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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축구

사실, 아빠는 축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by 송곳독서

아빠는 축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많은 남자들이 축구를 좋아합니다. 축구를 하는 것도 축구를 보는 것도 좋아하죠. 영국, 스페인처럼 유럽에서 현지 시간으로 진행되는 축구를 보기 위해 뜬눈으로 밤을 보내기도 합니다. 심지어 한 친구는 프리미어리그를 보기 위해 오랜 기간 돈을 보아 영국으로 여행 가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 친구를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축구를 보러 영국까지 가야 할까?


7년 전에 아내와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저희의 여행목적은 가우디의 도시 바르셀로나를 구경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르셀로나는 동시에 메시의 FC 바르셀로나로 유명하기도 하죠. 축구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유명한 Camp Nou 경기장을 가보기로 했습니다. 겨우 '메시'라는 축구선수만 알았는데 말이죠.


웅장한 경기장에 도착하니, 많은 축구팬들의 열기로 저희도 덩달아 신이 났습니다. 잠시 바르셀로나 축구복을 구경하다가 비싼 가격을 보고 바로 내려놓고, 축구장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목적은 기념사진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렴한 티켓을 예약했었는데요. 사진에서 보는 가장 위쪽에 위치한 곳까지 열심히 걸어 올라갔습니다. 마치 콜로세움 가장 위쪽에서 전사들의 싸움을 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스페인 현지 사람들의 응원소리는 왜 그렇게 무섭던지요. 그렇게 20분 정도 응원을 구경하다가 축구장을 나왔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요.


오! 경기장은 크고 멋진데, (다시는 안 올 듯)



아빠는, 어릴 때 축구를 배워본 적이 없습니다.

어릴 적 저는 <슬램덩크>를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겨우 초등학생에 불과했지만, 슬램덩크 만화책을 사서 모으고 만화영화를 꼬박꼬박 챙겨서 보았습니다. 자연스럽게 농구도 좋아하게 되었죠. 뭐 그것도 썩 잘하지는 못했습니다.


농구가 지루할 때는 야구를 했습니다. 그 당시에 농구만큼이나 야구도 인기가 많았습니다. 문구점에서 야구선수 스티커를 열심히 사서 모으면 야구용품을 주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돈으로 직접 사는 게 돈을 더 아낄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때는 그렇게 뽑기로 농구공도 마련하고 야구용품도 구비했습니다.


이상하게도 축구와는 인연이 없었어요. 흥미가 없었던 만큼 잘하지도 못했던 것 같습니다. 키는 크고 마른 아이 었던 저는 주로 골키퍼를 하거나 수비를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운동신경도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중, 고등학교 때도 자연스레 축구는 되도록 멀리했고, 가끔 농구를 하거나 다른 운동을 했습니다. 제 축구 실력은 초등학교 6학년 때로 멈춰있었습니다.


'뭐 앞으로 축구는 안 하면 되니까!'라고 생각하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가 사관학교를 갈 줄은 몰랐던 것이죠. 사관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운동이란 운동은 처음부터 다시 배웠습니다. 축구, 농구, 배구, 테니스, 라켓볼, 소프트볼, 수영 그리고 골프까지 말이죠.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운동만 배운 것 같네요(하하). 물론 전공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사관학교 생활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다양한 운동을 배울 수 있어서 좋겠다고 말합니다. 그건 기본적으로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말입니다.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싫어하는 운동을 배우는데 즐겁기보다 스트레스로 다가옵니다. 게다가 매 과목마다 평가도 있습니다.


새롭게 운동을 배우면서 생각했습니다. 운동은 연습을 통해서도 실력이 향상될 수 있지만, 연습보다 감각과 흥미가 더 중요하다고 말이죠. 운동감각, 센스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키워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다양한 운동을 가르쳐주기로 했습니다.


그 첫 번째는 축구!

사실 처음에는 농구나 야구가 떠올랐지만, 5살 아이가 큰 농구공을 가지고 놀기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야구는 캐치볼부터 알려주면 되는데요. 제가 어릴 때도 가지고 놀았던 찍찍이 캐치볼 도구는 미리 준비해놓았습니다. 하지만 캐치볼도 아직은 무리예요. 5살 아이가 공을 받는 것도 어렵지만, 찍찍이에 붙은 공을 떼어내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만만하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축구를 선택했습니다. 축구는 축구공으로도 할 수 있지만, 둥그런 공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운동이니까요. 축구장에서 할 것이 아니니까 축구화도 운동복도 필요 없고, 그저 공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참! 가성비가 좋은 운동입니다.


아빠의 첫 번째 레슨. 치고 달리기!

아들은 마냥 즐거워합니다. 조그마한 손과 발로 큰 공을 차더니 신나게 뛰기 시작합니다. 어찌나 밝은 얼굴로 뛰던지요. 그렇게 5살 때는 공을 차고 달리고 많이 웃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일단은 기초 체력을 다지는 단계라 생각하면서, 편하게 놀이처럼 가르쳐줍니다.


아빠의 두 번째 레슨. 수업 등록하기!

운동은 처음부터 전문가에게 바른 자세로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즘은 어린아이들도 축구를 체계적으로 배웁니다. 축구 스쿨에서 드리블부터 슈팅까지 전문 코치님이 잘 가르쳐주십니다. 아내가 축구 교실을 고민하고 있을 때 크게 고민하지 않고 등록을 권유했습니다. 제 어린 시절이 생각났기 때문이죠. 어릴 적에는 깊이보다 다양한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아빠의 (체력단련) 축구 연습을 멈추지는 않았습니다. 매주 주말에는 꼭 밖으로 나가서 아들과 축구를 합니다. 축구교실에서 배운 것을 복습하는 시간이기도 하고, 아빠의 체력을 키우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아들과 단둘이 깔깔거리면서 신나게 뛰어다니다 보면, 세상의 가장 큰 행복이 지금 여기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계속 열심히 뛰어다니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순수한 즐거움과 삶의 열정을 배웁니다.


이번 주에는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의 딸인 샤샤 세이건의 책을 읽었습니다.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해서>라는 책인데요. 참 선물 같은 책입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그 부인인 얀 드루안의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 그리고 딸의 책까지 읽으면서 생각했습니다.


(부모와 함께한 종이접기) 일주일에 한 번 했다는 것도 적절했다. 날마다 하면 너무 자주여서 특별하게 느껴지지도 않고 시간도 너무 많이 들었을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하면 너무 띄엄띄엄이어서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리듬을 느끼기가 어렵다. 일주일에 한 번이 딱 적당했다.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해서> 53쪽


아들에게 커다란 부를 남겨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목표입니다. 무언가를 처음 배울 때 길을 알려주는 것은 아빠가 할 수 있는 소중한 역할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축구를 처음 배울 때, 농구를 처음 배울 때, 책을 처음 읽을 때, 글쓰기를 처음 할 때 그저 옆에서 아빠와 함께 했었다는 그 기억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그렇게 믿고 싶네요.


또 아들과 함께한 이런 추억들을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도,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는 아들과의 추억을 불러오는 매개체가 되겠죠. 부디 브런치 플랫폼이 제 아들이 자라서 자신만의 글을 쓸 수 있을 때까지 운영되면 좋겠습니다. 아들도 브런치 작가가 된다면 좋겠네요. 칼 세이건의 딸인 샤샤 세이건이 글을 쓴 것처럼요.


우리처럼 작은 존재가 이 광대함을 견디는 방법은 오직 사랑뿐이다.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해서>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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