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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곳독서 Jun 20. 2021

레고의 기쁨과 슬픔

feat.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돈을 쓴다는 건 마음을 쓴다는 거다. 그건 남에게나 나에게나 마찬가지다. '나를 위한 선물'이란 상투적 표현은 싫지만, 돈지랄은 '가난한 내 기분을 돌보는 일'이 될 때가 있다. 내 몸뚱이의 쾌적함과 내 마음의 충족감. 이 두 가지는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고 소중하지만, 내가 나와 충분히 대화를 나누지 않으면 영영 모를 수 있다.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12쪽


최근에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작년엔 장류진 작가님의 <일의 기쁨과 슬픔>이란 소설집을 재미있게 읽었어요. 삶에서 항상 행복할 수만은 없듯이, 많은 것들은 그 양면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소비는 더욱 그렇죠. 무언가를 사면 기쁨과 슬픔이 함께 찾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해리포터 20주년 기념 레고가 나왔습니다. 2021년을 시작하는 1월에는 나오지 않더니 뜬금없이 6월에 20주년 기념 레고가 나왔습니다. 해리포터 첫 출판일은 1997년 6월 26일입니다. 한국어 출판일은 1999년 11월이네요. 정확히는 24주년이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첫 번째 해리포터 레고는 2001년에 나온 것일까요? 


'레고의 기쁨과 슬픔'과 '해리포터 20주년'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만약 궁금하지 않다면 이 글은 많은 분들에게 읽히지 못할 것 같습니다.(제발 궁금했으면 좋겠네요.)


해리포터 20주년 기념 레고가 출시된다는 기쁜 소식을 레고 공식 홈페이지에서 한 달 전에 확인했습니다. 한 달에 한두 번 레고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는데요. 주로 신제품이 나오기 바로 전달에 한 번 들어가 봅니다. 아들은 역시나 마블 시리즈에 관심을 갖고 저는 해리포터에 관심을 갖습니다.

 

보통은 1, 4, 7, 11월 이렇게 분기를 시작하면서 신제품이 나옵니다. 이번에는 6월에 신제품이 나왔습니다. 차라리 '5월 어린이날에 맞추어 신제품을 만들어내는 게 좋지 않을까?' 잠시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은 금세 변했습니다. 5월 '어린이날'에는 신제품과 상관없이 레고를 구입할 어린이 고객님들이 많습니다. 수요가 많은 시기에 굳이 공급이 늘릴 필요는 없죠. 그래서 한 차례 수요가 지나간 후에 신제품이 나오나 봅니다. 역시 글로벌 기업이네요. 레고.


6월 1일에 해리포터 20주년 기념 레고가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보다 더 기쁨을 표시했습니다. 바로 프랭클린 플래너와 휴대폰 미리 알림 기능을 사용해 중복으로 신제품 출시 일자를 적어놓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지났고 5월 31일이 되었습니다. 예정된 출시일인 6월 1일을 생각하며 미리 홈페이지에 들어가 봅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요? 한 제품은 이미 판매가 시작되어 품절 상태입니다.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합니다. "역시 20주년 기념판은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지."라고 마음이 이야기합니다. 게다가 특별히 ‘황금색 캐릭터 레고’도 들어있다고 하는데, 해리포터 덕후들이 이 기회를 그냥 지나치지 않겠죠. 급해진 마음에 일단 사려고 마음먹었던 제품 2개를 담습니다. 이 2개만 해도 결제금액이 쑤욱 올라갑니다. 하나 더 담고 싶다는 마음과의 싸움이 벌어집니다.


"(하나 더) 담아, 담아, 담아 20주년이라잖아!"

"아니, 아니, 아니 이건 누구를 위한 소비인가?" 


누가 천사이고 악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처음엔 ‘아니아니’가 승리합니다. 2개를 구매했음에도 그 속에서 이성적인 판단을 한 스스로를 잠시 칭찬해봅니다. 하지만 칭찬은 잠시 ‘담아담아’가 악마의 속삭임을 계속합니다. 


“원래 사려고 했던 것이 체스판인데, 왜 그것을 사지 않는 거야? 그게 진짜 소장용이라고!!!”


다시 고민이 시작됩니다. '담아담아'의 논리가 설득력 있습니다. 지난번에 호그와트 기차를 어렵게 구했던 기억이 '담아담아'편을 들어줍니다. 물건은 있을 때 사는 거니까요. 어느새 예약판매 버튼을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한 녀석이 더 다가옵니다. ‘에라 모르겠다’죠. 예약판매니까 일단 구매하고 나중에 취소하면 되잖아. 담아담아, 구매구매, 에라 모르겠다의 과정을 거쳐 결제 버튼을 누릅니다. 이미 늦음 밤이라서 아내도 아들도 잠들어 있습니다. 


레고의 기쁨

레고를 사는 기쁨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첫 번째 기쁨은 아들이 입을 와! 하고 벌리면서 좋아하는 그 모습을 보기 위함입니다. 어찌나 입을 크게 벌리면서 좋아하는지 그 모습을 보면 모든 힘듦이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는 저절로 따라옵니다. 아이의 진심이 담긴 말이죠. 


두 번째 기쁨은 아들이 만드는 것을 바라보며 지난번에 이야기한 '시간과 공간'의 방에 들어가는 것이죠. 다시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들입니다. 행복한 추억을 만드는데 돈이 중요할까요? 기억과 추억이 소비를 아름답게 포장해 줄 테니 괜찮습니다.


레고의 슬픔

'슬픔은 없습니다.'라고 적고 싶지만, 일단 얼마 뒤에 카드값이 찾아오겠죠. 아주 조금만 더 레고가 저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해리포터는 왠지 더 비싼 거 같은 그런 느낌이 있어요. 레고의 금액 산정 기준은 블록의 개수일까요? 아니면 브랜드에 따라 가격이 다르게 측정되는 걸까요?

 

그럴듯한 보관장소가 있으면 하는 아쉬움도 따라옵니다. 집은 한정되어 있고 제가 사는 레고와 책은 자꾸만 들어가죠. 보관할 장소에 맞추어 레고도 책도 줄여가는 것이 필요할까요? 아니면 이러한 것들은 마음껏 전시할 수 있는 큰 집을 바라야 할까요? 지난번에 적었던 '소박한 꿈, 나만의 서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에서 꿈꾸었던 공간 중에 하나를 레고를 위한 공간으로 양보해야겠네요.


아낄 물건은 아끼고, 후딱 써야 할 물건은 얼른 써야 한다. 그런데 나는 종종 그걸 정반대로 한다. 지금 제일 맛있는 음식을, 지금 제일 예쁜 물건을 굳이 미뤘다가 후회한다.
언제 올지 모를 나중으로, 내 행복을 미뤘다.
지금 확 낚아채도 지금 꽉 쥐어도 지금 꿀떡 삼켜도 되는데 말이에요.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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