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곳독서 Sep 12. 2021

매주 일요일, 아들에게 일기를 씁니다

feat. 아빠가 달려갈게!(김영진 그림책)

인사이동을 한 후로 일주일에 딱 한 번 아들이 일어나는 모습을 봅니다(일주일에 2번씩은 봤는데, 요즘은 일요일 아침에 출근할 때가 종종 있네요). 아들은 주말 아침이면 눈을 비비며 일어나 서재방으로 찾아옵니다. 그리고 세상 귀여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죠.


“아빠, 뭐해요? 글 써요?”


이 모습을 보는 그 순간과 찰나에 무한한 행복을 느낍니다. 그리고는 옆에 앉아서 잠시 동안 아빠가 글 쓰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벌떡 일어나서 다시 엄마에게로 갑니다.


지난주는 아들이 태어난 지 2,000일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는데요. 아내가 2,000일 기념사진 촬영을 하자고 해서 알았습니다. 천일까지는 매일 플래너에 숫자를 적었는데, 천일이 지나면서 조금은 무뎌졌습니다. 다시 하루하루 날짜를 적어봐야겠습니다. 일요일 저녁이 끝나갈 무렵이면 아들은 엄마에게 묻습니다. 


“내일은 누가 있어?”


이 말은  유치원 등원 길에 누가 자기를 데려다주는지 묻는 말입니다. 아니면 오후 하원길에 누가 오는지를 묻는 말이기도 하고요. 이 말을 들으니 요즘 일찍 출근해서 늦게 퇴근하느라 아들 유치원 등원도 거의 못해주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미안한 마음이 올라옵니다. 


아들이 태어나면서 스스로와 한 작은 약속이 있습니다. 

아들이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할 때는 항상 옆에 있어주겠다는 약속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나 혼자와의 약속이죠. 처음으로 어린이집을 갈 때, 유치원을 처음 등원할 때, 학교에 처음으로 갈 때는 꼭 아빠 손을 꼭 잡고 함께 가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어릴 적에도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아버지는 크고 따뜻한 손으로 잡아주셨거든요. 그러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 초등학교 갈 때(1번), 중학교 갈 때(2번), 고등학교 갈 때 (3번), 대학교 갈 때(4번), 그리고 군대까지(5번). 이렇게 5번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함께하겠다고 다짐해봅니다.


미안한 마음을 담아서 아들에게 일기를 적습니다. 

매일 일기를 쓰는데요. 일요일은 아들을 위한 공간으로 남겨둡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제 이름의 이니셜인 JH로 표시하고, 일요일은 아들 이름의 이니셜은 SH로 적습니다. 그곳에 아들과 함께했던 추억들을 담아 놓습니다. 아들이 태어나고부터 적었으니 280개 정도의 글이 모였습니다(2,000일을 일주일로 나누면 대략 285일!). 오늘은 그 일기 중에 하나를 찾아서 읽어봅니다. 그리고 그날의 사진도 찾아봅니다. 잊고 있던 기억이 저절로 연관되어 떠오르며 행복이 찾아옵니다.


2017년 9월 10일 일요일

SH. 물어도 좋다

아들아! 18개월의 너는 자기주장이 강하고(뭐든지 내가 내가 내가! 할 거야 하는 제스처를 얼마나 많이 하는지ㅎㅎ), 우유를 잘 먹고(거의 하루에 900ml는 먹는 듯싶다;;), 약간 잠이 올 때는 앙! 물기도 하면서... 잘 자라고 있구나.

물면 아프지만, 그래도 네가 행복할 수 있다면 물어도 좋아(그래도 살살 물어주렴). 주말에는 오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좋다. 함께한 시간이 늘어날수록 아빠를 무는 횟수도 늘겠지만, 그게 행복이지. 고마워. 


나중에 일요일에 쓴 아들에 대한 일기만 모아서 책으로 만들어 줘야겠습니다. 아들에게 <어바웃 타임>을 선물하는 것이죠. 아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아빠가 바라본 시간과 생각들을 말이죠. 


이렇게 막상 적고 나니, 아내가 서운해할 것 같습니다. 일주일에 하루를 더 내어 주어야겠네요. 제 삶은 5일만 적어도 충분합니다. 적고 나니 눈가가 촉촉해져서 요즘 하루 3번 넣고 있는 안약을 넣지 않아도 되겠네요. 행복한 밤입니다.

이전 10화 레고에 대한 간절함이 사라진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