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앞으로 가는 어린이가 있다. 보폭은 최대한 뒷걸음칠 수 없게 널찍널찍하다. 아주 당찬 걸음으로 간다. 아이가 찍어 내는 발자국은 아주 깊다. 발자국에는 질퍽질퍽한 감정이 묻어 있고, 편안하고, 가끔 아슬아슬하다. 걸어가는 얼굴에는 얄궂게 깨문 입술이 있고, 살구처럼 환하고 동그란 탄성을 내뱉는 입술이 있고, 처음 알아버린 설움에도 굳게 다짐하는 입술이 있다. 어린이는 언제나 밝다. 왜냐하면 계속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경험을 오랫동안 잘 기억한다. 자기의 무릎에 난 작은 상처도, 누군가의 칭찬도, 훈계를 가장한 체벌도 잘 기억한다.
나의 어린이는 오렌지 주스를 좋아한다. 알맹이가 씹히는 것이 있는데 그게 톡톡 터지는 것이 여간 재미가 있다. 소화가 안될 때는 오렌지 주스를 마신다. 또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단 한번도 외로웠던 적은 없었으나 쓸쓸했던 적은 있었다. 책 냄새를 좋아하고 비 오는 날 나가는 것을 싫어한다. 어린이는 가끔 내가 문을 두드리면 나온다. 엄마가 손으로 뜬 뜨개 모자를 쓰고 있기도 하고, 손톱을 물어뜯으면서 불안한 눈으로 서 있기도 하고, 처음 해 본 반장 이름표를 달고 친구들한테 줄을 서라고 말하고 있기도 하다.
언젠가 나의 어린이와 어린이의 가족은 서해 바다를 갔다. 낮에 불어오는 짭쪼름한 바닷물 냄새가 아직까지 아이의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배어있다. 밀물이 낮게 들어오고 썰물이 멀리 나가는 조금 때에 장화를 신고 푹푹 꺼지는 펄 속에서 조개를 들어올린 것을 잊지 못한다. 엄마는 어린이를 올려다보며 옹달샘 같은 미소를 지었다. 어린이는 자라서 엄마와 아빠의 샘을 벗어나게 된다. 미쁘기만 했던 작은 세계를 뒤로 하고 힘차게 걸어 나오면서 다짐했다. 단 한 개도 내게 소중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고. 그러니까 그런 기억이 나를 구원해줄 것이라고. 어린이의 샘에 땅별이 비추는 날이었다.
내 마음 속에는 언제나 영원할 나의 어린이가 산다. 내가 내게 보내는 다정한 안부이자 지난 시간을 곧게 마주한 격려이다. 나는 여전히 오렌지주스를 좋아하고, 책 냄새를 좋아하고 비 오는 날은 밖에 나가지 않는다. 그리고 아주 오래 전 바다 여행 꿈을 가끔 꾼다. 꿈 속에서도 텁텁한 짠 바닷바람이 목구멍 깊이 들어온다. 엄마는 나의 깊은 옹달샘 앞에서 언제나 당신의 어린이를 기다리고, 너무 멀리 갈 필요도, 또 앞으로만 갈 필요도 없다고 한다. 그러면 나는 울음을 그치고 뒤를 돌아본다. 마지막으로 찍힌 나의 발자국 앞에서 나의 어린이가 손톱달처럼 눈을 싱긋하고 웃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