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세 명의 상사가 있습니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우리가 상사를 고를 수 있다고 가정해볼까요?
첫 번째 상사,
젊은 시절에 성공했습니다. 날마다 명상도 하고, 채식을 합니다. 뛰어난 창의력으로 조직의 이끌고, 세상에 없는 제품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능력이 있는 A급 인재들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무시와 질타를 받을 수 있습니다.
행동 방식에 이런 역겨운 일면도 있었지만 그는 팀의 사기를 북돋는 능력도 지니고 있었다. 사람들을 완전히 뭉개 버리고 난 후에는 그들을 다시 치켜세우고 00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일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임무인지 느끼게 해 주었다. 그는 6개월마다 팀원 대부분을 대동하고 이틀 동안 가까운 리조트로 수련회를 떠났다.
두 번째 상사,
노력 하나로 기업을 만들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언제나 문제 옆에서 해결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남들이 선호하는 대기업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중소기업이라도 최선을 다하면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마음속에는 항상 1등이 되기 위한 꿈을 꾸었습니다. 하지만 그와 함께하면 야근을 자주 할지도 모릅니다. 퇴근을 못할 수도 있죠.
소소한 일에도 기쁨을 느끼고 감동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이지. 단조롭고 반복적인 우리의 연구를 지치지 않고 계속해나가려면,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기뻐할 줄 알아야 해. 그 기쁨과 감동이 새로운 에너지를 주는 법이니까. 특히 연구비도 적고 설비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환경에서 연구를 계속해야 하는 우리는 사소한 일에서라도 기쁨을 찾아야 새로운 용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세 번째 상사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 성공했습니다. 처음에는 작게 시작했지만, 인터넷 판매를 통해 순식간에 직원들이 늘어났죠. 수직적인 문화는 정말 싫어합니다. 수평적인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직원들과 소통도 자유롭습니다. CEO라고 해서 별도의 방은 있지만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직원들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창업 1년 반 만에 직원 220명의 기업이 되었어요. 시간과 장소에 맞는 패션센스와 끊임없는 체력관리는 필수죠. 야근을 하는 직원들도 가끔은 챙겨주고, 고객과 직접 통화를 하면서 일을 처리합니다. 하지만 나이 많은 어른들과 함께하는 일을 쉽지 않네요.
이 세 명의 인물이 누구인지 아시겠어요? 아마 1~2명 정도는 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글만 읽고 3명을 모두 맞추셨다면, 댓글 남겨주세요. 제가 좀 배우고 싶습니다.
제가 소개한 3명의 인물 중 2명은 실제 인물입니다. 그리고 1명은 영화 속 인물입니다.
1번 상사,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의 괴팍한 성격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를 다룬 많은 영화에서도 나왔고, 다양한 책에서도 언급되었죠. 제가 지금 읽고 있는 잡스의 자서전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합니다. 생각보다 더 세부적으로 말입니다. 보통 자서전이라고 하면 좋은 면을 부각하고, 나쁜 면은 감추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렇지 않네요. 잡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등장해서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이 이유 때문일까요? 오히려 칭찬만 일색인 자서전보다 더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그저 달기만 한 초콜릿 케이크보다는 약간 쓴 맛이 있는 씁쓸한 초콜릿 케이크가 더 당기는 이유와 비슷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절반 정도 읽기 시작하면 또 다른 생각이 튀어나오기 시작합니다. 바로 잡스의 입장이 아닌 잡스의 직장동료 또는 부하의 입장 말이죠. 평범한 우리 대부분은 누군가의 부하로 지내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잡스보다 그들의 이야기에 더 공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2번 상사. <왜 일하는가> 교세라 창업자, 이나모리 가즈오
이나모리 가즈오의 삶은 스티브 잡스보다 익숙하게 다가옵니다. 비슷한 동양 문화권의 직장생활을 담고 있기 때문일까요? 저희 아버지 시절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습니다. 가정보다는 회사, 성실하게 일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온다는 생각, 노력과 자세를 강조하는 것도 말이죠. 잡스의 엘리트 의식과는 대조적입니다.
하지만 요즘 말로 이런 삶은 회사에 자신을 갈아 넣는 희생을 강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너무 워라밸만을 강조해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내 삶의 전체를 회사를 위해서 사는 것도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 중간 즈음… 중도란 게 있을까요?
3번 상사, 영화 <인턴>의 줄스 오스틴(앤 해서웨이)
자신의 노트북에서 시작한 작은 사업이 창업 후 몇 년 만에 200명이 넘는 직원이 있는 회사가 됩니다. 회사 내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체력관리를 하고, 직원들에게 따뜻하게 대해주고, 평등한 관계에서 회의를 하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CEO입니다. 완벽을 추구하는 그녀의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입니다.
왠지 모두가 3번 상사와 일을 하고 싶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평등한 조직문화와 젊고 감각 있는 CEO가 있는 기업. 하지만 단점은 역시 역사가 짧고 위기의 순간에 단단하게 버텨줄 경험 많은 직원들이 없다는 것이겠죠. 그래서 로버트 드니로(벤 휘태커) 같은 시니어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상사를 고를 수 있다면..?
예전에는 내가 상사가 된다면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를 그려 보았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일단 직원들의 말을 잘 들어주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서두르지 않고 침착하며, 적절한 순간에 정확한 결단을 내려주는 상사! 이런 상사를 꿈꾸었죠.
하지만 직장생활을 할수록 완벽한 상사가 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현실에서는 정해진 시간 내에 성과는 내야만 하고, 시간은 부족하고 해야 할 일만 가득한 상황이 수시로 찾아옵니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은 조직보다는 개인의 삶을 더 우선하는 경우가 더 많고요.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스티브 잡스처럼 현실을 왜곡시켜가면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서 결국 원하는 것을 얻어야 할까요? 이나모리 가즈오처럼 꾸준한 성실함을 통해 많은 시간을 들여 우직하게 나아가야 할까요? 아니면 영화 <인턴>의 CEO처럼 완벽함을 추구하는 상사가 되어야 할까요? 사실 아직 답은 내리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인턴>의 CEO처럼 수평적인 대화가 가능하고 직원을 챙겨주는 상사와 일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를 만나 인류의 역사를 바꾸어 놓을 아이폰과 같은 제품을 만들어보는 것도, 이나모르 가즈오를 만나 1등 기업의 영광을 가져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아직은 좀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한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