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곳독서 Apr 11. 2021

아빠가 좋아하는 레고

아빠는 해리포터를 좋아합니다.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느슨한 글쓰기 모임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름하여 인라이팅클럽! 작년에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고, 여전히 즐겁게 진행 중입니다. 규칙은 아주 간단해요. 일주일에 하나의 글을 쓰면 됩니다. 말로만 들으면 쉽게 느껴집니다. "일주일에 하나쯤이야..."라고 생각했다가 매주 일요일 저녁에 정신없이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흰 종이에 쏟아내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물론 지금도 그렇습니다. 마감까지 2시간 10분 남았네요;)


이런 강제성이 지난 1년간 매일 쓰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이미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저는 제 의지를 믿지 않습니다. 제임스 클리어가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서 여러 번 외친 것처럼요. 

바보야, 문제는 시스템이야


작년에는 글을 쓰고 멤버들 서로 간에 피드백도 해봤습니다.(제가 여러 가지 시도해보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에요.) 무기명 피드백인데요. 사실 운영자인 저는 알고 있습니다만, 다른 멤버들에게 알려주진 않습니다. 피드백엔 좋은 점과 수정할 점을 하나씩 적도록 되어 있습니다. 좋은 이야기는 상관이 없지만, 수정할 점을 들으면 아무리 성격이 좋은 사람이라도 기분이 나쁘기 마련이니까요.


강원국 작가님이 <나는 말하듯이 쓴다>에서 비판에 대해서 말씀하신 내용이 떠오르네요.

직장생활을 할 때, 친한 후배가 술자리에서 “내가 선배님을 좋아하니까 하는 얘긴데, 이런 점은 제발 고치세요”하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다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냐?”하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그래서 “너밖에 없구나. 다른 사람들은 뒤에서 욕하는데, 너니까 그런 얘기를 해주는구나”라며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그날 우리는 진탕 마시고 부둥켜안은 채 노래까지 불렀다. 그런데 다음 날 술이 깬 후 후배를 보니 이상하게 기분이 나빴다. ‘어디다 대고 지적질을?’하는 생각에 그 후로 줄곧 후배가 건방져 보였다.

이 글을 읽고 얼마나 웃었던지요. 모든 것을 웃으면서 받아주실 것 같은 강원국 작가님도 이러셨으니, 평범한 우리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글쓰기 피드백은 무기명입니다.(사실 요즘은 안 하고 있어요;;)


제목은 레고, 사진은 해리포터를 붙여놓고 무슨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냐고요? 이제부터가 레고에 대한 글입니다. 평소에도 유머와 삶에 대한 진지함이 가득한 글을 쓰는 분이 제 글에 대한 피드백을 남겨주셨어요. 아주 장문의 피드백이었습니다. 얼마나 잘 적어주셨는지 보여드리고 싶지만, 무기명 피드백이니 참겠습니다. 그분이 피드백에 ‘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은 ‘슬램덩크, 자기 계발 그리고 레고’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거기에서 하나만 더 추가하자면 바로 ‘해리포터’입니다.


벌써 여러 번 해리포터에 대한 글을 남겼고, 크리스마스 케이크도 해리포터 시계탑을 배경으로 찍어서 올렸습니다. 요즘 저를 만나는 분들을 도대체 왜 그렇게 해리포터에 집착? 하냐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니 집착이 맞는 것 같네요. 해리포터를 읽게 된 것은 작년 7월부터입니다. 그것도 원서로 말이에요. 처음에는 영어공부를 하겠다는 의지로 원서 읽기에 참여했는데, 지금은 영어를 배우겠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작가인 J.K. 롤링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어서 읽고 있습니다. 이번 주까지 읽으면 이제 5권 불사조 기사단이 끝나네요.


해리포터는 3권까지 아이들을 위한 동화인 것 같았는데, 4권부터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처럼 분위기가 변합니다.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어두워져요. 해리포터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하나둘 죽고, 어른들을 그들끼리 편을 갈라 서로 싸웁니다. 우리나라가 아닌 영국에서 쓰인 소설이지만, 어찌나 어른들의 세계를 잘 표현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성인인 저는 아이의 입장보다는 어른의 입장에서 글을 읽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해리포터 레고도 소설의 내용을 알아야 재미있습니다.

처음 해리포터 레고를 샀을 때는 등장인물들을 잘 알지 못해서 답답했습니다. 처음에 산 레고 해리포터 레고는 보라색의 나이트 버스인데요. 마법사들이 타서 원하는 곳은 어디든 빠른 속도로 데려다주는 버스입니다. 1권을 읽을 때 이 버스를 샀는데, 나이트버스가 무슨 버스인지를 알 수 없어서 별 감응이 없었습니다.


다음으로 산 레고는 엄브리지와 비밀의 숲이라는 레고였는데, 엄브리지 교수는 5권 불사조 기사단에서 등장하는 마법부 차관입니다. 아주 악독한 교수예요. 역시 이것도 2권을 볼 때쯤 사서 내용은 모르고 아들에게 대충 둘러 이야기를 해주었던 기억이 나네요. 또 해리포터 시리즈 중에서 가장 장식품으로 두기 좋은 시계탑은 4권 불의 잔에 대한 내용이에요. 보바통과 덤스트랭과 같은 다른 마법학교에서 온 마법사들과 축제를 벌이는 장면인데, 역시 이것도 내용을 알기 전에 샀네요.


이번엔 드디어 해리포터의 이야기를 아는 레고를 샀습니다. 지난번에 한 번 사려고 했다가, 눈 앞에서 놓친 호그와트 기차입니다. 아들은 해리포터보다는 어벤져스를 좋아하기 때문에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말하면 열 번에 아홉 번은 어벤져스를 선택합니다. 올 초에 아들에게 선택을 하라고 했더니 나름 논리 정연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 해리포터 기차는 매장에 3개나 있어서 여유가 있고, 어벤져스는 이것 한 개만 남아있으니까 적게 남아있는 걸로 사요. 해리포터 기차는 다음에 와서 사면 되잖아요.”

그러자 저는 말문이 막혔어요.

"이거 6살의 논리 치고는 꽤 그럴듯한데...”

라는 생각을 하다가 그래도 용기 내어 아빠의 주장을 한번 더 강하게 이야기해봅니다.

“그래도 해리포터가 더 소장가치가 있을 텐데?”라고 말이에요. 말하고 보니 아이가 소장가치라는 말의 의미를 알까 싶습니다. 이해하는 듯 고개를 끄덕끄덕해서, 일단 2개를 다 내밀고 선택의 기회를 줍니다. 당연히 어벤져스를 골랐죠.


한 달 정도 지나서 아들이 다시 레고를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번에는 레고 가게에 가기 전에 치밀한 사전 작업에 들어갑니다. 

“아들, 지난번엔 어벤져스를 샀으니까 이번에는 해리포터 살 거지? 다음에 아빠랑 영국 여행을 가려면 해리포터를 많이 알아야 해.”와 같은 저만의 논리로 말이죠.

다행히 제 논리가 통했는지 아들은 해리포터 기차를 사겠다고 합니다. 아주 선심 쓰듯이 이야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좋아요, 이번엔 해리포터 기차를 사요.” 


즐거운 마음으로 레고 가게에 갔습니다. 이게 웬일인가요? 빨간색의 호그와트 기차가 없습니다. 당황하면서 서둘러 사장님께 여쭈어봅니다. 

“사장님, 지난번에 있는 해리포터 기차 다 나갔나요?”

사장님이 허허 웃으면서 대답하시네요.

“그런 건 들어와서 얼마 지나지 않아 다 나가요. 있을 때 사야죠.”

속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럼 그때 그렇게 이야기해주시지요...”


다시, 2달이 지났습니다. 2분기 레고 신제품이 들어왔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레고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갔습니다. 이게 웬일인가요. ‘해리포터 호그와트 익스프레스’가 있습니다. 보통 일시 품절이라고 적어져 있는데, 장바구니 담기가 가능합니다. 잠시 고민하다가 아내에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지난번에 놓쳐서 아쉬워한 그 호그와트 기차가 공홈에 있어요. 사도 될까요?”

아들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 서둘러 아들에게도 보여줍니다.

“아들, 지난번에 우리가 사지 못한 그 해리포터 기차 사줄까?”


결론은 당연히 정해져 있었지만요. 아들보다 아빠가 더 설레는 마음으로 레고를 샀습니다. 이번 주에 아들과 둘이 이틀에 걸쳐 저녁마다 잠들기 전까지 열심히 만들었어요. 덕분에 아내도 조금은 편안한 저녁을 보냈고요. 


함께 만들면서 책을 읽으면서 배운 주문을 하나씩 알려줍니다. 이번에는 등장인물 소개도 아주 능숙하게 하면서 말이죠. 이 사람은 루핀 교수님인데, 늑대인간으로 변할 수 있어. 검은색 망토를 입은 것은 디멘터라고 하는 악당이야. 좋은 기억을 뺏어가기도 해. 호그와트 익스프레스는 런던의 킹스 크로스 역에서 출발하고, 초콜릿색 개구리는 정말 초콜릿이야. 론이 좋아하는 과자야 등등 아빠 혼자 잔뜩 신이 났습니다. 아들은 무심하게 들으면서 집중하여 기차를 만드네요.


5권까지 읽으면서 배운 마법을 하나 둘 가르쳐주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무장을 해제시키는 주문인 엑스펠리아르무스(Expelliarmus)를 외치면 지팡이가 상대방 손에서 떨어집니다.

공중 부양 마법인 윙가르디움레비오사(Wingardium Leviosa)도 불러보고, 디멘터를 쫓을 때 쓰는 익스팩토 패트로눔(Expecto Patronum)도 알려줍니다. 아들은 자기 마음대로 섞어서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그런대로 제법 잘 따라 합니다. 나중에는 아빠보다 해리포터의 내용을 잘 이해하는 그 순간이 오겠죠? 마법도 제대로 이해하고 말하는 날도 말이에요.


그럼 그때는 어릴 적 아빠와 함께 하나씩 만든 해리포터 레고가 소중한 추억이 되어있기를 바라봅니다.

아들이 만든 해리포터 호그와트 익스프레스


이전 06화 아들이 좋아하는 레고 영웅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