우리를 그리워하겠지, 그리고 이 문장을 나누는 방식과 엮을 마음이 우리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어 주겠지, 가끔 나는 네게 시를 쓰기도, 읊어 주기도, 노래를 만들어 주기도, 그림책을 읽어 주기도 할 거란다. 우리를 더 이해하고, 우리가 우리를 더 공감하고, 우리 사이의 샘에서 솟을 믿음을 만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우리는 엄마와 딸, 그리고 나와 너, 우리의 방식으로 마주할 삶의 모습을 기대해 보자고.


5월의 장미에는 봉우리마다 피고 지는 순간이 맺혀 있다. 꽃송이끼리 서로 적당한 거리에 서서 서로의 잎을 건드려 해를 끼치지 않고, 서로를 풍성하게 둔다. 이 모습이 너와 나, 딸과 엄마, 그러니까, 우리 같다.







<하루에도 내 마음은 사계절>

아이와 엄마의 사춘기 성장 기록을 연재합니다

- 아이가 어느새 사춘기를 맞았나 봅니다. 엄마도 아이와 함께 자란다면, 까마득한 오래전 사춘기 말고, 엄마에게도 또 다른 사춘기가 오는 것 같습니다. 다행히 나의 아이와 함께 이 시절을 겪으니 우리는 서로를 더 잘 알아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가끔 우리에게 적당한 편지와 적당한 글을 들려주고, 지금을 기록하면서 우리는 서로를 보듬어 줄 것입니다. 가장 희망적인 방식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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