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소진 Jun 14. 2022

봄비 후, 열대 바다

[연재] <하루에도 내 마음은 사계절>



봄비 후, 열대 바다



연재 <하루에도 내 마음은 사계절>
엄마와 딸의 오늘은 사춘기 기록






봄바람은 연둣빛 언덕 위를 보드랍게 미끄러졌다. 이윽고 아지랑이를 눈앞에 데려왔다. 봉긋한 능선 위에 아득한 물결이 자기만의 파동을 가지고 움직인다. 아이들은 조그맣고 낮은 언덕 위를 뛰었고, 나는 그 아래에서 아지랑이 위를 파도 타듯 점프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중간중간 두더지 게임에서 솟아 나오 듯 들락날락하는 천진한 얼굴이 귀여웠다.


금세 아이들은 땀에 흠뻑 젖었다. 나는 봄바람에 살갗만 내어 놓았기에 땀은커녕 건조하다. 아이들이 뜀박질 한 곳과 내가 앉아 기다린 시공간은 같지만 서로 너무 다른 모양이다.


“엄청 뛰었네, 엄마를 봐봐. 하나도 땀이 안 났는데?”


당연한 일을 당연하듯 말해서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아이와 나 사이의 온도를 재어보고 싶어졌다. 흐르는 땀의 온도가 아닌 우리 사이의 요즘 온도. 이건 내 가슴에 귀를 살며시 대어 봐야 하는 일, 그리고 아이의 마음 앞에서 똑똑, 몇 번 노크하고 기다려야 열리는 일이다.


함께 맡는 이 계절의 바람을 너와 나, 우리는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아이의 생각을 어디까지 상상하고 인정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자 정신이 반짝 든다. 너와 나 사이의 바람의 의미가 다를 거다. 내 마음의 연못 위를 흐르는 내 삶의 기류와 아이의 심연을 휘젓는 아이만의 기류가 다르니까. 그런데 나는 이 다름을 쉽게 인정하기가 어렵다.


생각건대, 나는 아이와 나의 세상을 동일하게 여겼다. 분명 그랬을 거다. 소유와 점유, 공유의 의미를 명확히 구분하라면 부담스럽다. 나는 “엄마니까 네게 좋은 것만 줄 거니, 그러니까 내 말을 안 들으면 안 되지!” 하는 마음이어서 너의 생각도 가끔 내가 훤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우리의 생각이 같기를 욕심 냈다. 내가 꾸리는 가정 안에서 아이는 유년 시절을 보내니 나와 아이의 세계를 똑같이 여기게 된다는 약간은 못된 방식으로.


아이가 자라는 삶에 맞춰 나의 새로운 자리를 찾아야 하는 변화,
이것은 인정해가는 일이다.



정작 아이를 존중하는 법을 잘 모르지 않았나 싶다. 아이의 삶을 대부분 점유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으레 ‘네 생각은 나와 같아.’라는 마음이었다. 비슷한 모양을 한 마음이 아이의 행동 앞에서 충돌한다. 작은 결정은 스스로 하기를 원하면서 여전히 엄마의 의견대로 하기를 바라는 마음, 또 이제 네 나이는 결정을 스스로 해야 한다고 재촉하면서도 불안해하는 마음, 엄마인 내게 모든 다 말해주길 원하는 마음, 너와 나 사이에 침묵이 시작되지 않기를 그래서 무엇보다 오늘 네 기분에 대해 내게 다 털어놓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봤다.


이제는 아이가 불쑥 끼어들기 시작한다.

‘이제 나는 컸어. 나를 인정해 줘.’


기류의 변화가 시작됐다. 바람의 방향이 바뀔 거고, 비가 오는 횟수도 다를 거고. 우리는 적응해야 한다.



내가 선택한 건데 왜 엄마는 나를 존중해주지 않아?


얼마 전 겨울 점퍼를 정리하고 옷장에 넣었다가 꽃샘추위에 다시 꺼냈다. 그리곤 다시 정리를 못해 옷걸이에 걸어 두었다. 그런데 아이는 자꾸 패딩을 입고 학교에 가겠다 한다. 5월의 끝자락에 기온이 20도를 훨씬 웃도는 포근한 날씨에 한겨울 패딩을 고집하는 게 여러모로 싫었다.


“등굣길에 이런 두꺼운 옷을 누가 입냐, 옷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러냐, 감기 걸린다, 추워하는 것처럼 아픈 것처럼 보인다, 챙겨주는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러냐.” 등의 타박은 결국 “넌 왜 도대체 엄마 말을 안 듣니?”라는 훈계로 끝이 났다. 엄마의 짜증에 입도 삐죽삐죽, 그러면서 내게 하는 말.


내가 고른 건데 좀 존중해주면 안 돼?


너는 봄 같았다. 늘 예쁘기만 하고, 늘 새로웠다. 그런데 영원할 것 같은 봄이 조금씩 바뀐다. 우리 사이에 달라진 기류는 우리의 풍경을 조금 다르게 만들었다. 존중을 표현해달라는 아이의 신호를 알아차리면서 내가 아이에게 주었던 사랑,  선의라고 생각했던 마음이 다르게 느껴졌을 수도 있을 거라 되짚어 본다. 나의 표현이 너의 세계에 어떻게 와닿았을지, 미묘하게 달라진 기류, 나는 이것을 아이의 성장이라고 이름 붙인다.


소유하려는 욕심에서 멀어지고 인정해주기


나도 너를 진심으로 인정해보려고 해


성장을 알아차리는 것은 아이의 의견을 인정해 가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이것은 존중해 가는 일이다. 나는  자리에 앉아 있고, 아이들이  멀리 뛰어다니면서 노는 모습을  때마다 마치 우리만의 열대 바다가 펼쳐진다.

 유난히 파란 늦은 봄과 여름 사이의 하늘 아래서는 너와 내가 더 바쁜 모습이다. 봄을 지나, 봄을 영영 잊을 듯이 비를 내리고, 쨍한 열대 아래에 있는 듯 태양이 쏟아지지만, 마치 바다 위 하늘처럼 유난히 바쁘고 미묘하고 도드라지는 우리 사이의 흐름, 감정의 기류다.


 열대 바다는 하루 종일 뜨거운 햇빛이 쨍쨍 내리쬐기 때문에 뜨거워진 공기가 위로 올라간다. 그래서 엄청난 상승기류가 생기고, 열대성 저기압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상승하면 구름이 만들어지고 비가 내릴  있다. 너와 내가 하루 종일 바다에서 놀다가 맞는 , 나는 생각도 못했는데 아이가 내리게 하는 비, 그래서 준비 없이 맞게 되는 . 기류가 달라지니 내리는 너의 변화. 우리 사이의 기류 같은 .


너의 삶에도 너만의 온도가 있지

너의 삶에도 너만의 지형이 있어,

그래서 이로부터 무엇인가가 일어나.

너만의 공기는 흐르고, 나의 것도 그래.

그래서 이제 그것을 존중해 보려고 해.


비가 내리고 이내 부는 바람결에 귀를 대본다. 온도는 비슷한데, 이곳의 온도나 지형의 차이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공기의 흐름이 미묘하다. 환절기의 스산한 기류를 타고 낮게 드리워져 있는 하늘은 아직도 물기를 머금은 듯했고, 우리 사이에는 우리들의 작은 열매가 더 탐스럽게 맺힐 기류가 감돈다.


너는 너의 기류를 타고

너만의 열매를 맺을 준비를 하지.

그 과정을 깊이 존중하고 인정해 볼게.


예상치 않은 자리에서도 적당한 기류 속에서는 생명은 익어간다.



<하루에도 내 마음은 사계절>

아이와 엄마의 사춘기 성장 기록을 연재합니다

- 아이가 어느새 사춘기를 맞았나 봅니다. 엄마도 아이와 함께 자란다면, 까마득한 오래전 사춘기 말고, 엄마에게도 또 다른 사춘기가 오는 것 같습니다. 다행히 나의 아이와 함께 이 시절을 겪으니 우리는 서로를 더 잘 알아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가끔 우리에게 적당한 편지와 적당한 글을 들려주고, 지금을 기록하면서 우리는 서로를 보듬어 줄 것입니다. 가장 희망적인 방식으로요.






작가의 이전글 하루에도 내 마음은 사계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