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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곳독서 Jul 17. 2021

레고에 대한 간절함이 사라진 이유

풍족은 열정을 떨어뜨리는 걸까요?

지난번에 적은 <레고의 기쁨과 슬픔>이란 글에서 (아들이 원하지 않는, 순전히 아빠의 욕심으로!) 레고를 두 개나 구입한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그 레고가 아직 상자에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관심도 받지 못하고 말이죠. 지난번 글을 6월 20일에 적었고, 글을 쓰는 오늘은 벌써 7월 중순을 지나고 있습니다. 무려 한 달이 가깝도록 아들이 레고를 만들지 않습니다. 신기하게도 한 번도 레고를 함께 만들자는 언급도 하지 않네요.  이유가 무엇일까요? 풍족함이 오히려 열정을 떨어뜨리는 걸까요?


아빠의 어릴 적 이야기(제 이야기입니다.)

아빠는 어릴 적부터 특정한 물건에 대한 욕심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구슬을 모으면 일정 수준에서 멈추지 않고 욕심껏 한가득 모았습니다. 한 가지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양한 형태의 구슬을 모았습니다. 당연히 어머니는 공부는 하지 않고 쓸데없이 많은 구슬을 가지고 밖에서 노는 아들의 모습이 못마땅하셨겠죠. 어머니는 몇 번의 사전 경고를 보내셨습니다. 물론 저는 듣지 않았고요. 그렇게 어머니의 인내심이 한계를 넘은 그 순간, 그동안 하나씩 모은 구슬이 모두 버려졌습니다. 하나도 남김없이 말이에요. 지금 와서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실제로 버리지는 않고 다른 곳에 옮겨 놓으셨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결국 못 찾았습니다.


신기하게도 버려지면 한참을 울었지만, 그 집착의 대상은 바뀌었습니다. 조금 더 커서는 그렇게 슬램덩크 만화책 전집을 사서 모았고, 또 전집이 버려졌습니다. 드래곤볼 만화책도, 수많은 미니카들도 그렇게 버려졌습니다. 어린 시절의 이런 욕심은 어느 순간까지는 집착으로 마음속에 남아있었던 것 같아요. 중학교 시절부터 공부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 집착은 공부를 하는 것에도 찾아왔습니다. 이번엔 무엇을 모으기 시작했을까요? 바로 필기구입니다. 필통 한가득 샤프와 볼펜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유명한 볼펜은 틈만 나면 사서 모았고, 다 쓰지도 못하고 버려졌습니다. 이때부터는 어머니가 아닌 제 스스로 버렸습니다.


어느새 아빠가 된 지금은 그 수집에 대한 열망이 라미 만년필과 책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라미 만년필은 1년에 한 개씩 스페셜 에디션을 꼬박꼬박 사서 모으고 있습니다(가끔은 2개를 사는 경우도 있어요). 책은 매월 적게는 5권 많게는 10권을 사서 모으는 중입니다. 이제는 누가 버려주진 않아서 스스로 정리해서 버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적고 보니 책과 만년필에 대한 제 집착의 시작은 어린 시절에서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네요.


그리고 아들의 이야기

아들의 모습에서 아빠의 어린 시절을 발견하면서 놀라고 있습니다.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소중한 것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처음은 자동차였어요. 모든 종류의 자동차를 사서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에서 Jeep 자동차를 좋아했는데, 그 자동차가 없으면 얼마나 서럽게 울던지요. 그래서 그 자동차는 항상 여분을 사서 보관했습니다.


나중에는 아들이 좋아하는 젤리나 과자를 받아오는 경우도 생겼죠. 그런데 그것을 바로 먹지 않고 어딘가에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겨우 5살 된 아이가 현재의 욕망을 미래로 미룬다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요? 처음에는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너무나 소중해서 잠시 보관은 하겠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먹을 거라는 생각을 했죠. 하지만 아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가끔 하나씩 먹기는 했지만, 모으는 것에 더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요즘은 스타벅스에 가면 매번 마카롱을 꼭 사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딱 하나만' 사서 아들에게 줍니다. 그러면 그 마카롱을 먹지 않고 소중하게 들고 와서 냉장고에 잘 넣어두고 먹지 않습니다. 결국 일주일 정도가 지나면 제가 맛있게 먹습니다. 물론 아들 모르게 말이죠.


먹는 것만이 아니라 옷과 장난감에서도 비슷한 상황은 이어집니다. 아들이 지금 기준, 좋아하는 캐릭터는 '아이언맨'입니다. 정말 다양한 종류의 아이언맨을 사 주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캡틴 아메리카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대신에 아이언맨 레고, 아이언맨 슬리퍼, 아이언맨 인형 그리고 아이언맨 옷까지 말입니다. 지금은 아이언맨에 대한 수집 기간인가 봅니다.


레고는 아주 특별한 날에만 사서 주었습니다. 비싸니까 마음대로 사줄 수는 없어요. 대신 어린이날이나 새해 그리고 몇 번을 미루다가 한 달에 한 번 정도 레고를 사주었습니다. 절대 풍족하게 사주진 않았어요. 대신 약간 부족하게, 기준을 정해서 사 주었습니다. 포인트처럼 숙제나 공부를 열심히 하면 점수를 주고 100점이 되면 선물을 주는 방식을 사용했어요.


하지만 지난번에 아들이 그토록 사고 싶어 했던 아이언맨 레고와 (아빠가 그토록 사고 싶어 한) 해리포터 레고 2개를 한꺼번에 받았습니다. 한 번에 3개의 레고를 받은 것이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레고를 만들지 않습니다. 무려 한 달 동안이나 말이죠. 간절함이 줄어들자 흥미도 낮아진 것일까요? 이제 레고에 대한 욕망이 사라진 것일까요? 그렇다면 큰일입니다. 아직 레고에 대한 글을 조금 더 적어야 하는데 말이에요.


삶에서 적절한 결핍은 간절함을 가져다주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 시절의 결핍이 집착을 가져다주는 것이 성격에 반드시 좋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결핍이란 감정 자체가 좋은 감정이 아니기 때문이죠. 결핍보다는 만족을 주는 삶, 가진 것에 감사하는 삶이 더 좋은 것은 틀림없죠. 저는 어릴 적에 주기적으로 어머니가 제 집착의 대상을 없애 주었고, 자연스럽게 그 대상이 계속해서 변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반대의 상상을 해 봅니다. 어릴 적에 제가 구슬, 슬램덩크, 미니 자동차에 빠져 있을 때, 그 집착을 제거하려고 하지 않고 더 풍족하게 해 주었다면 어땠을까요? 저절로 풍족함에 지루함을 느끼고 스스로 놓아버렸을까요?


삶에서 적당한 결핍은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릿(grit)'은 일정한 수준의 욕망이 있어야만 생길 수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맛있는 음식도 매일 먹으면 금세 질리고, 아무리 재미있는 게임도 반복하면 흥미가 사라지게 됩니다. 따라서 지속적인 '열정'을 위해서는 일정한 '결핍'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청개구리 마음처럼 말이죠. 그래서 생각해봅니다. 아이들에게 공부를 재미있게 만드는 방법은 '공부를 해야 한다.'라는 잔소리와 당위성을 말하는 것보다, '공부하지 말고 일찍 자라' 또는 '절대 밤늦은 시간까지 공부하면 안 돼.'와 같은 제약을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 간절함을 다시 찾기 위해 당분간은 레고를 사주지 않을 생각입니다. 제가 <아빠도 레고> 매거진에 글을 쓰기 위한 글감도 당분간은 없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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