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 글쓰기 그리고 명상도 할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네요.
이십 대 후반, 내가 읽은 책과 앞으로 읽을 책이 가득한 나만의 공간을 꿈꾸었습니다.
비록 몇만 원 주고 구입한 작은 책장 하나에 몇 권 안 되는 책을 가지고 있었지만 말이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소박한 꿈은 자신만의 독서공간을 갖는 것입니다. 그 계기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라는 책을 읽고 난 후부터입니다. 처음에는 다독을 목표로 책을 읽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지의 거인'이자 유명한 다독가인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을 읽게 되었죠.
그는 도쿄 시내 10평 정도의 작은 공간에 '고양이 빌딩'이라는 자신만의 서재와 집필 공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겨우 10평의 공간이라고 해서 조그만 서재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이루어진 이 공간이 오직 책으로만 빽빽하게 채워져 있습니다. 서가의 길이를 다 합하면 700m가 되고, 보관하고 있는 책도 수 만권이 넘습니다. 10평이라는 공간이라 가볍게 생각했는데 묵직한 서재가 있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10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천 권 정도의 책을 읽었습니다. 지금처럼 앞으로 40년을 읽으면 겨우 5천 권의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5만 권의 책은 절대 읽을 수 없는 지식의 세계입니다. 이건 서재보다 도서관에 가깝습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을 읽으며 '나만의 서재’를 꿈꾸었습니다. 성공하면 고양이 빌딩 같은 공간을 만들겠다는 꿈을 꾸었습니다. 겨우 3단 책장을 가지고 있던 초보 독서가의 큰 꿈이었죠. 1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3단 책장이 '나만의 방'으로 커졌습니다. 한쪽 벽면에는 책장이 있고, 글을 쓸 수 있는 책상과 책을 읽을 수 있는 소파도 방 한가운데 두었습니다. 처음으로 생긴 나의 서재입니다.
작은 책장부터 시작해 볼까요?
어쩌다 보니 최근 10년 동안 2년에 한 번씩 5번 이사를 했습니다. 책을 좋아하고 수집하는 사람에게 이사는 매번 큰 고민을 가져다줍니다. 요즘은 전자책을 읽는 사람들도 많이 늘어나는 추세지만, 저는 종이책이 주는 그 정겨움과 손으로 접어가며 읽는 아날로그 감성이 좋습니다. 그러다보니 한 달에 10권 정도의 책을 삽니다. 이렇게 산 책은 거실, 안방 그리고 발코니에 쌓여만 갑니다. 이사가 다가올수록 책을 정리해야 하는 부담감은 늘어만 갑니다. 어떤 책을 버리고 무슨 책을 취할 것인가. 2년마다 며칠의 시간을 투자하여 책장 앞에 앉아서 깊게 고민합니다. 대부분 표지만 보고도 그 마음을 결정할 수 있지만, 마음을 정하기 힘들 때는 표지 뒷면에 적어놓은 메모도 펼쳐서 읽어봅니다. 그러면 그 추억이 생각나서 더욱 선택은 어려워집니다. 하나하나 소중한 나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 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일정부분의 책을 정리해야 합니다. 책을 정리하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주기적으로 책을 정리하는 것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 나의 독서 취향을 확인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어렵게 살아남은 책을 보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와 분야를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제 책장에 남아 있는 책은 10년의 세월 동안 최소 5번의 선택을 받은 책입니다. 당연히 제 인생 책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책이 정리되어 나갈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좋아하는 자기계발서와 경영 분야의 책이 가장 많이 정리됩니다. 좋아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많은 책을 사게 됩니다. 많이 사는 만큼 정리되는 책도 많죠. 게다가 제 책은 메모와 접힌 부분이 많아서 중고서점에서도 받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나의 주관적인 생각과 밑줄이 있는 책을 다른 사람에게도 주기도 조심스럽습니다. 독서에 대한 편견을 심어줄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렇게 많은 책을 보관할 곳이 없어서 안타깝게 떠나보냈습니다. 그때마다 생각했습니다. 나만의 서재를 만들어서 책을 버리지 않고 마음껏 사서 보관하는 공간을 만들겠다고 말입니다.
나만의 서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요? 책을 좋아한다고 해서 모두가 나만의 서재를 가질 수는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크죠.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서재를 가질 수 없다면 시작은 ‘나만의 책장’으로 시작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3단 정도만 되는 책장에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하나씩 채워 넣으면, 그곳이 나의 인생을 담은 공간이 됩니다. 가끔은 책장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행복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나만의 서재를 꿈꾸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책을 읽는 속도보다 사는 속도가 빠르다고 말이죠. 실제로 책을 읽기는 최소 3~4시간이 필요하지만, 책을 사는 데는 10분도 걸리지 않습니다. 책을 사는 것이 훨씬 빠르고 쉽습니다. 김영하 작가님도 <알쓸신잡>에서 유명한 말을 남기셨죠. ‘책은 산 책 중에서 읽는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이 말을 듣고 요즘은 조금 더 사고 싶은 책을 사서 수집하는 중입니다. 당장 읽지 못할지라도 언젠가는 읽을것이라는 다짐과 함께요.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데에 더 많은 욕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아파트 발코니의 작은 공간이라도 활용해서 나만의 서재를 만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책은 늘어만 가는데 공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책을 사면서 동시에 나의 공간을 늘리기 위한 고민도 계속해야 합니다. 발코니가 부족하면 거실에 있는 TV를 치우고 그 공간에 책을 놓는 효과적인 방법도 있습니다. 고민하면 답은 있습니다.
가끔은 '나에게 고양이빌딩과 같은 공간이 생긴다면 어떨까?' 상상을 해보곤 합니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지는 효과가 있죠. 저는 3층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1층은 인생책과 독서모임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밀 계획입니다. 각 분야별로 20권의 인생책을 정한 다음 책을 읽으며 계속 업데이트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인생책은 항상 변하니까 말이죠. 가운데 원형 테이블에 최대 8명 정도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독서모임도 하고 소규모로 토론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층은 전문분야와 촬영 장소로 활용할 계획입니다. 전문분야는 직업과 관련된 것일 수도 있고, 특정 분야에 대한 공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여행처럼 말이죠. 이 공간은 고정된 공간이 아니라 변화하는 공간입니다. 계절별로 변화를 주는 공간을 생각했습니다. 여행을 테마로 잡는다면 각 벽면에는 여행에 대한 책과 사진을 전시합니다. 봄에 어울리는 여행지를 정하고 그 나라와 도시에 대한 역사와 정보에 대한 책을 배치할 계획입니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서 나온 파리의 셰익스피어&컴퍼니처럼 작가의 소규모 출판 기념회를 하는 공간도 꿈꾸어봅니다. 또한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유튜브를 촬영할 수 있는 공간도 함께 만들어볼 계획입니다.
마지막으로 3층은 '나만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따스한 햇살을 받을 수 있는 큰 창을 설치하고, 그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는 완벽한 방음시설을 갖춘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집중을 방해할 수 있는 인터넷, 휴대폰 사용은 불가능한 공간입니다. 오로지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명상하는 공간입니다. 약간은 비밀의 공간 같은 느낌이죠. 오로지 나만의 공간을 꿈꾸어봅니다.
공상에 가까운 상상이지만, 상상만으로 행복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들 자신만의 특별한 서재를 꿈꾸는 건 어떨까요? 그 꿈이 거짓말처럼 이루어질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