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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곳독서 Mar 21. 2021

아들이 좋아하는 레고 영웅

1편. 아이언맨

저는 마블의 열렬한 팬은 아닙니다. 아이언맨도 1편만, 스파이더맨도 1편 그리고 캡틴 아메리카는 언젠가 TV에서 방영해줄 때 아주 잠시 본 기억이 납니다. 헐크와 토르는 챙겨보지도 않았어요. 요즘 아들과 함께 레고를 만들다 보니 어벤져스 시리즈를 다시 봐야하나 고민 중입니다. '왜, 그랬어요?' 아들의 수많은 질문에 답을 할 수가 없네요.


다행히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출장 가서 저녁에 혼자서 봤습니다. 거기서 본 내용들로 대충 이야기해주는데, 깊이가 없어서 금세 바닥이 드러납니다. 점점 어려워지는 질문을 받으면서 레고를 만들고 있습니다.

아빠, 앤트맨은 어떻게 시간이동을 할 수 있어요? 타노스는 왜 나쁜 사람이 되었어요?

어벤져스 영웅 중에 (그나마) 제가 가장 잘 아는 인물이 바로 아이언맨입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죠. 감동과 재미 그리고 슬픔을 가져다준 캐릭터. 제 아들이 좋아하는 영웅 중의 1, 2위를 다툽니다. 어떨 때는 스파이더맨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가 요즘은 아이언맨을 더 좋아하는 것 같네요.(이건 계속해서 변해요. 오늘 아침엔 또 스파이더맨이 가장 좋다고 하네요.)


오늘 소개할 레고는 지금까지 구입한 레고 중에 가장 고가의 제품입니다. 기존의 레고와는 다른 느낌이에요. 이 레고는 아이들을 위한 레고가 아닌 것은 확실합니다. ‘18+‘라는 단어가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아들이 이 아이언맨 레고를 사달라고 했을 때 몇 번을 거절했습니다. 이건 6살 아이가 만들 수 없는 것이니까요. 18살 형아가 되면 사주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아들의 주장에 설득당했습니다. 아니면 제 마음에게 설득되었을 수도 있어요. 집에 액자가 하나도 없는데, 액자 대신 장식처럼 세워놓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신학기를 맞이, 생일 등 여러 가지 기념을 핑계 삼아 레고를 사줬습니다. 아들이 아이언맨 레고를 받고 입을 쩍 벌리며 좋아하는 모습이 생생합니다.


어떻게 만들어요?

사진으로 보면 아시겠지만, 이건 기존의 레고를 만드는 것과 다릅니다. 원래 레고가 블록을 쌓아서 만드는 것이라면 이건 미술처럼 하나씩 붙여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부자에게는 9개의 검은색 판과 수많은 레고 알갱이들이 손에 주어졌습니다. 아 색깔이 이렇게 다양할 줄은 몰랐어요. 처음에는 그냥 하나씩 봉투를 뜯어서 색깔을 찾아서 붙였는데 이게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습니다. 굵은 매직을 들고 와서 봉투에 숫자를 하나씩 적습니다. 1~10 이렇게 말이에요.

1개의 판을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 : 30분

1번 판을 만들 때는 저는 색상에 맞추어 레고 알갱이를 찾아주고 아들이 붙이는 것으로 했어요. 확실히 6살 아들이 하기에는 어렵습니다. 칸칸 별로 정확한 색깔을 놓아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아요. 그저 찾아서 제 자리에 놓는 것만으로도 놀라웠습니다. 다음에는 아들이 찾아주고 제가 붙이는 것으로 역할을 바꾸었습니다. 그렇게 한 판을 만드는데 30~40분 정도 걸렸어요.


2번 판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요령이 조금씩 생겨났습니다. 일단 제가 큰 경계선 부분을 빠르게 붙입니다. 미술 할 때 스케치라고 보면 쉬울까요? 경계선을 그려주고 큰 덩어리를 아들에게 한 색으로 붙이면 된다고 이야기해줍니다. 지루할 만도 한데 생각보다 하나씩 잘 붙여요. 가끔 다른 색도 달라고 해서 붙이기도 하고요. 이렇게 2개의 판을 만드니 한 시간이 훅 지나갔습니다.

하루에 다 만드는 것은 무리입니다.

오후에 만들기 시작하니 피로와 잠이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다행히 그다음 날은 휴가여서 늦게까지 만들어도 되었지만, 꾀를 써 봅니다.


“아들, 오늘은 3번 판까지만 만들자” 그랬더니 바로 대답이 돌아옵니다.

“아니요. 9개판 전부 다 만들 거예요.”


하나에 최소 30분이 소요된다는 가정하에, 동일한 속도로 지치지 않고 작업을 한다고 해도 270분! 4시간 30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오네요. 오후 4시 27분에 만들기를 시작했으니, 최소한 밤 9시까지는 만들어야 한다는 예상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건 인간이 기계처럼 지치지 않고 똑같은 속도로 레고를 만들어간다고 했을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레고 부자는  판을 만들 때마다 능률은 10% 이상 뚝뚝 떨어집니다. 처음 판이 30, 다음은 40 그런 식으로요. 아무튼 조립의 속도는 눈에 띄게 느려집니다.


결국 6판을 만들었습니다.

중간에 저녁도 먹고, 눈이 피로할 때는 밖을 내다보며 휴식을 취했습니다. 그렇게 천천히 만들다 보니 어느새 저녁 10시 50분. 잠시 고민했습니다. 이걸 다 만들 것인가. 아들은 여전히 마무리를 하겠다는 결의에 가득 찬 눈빛을 저에게 보냅니다. 또 머릿속에서 빠르게 계산을 굴립니다. 체력과 정신력이 모두 고갈 상태니 하나당 만드는 시간은 적어도 50분. 그렇다면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이 작업이 끝나는 것이죠.


아들을 설득하기 시작합니다. 내일 아침에 눈 뜨자마자 아빠랑 만들기 시작하는 거야. 아빠가 일찍 일어나서 같이 만들어줄게. 원래 소중한 것은 천천히 그 과정을 즐기면서 해야 하는 거야. 한 번에 만들면 그 감동이 줄어드니까... 등등 생각나는 모든 설득의 말을 던져봅니다. 결국 그렇게 설득을 성공했어요.


다음날 아침,

아내가 갑자기 아파서 아침 일찍 병원을 가야만 했습니다. 장모님이 급하게 오셨지만, 아이언맨 레고는 제가 없으면 아들 혼자서는 만들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어요. 급하게 나가면서 아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아빠가 빨리 다녀와서 오후에 같이 만들자. 정말 만들고 싶어도 아빠를 기다려야 해."


물론 마음속에는 아빠를 기다리지 않고 레고를 만들 것이라는 예감은 있었지만, 일단 급하게 말을 하고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그렇게 오전 시간을 보내고, 오후에 돌아왔더니 책장 위에 완성된 아이언맨이 있네요. 아들이 직접 손으로 한 자 한 자 적은 'IRON MAN'이라는 글씨와 함께요.


삼천만큼 사랑해. 왜 눈물이 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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