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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곳독서 May 16. 2021

시간과 공간의 방

레고를 만들면서 시간과 공간을 잊는다.

1980년에 칼 세이건이 적은 <코스모스>와 2020년에 그의 부인인 앤 드루얀이 적은 <코스모스>를 동시에 읽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140억 년이라는 우주의 나이에 비교하면 겨우 '1초'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삶이 하루살이보다 더 짧게만 느껴집니다. 또 지구는 하나의 점이며, 우주 안에 태양계와 같은 은하들이 수 천억 개가 넘는다는 사실에 저절로 겸손해집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두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전부 컬러로 되어 있는 양장판과 흑백으로 되어있는 보급판 이렇게 두 가지입니다. 혹시 코스모스를 읽어 보실 분들은 양장판을 추천드립니다. 그 안에 사진과 그림들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아니면 보급판과 양장판 두 가지를 모두 산 다음, 보급판을 장별로 쪼개서 들고 다니면서 읽고 양장판은 소장용으로 두는 것도 좋습니다. 양장판, 보급판 모두 그대로 들고 다니기는 무거워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 이런 문단이 있습니다.(페이지 수는 양장판 기준)

공간과 시간은 서로 얽혀 있다. 시간적으로 과거를 보지 않으면 공간적으로 멀리 볼 수가 없다. 지금 이 순간에 우리가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천체를 들여다보고 있다면, 시간적으로 그 천체의 과거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빛이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틀림없다.(323쪽)
이 순간에도 미래를 향한 시간 여행을 하고 있다. 하루에 24시간씩 말이다. 상대론적 우주선을 이용하면 미래 속으로 빨리 여행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불가능하다고 믿는 물리학자들이 많다. 설사 과거로의 여행을 가능케하는 어떤 장치를 마련한다손 치더라도,이들의 주장에 따를 것 같으면, 과거의 그 무엇도 바꾸어 놓을 수 없다고 한다.(338쪽)


칼 세이건의 말처럼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지만,  그것이 미래이기도 하고 어쩌면 과거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을 살아야 합니다.


시간과 공간의 방

아들은 2살 때부터 레고를 함께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레고 듀플로를 만들었죠. 듀플로는 유아들을 위한 크기가 큰 블록으로 구성되어 있는 레고입니다. 어린아이들이 블록을 삼킬 수 있는 위험성을 막고, 유아들도 쉽게 만들 수 있는 크기의 레고입니다. 듀플로도 아들과 함께 만들기는 했지만, 어른들이 하기에는 재미가 없습니다. 그냥 아이들용 장난감일 뿐이죠.

 

4살이 되면서 진짜 레고의 세계로 진입했습니다. 4살 때는 작은 상자에 들어있는 레고로 시작해서, 6살이 된 지금은 성인들이 할 수 있는 레고를 넘보기도 합니다. 이때부터는 어른들도 아이와 함께 레고를 만드는 즐거움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만드는 시간이나 어른이 만드는 시간이 큰 차이가 없어져요. 물론 레고 테크닉이나 일부 복잡한 부분은 아이들이 만들기 어렵습니다. 이때는 부모의 도움이 필요하죠. 


아들과 레고를 만들기 위해서 아들방에서 함께 있는 것을 ‘시간과 공간의 방’에 들어갔다고 부릅니다. 아들은 책을 읽어주거나 레고를 함께 만들 때, 엄마나 아빠가 휴대폰 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휴대폰을 볼 때마다 이렇게 말하곤 하죠.


"아빠, 레고에 집중해야죠. 그러다가 잘못 만들 수도 있어요."


그럴 때마다 뜨끔하며 휴대폰을 내려놓습니다. 휴대폰도 없고, 시계도 없는 아들방에서 레고를 만들다 보면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습니다. 시간이 흐르는 것 자체를 깨닫지 못하고 그저 레고를 만드는 행위 자체에 몰입합니다. 아들과 함께 레고를 만드는 그 순간과 장소만 있을 뿐입니다. 사실 그 장소는 어디든지 상관없죠. 아이와 부모 그리고 레고가 있는 그 공간이 바로 시간과 공간의 방입니다. 우리만의 시간이 흐르고 우리만의 공간입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잡다한 쓸데없는 생각을 내려놓기

이 공간 안에서는 무한한 행복을 느낍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앞에 있는 수많은 레고를 조립하고, 그것이 완성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행복합니다. 레고를 조립하려고 집중하고 있는 6살 아들의 귀여운 볼과 솜털을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이 여기서 정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이 순간이 영원할 것만 같은 그런 기분입니다. 이런 기분 느껴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시간과 공간의 방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시간입니다. 30분이면 뚝딱 만들 수 있는 레고를 가지고는 이 방에 입장할 수 없습니다. 최소 1시간 정도는 걸리는 비싼(?) 레고가 필요하죠. 어쩌면 레고가 비싼 것은 그 방에 들어가기 위한 입장 금액일지도 모르겠네요. 만드는데 1시간 이상 걸리는 레고를 사려면 최소 5만 원 이상의 비용이 필요합니다. 10만 원 정도 투자하면 거의 확실합니다.


두 번째는 레고를 만드는 장소에 시계가 없어야 합니다. 레고를 만들면서 시계를 자꾸 확인하면 안 됩니다. 칼 세이건이 말했듯이 ‘공간과 시간은 얽혀’ 있습니다. 그저 존재하는 그 공간에 흐르는 자연스러운 시간을 느끼면서 만드는 것이죠. 그러다 보면 2~3시간이 정말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떨 때는 6시간 이상 만들 때도 있는데, 체감하는 시간은 그보다 훨씬 적어요.


세 번째는 오로지 레고와 사람만 있어야 합니다. 휴대폰, TV, 책처럼 방해하는 물질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레고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설정을 해야만 합니다. 어쩌면 ‘집중’이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집중을 피할 수 있는 모든 방해물을 저 멀리 치워주세요. 


이 세 가지 조건 중에 일부분이 충족되면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방’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물론 절대적인 조건은 아닙니다. 사람과 환경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나만의 시간과 공간의 방을 찾아보세요.


<타이탄의 도구들>이라는 책의 저자인 팀 페리스는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인물 200명을 인터뷰했습니다. 알랭 드 보통, 파울로 코엘료, 말콤 글래드웰 같은 유명한 인물들을 만났습니다. 그 인터뷰의 내용을 종합해서 무려 61가지의 타이탄의 도구들을 알려줍니다. 그중에서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랭 드 보통과 나눈 이야기를 인용합니다.

알랭 드 보통은 우리가 두려움과 불안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당신의 삶을 너무 타인에게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진정 원하는 것과 향하는 곳을 알면 타인의 중요성은 뚜렷하게 약해진다. 당신이 걷고 있는 길이 모호할수록 타인의 목소리와 주변이 혼란, 소셜 미디어의 통계와 정보 등이 점점 커지면서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많은 책에서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살기 어렵죠. 수시로 확인하는 스마트폰에서 다가오는 정보, TV와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많은 소리들이 우리의 순간의 삶을 방해합니다. 순간의 삶을 사는 방법은 어쩌면 아이들이 어른보다 더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그저 주어진 이 순간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죠.


우리가 현재를 충실하게 살기 위해서는 나만의 '시간과 공간의 방'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레고일 수도, 책일 수도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공간에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가끔은 그런 시간과 공간에서 치유하는 삶을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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