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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진 Oct 28. 2021

당신은 어떻게 계절을 느끼나요?




당신은 어떻게 계절을 느끼나요?




 꼭 우리의 전통 지붕같이 생긴 모양이다. 짙은 회색의 기와가 거칠게 쌓여 있는 지붕 위로 계절을 한껏 담은 나무가 큰 키로 담을 넘는다. 세월을 온몸으로 겪어야 이렇게 자랄 수 있겠다 싶었다. 처음으로 고개를 올려 봐야 시선이 닿는 키 큰 무화과나무를 보았다. 여름을 쏠고 간 바람은 어느새 꽤 쌀쌀히 분다. 가을 국화가 단정하게 폈고, 아기 얼굴보다 큰 해바라기는 얼굴 가득히 익어 까맣게 된 열매 덕분에 고개를 아래로 숙인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우리는 어떻게 각자의 방식으로 계절을 느끼는가? 어떤 이는 계절을 사람들의 옷차림에서, 또 누구는 숲과 나무의 색, 또르르 구르는 열매와 같은 자연의 파편을 보고 알아간다. 당신은 지금, 어떤 장면을 만나고 있나요? 무화과 열매가 낯설게 달린 나무의 잎이 무성하게 가을을 외치는 날이다.



(사진 : 본인 촬영, 독일 헤센 주 도시 Kronberg의 교회)


 독일은 도심에서도 꽤 목가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역사가 깃든 공원은 물론, 괴테, 쉴러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와 철학자의 이름을 딴 공원, 또 그 주변에 만들어진 산책길은 그 자체로 계절을 느끼기에, 충분한 자연의 울타리이다. 위성도시와 대도시 사이의 접근성이 편리해 전원적인 풍경을 만끽하기에 어려움이 없다. 사람들은 너도밤나무 열매를 줍고, 발끝에 치이는 붉은 잎들의 구르는 소리를 들으며 계절을 밟는다. 플라타너스 잎을 엮어 월계관을 만들어 쓴다. 곳곳에 축제도 여럿이다. 독일의 가을 하면, 뮌헨에서 열리는 옥토버페스트가 유명한데, 사실 그보다   더더욱 독일다운 풍경은 일상에서도 계절이 선물하는 온전한 축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도시마다 열리는 크고 작은 행사는 인위적인 것이 하나 없다. 도시에 하나씩 있는 교회, 혹은 성, 그것을 중심으로 세워진 마을과 골목에서 계절마다 다른 인상을 받는다. 베지 않고 오랜 시간 동안 자라는 아름드리나무나 마치 우리의 한옥처럼 서로 끼워 맞춰진 기둥. 목조 건물이라 그럴까, 계절의 색과 조화를 이룬다. 탐스럽게 물이 오른 사과와 호롱 모양의 매끈한 서양식 배가 한창이라 대문 앞에 꾸며 놓은 것이며, 수레에 차곡차곡 쌓은 투박한 호박들 위로 아이 얼굴만 한 노란 플라타너스 한 잎이 바람을 타고 떨어진다. 화려하고 특별한 축제 없이도 일상은 계절의 색으로 물들어 간다.


사진 : 본인 촬영, 독일 헤센 주 도시 Kronberg의 한 골목



 지금, 주변을 보자. 시선에 닿는 사물의 명도가 진해지고, 그가 가진 색이 깊어지는 순간이 있다. 지금을 가만히 봐주는 것, 거기 아주 작고 고요하고 사소한 찰나가 있다. 어떤 시대는 힘들고 복잡하고 어렵다. 또 다른 시대는 미래를 위한 여지를 남긴다. 또 어떤 시대는 소외된 주변을 더 생각하게 하고, 다른 것은 정의롭기도 하다. 하지만 그때에도 지금과 같은 계절이 있었다. 시간이 데려오는 사물의 변화가 있다. 그 변화는 익숙한 사물을 그림자처럼 덮어가고 그윽하게 바라볼 기회를 준다. 가만히 주변을 보자. 어느 날 툭, 떨어져 또르르 구르는 호두 열매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담장 위를 훌쩍 넘은 무화과나무 잎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가을비가 내리기 전에 보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파름 파름 떨어지는 나뭇잎을 밟고 당신은 무엇을 느낄 수 있는지. 지금을 사는 우리 모두를 관통해온 순간을 각자의 방식으로 공유한다.


 독일의 시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가을은 언제나 우리의 최고의 시간, (“Der Herbst ist immer unsere beste Zeit.”)이라고 말했다. 주변 풍경의 변화에 일상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 때문일까, 우리가 사색의 계절이라고 하는 가을은 우리에게 잠깐 돌아볼 수 있는 순간을 가까이 두게 한다. 화려하게 꾸미지 않고, 한숨 쉬어갈 수 있는 여유의 경험이다. 그러면 모든 것이 낯설어지고, 특별해진다. 분명 순간을 최고의 시간으로 만들 작고 명료한 방법일 것이다. 곁에 있는 것에 다정한 시선을 보내는 것, 의미를 찾아가는 찰나 속에서 천천히 지금을 느끼는 일, 이 계절을 더 당신의 계절답게 만드는 일이다.



사진 출처 : https://de.best-wallpaper.net/







이 글은 매일경제에 연재하는 에세이 <박소진 시인의 독일 에세이>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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