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너 함께 적어봅시다
2021년의 시작
올해로 17년 차. 2021년이 되면서 프랭클린 플래너를 적기 시작한 기간이 1년 늘어났습니다. 한 해가 지나면 나이를 한 살 먹는 것처럼, 플래너도 하나씩 책장에 쌓여갑니다. 17개의 플래너 보관함을 보고 있으면 괜히 마음 든든해지는 이유는 뭘까요?
올해도 새해를 시작하면서 변함없이 플래너를 구입했습니다. 한창때는(?) 업무용과 개인용 플래너를 따로 구입해서 2개를 사용했어요. 업무용 플래너는 ‘7일 24시간’을 강조하는 윈키아 플래너를 사용했고, 개인용 플래너는 언제나 프랭클린 플래너였습니다. 프랭클린 플래너의 롤모델인 벤자민 프랭클린의 자서전은 지금도 매년 펼쳐봅니다. 제 마음속 롤모델 중의 한 명이기도 하고요. 프랭클린 플래너를 만든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은 중간중간 필요한 부분은 찾아서 발췌독을 했었지만, 전체를 읽어본 적은 없네요. 올해는 반드시 정독을 해보리라 마음먹습니다.
16년간 혼자 적었습니다
16년 동안 꾸준히 플래너를 혼자서 적었습니다. 플래너는 개인적인 일정 관리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니, 함께 적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끄럽기도 하고요. 작년에 16년 동안 혼자서 고민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브런치에 글을 적었습니다. 글을 쓰면 읽는 사람보다 고민해서 쓰는 사람이 더 성장한다고 했는데, 실제로 글을 적으면서 제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이 구체화되는 것을 확인했어요. 플래너를 쓰는 것이 좋은 습관이라는 것은 대부분 아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 좋은 습관을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이겠지요.
문득 학창 시절 들고 다녔던 유명한 수학책인 <수학의 정석>이 생각났습니다. 두꺼운 양장 표지와 하얀색 바탕에 노란색 네모칸 그리고 그 안에 적혀 있던 수학의 정석 책 기억나시나요? 노란색 네모칸이 사라지고 색상도 다양해졌네요. 아직도 이 책이 발행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벽돌책, 집합 그리고 개념원리
이 책과 함께 떠오르는 기억이 있으신가요? 저는 벽돌책, 집합 그리고 개념원리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접했던 벽돌책이 바로 <수학의 정석>입니다. 벽돌책하면 생각나는 것은 그 묵직한 무게감입니다. 이 정석 책을 볼 때마다 저는 무게감과 함께 압박감도 느꼈어요. 가방에 책을 많이 들고 다니던 학생이었는데, 이 책을 가지고 다니면 가방이 더욱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실제로 무겁기도 했겠지만, 이 책이 주는 중압감이 그런 느낌을 증대시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은 500쪽이 넘는 벽돌책도 즐겁게 읽지만, 그때는 아니었습니다.
다음으로 집합. 이건 많은 분들이 아실 것 같아요. 저의 학창 시절엔 <수학의 정석>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장이 바로 집합이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최근에 발행된 <수학의 정석>을 다시 검색해보니, 교육 과정의 변화와 함께 책의 구성도 많이 변했네요. 수학(상)의 첫 번째는 '다항식의 연산'입니다. 그리고 미적분, 기하, 확률과 통계 등으로 책이 구분되었네요. 절판되지 않고 계속 판매되는 <수학의 정석>과 여전히 잊히지 않는 그 이름, 홍성대 저자님 대단하시네요. 이 정도면 고전의 반열에 올라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집합이 생각나는 이유는 집합까지만 공부를 했기 때문입니다. 책은 읽은 사람의 흔적을 남깁니다. 바로 손때이죠. 책을 보면 뒤쪽은 깨끗한데, 앞쪽에만 유독 손때가 많이 묻은 책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그 책이 바로 <수학의 정석>이었고, <성문종합영어>였어요. 새 학년을 시작하면서 큰 목표를 세우고 공부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열정은 오래가지 못하죠. 그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책의 앞부분에만 손때가 묻어납니다. 새해 목표가 어떻게 되는지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죠.
마지막으로 <개념원리>입니다. 개념원리는 <수학의 정석>의 딱딱함을 피해 선택한 책입니다. 정석이 재미없는 문법책과 같은 느낌이었다면, 개념원리는 말랑말랑한 에세이처럼 느껴졌습니다. 수학이 무슨 에세이?라고 물어보실 분이 있으시겠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그렇습니다. 정석에 비해 얇은 두께와 혼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준 설명까지. <개념원리>라는 책 덕분에 수학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할 수 있었습니다. 항공공학, 동역학, 열역학과 같은 좀 더 어려운 과목도 배웠습니다. 물론 지금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요. 아주 작은 변화가 만들어낸 결과네요. 이때는 이렇게까지 생각하진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보이는 것 같습니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
좋은 습관을 만드는 것도 비슷합니다. 일단 끝까지 할 수 있도록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시작부터 거부감이 들면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최근에 읽은 습관 책 중에 첫 번째로 추천하는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서 저자인 제임스 클리어는 이렇게 말합니다.
(45쪽) 더 나은 결과를 내고 싶다면 목표를 세우는 일은 잊어라. 대신 시스템에 집중하라.
(159쪽) 무리에 소속되는 것보다 더 동기를 지속시키는 것은 없다. 그것은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것을 공통의 것으로 바뀌준다. 북클럽이나 밴드, 사이클 모임 등에 참여한다면 나의 정체성은 주변에 있는 그들과 연결되기 시작한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습관을 지속하는 데는 시스템이 중요합니다. 책에서는 의지보다 시스템을 만드는 것을 강조합니다. 지난 10년간 다양한 자기 계발서를 읽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좋은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10년이 지나면서, 이제는 조금씩 원리를 깨닫습니다. 그 원리가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지는 않는다는 것도요.
제 경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독서모임처럼, 여러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더 다양한 요소들이 있지만, 크게 보면 일단은 함께하는 ‘집단’에 속하는 것이 효과가 좋았습니다. SNS의 발전으로 그런 모임을 찾는 것은 간단한 검색으로도 가능합니다.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 원하는 분야의 모임을 아주 쉽게 찾을 수 있어요.
여기에 제가 추천하는 방법은 본인이 그 모임의 운영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저 참여하는 것과 운영을 해보는 것은 정말 다릅니다. 길을 아는 것과 그 길을 직접 걷는 것도 다르듯이, 단순히 모임에 참석을 하는 것과 의욕을 가지고 방향을 고민하면서 모임을 이끌어 가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어요. 고민도 많이 해야 하고 스트레스도 생겨날지 모릅니다. 그 고민과 스트레스가 더 많은 발전의 기회를 가져옵니다.
이루리클럽의 시작
이러한 고민의 끝에 플래너를 함께 적는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목표한 꿈을 이루자는 바람을 가득 담아 ‘이루리클럽’으로 정했습니다. 공지글을 작성하면서 “5명만 함께해도 성공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분이 함께하겠다고 말씀하셔서 놀랐습니다. 디지털의 발달로 인해 아날로그 플래너를 적는 사람들이 별로 없을 것으로 판단했던 제 생각이 짧았네요. 역시 메모는 손으로 또박또박 적어야 합니다.
2021년을 시작하며 각자의 일 년 목표를 적었습니다. 프랭클린 플래너뿐만이 아니라 윈키아 플래너, 3P 바인더, 스타벅스에서 나누어주는 다이어리 등 다양한 플래너를 쓰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각자의 목표를 공유하고 나만의 플래너 쓰는 법을 공유하면서 올 한 해 동안 나만의 기록을 만들어갈 계획입니다. 그래서 올 해는 남은 11개월이 더욱 기대되네요. 함께하는 힘을 믿어봅니다.
2021년 이루리클럽,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