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는데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공기, 물, 음식, 적당량의 햇빛, 친구...
아니, 나는 깨달았다.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도파민과 잠이다.
그날은 침대에 앉아 폰을 붙들고 울면서 시작되었다.
"아무것도 못하겠어. 나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아."
여러모로 내 상태가 안 좋은 걸 짐작하고 있었던 남편은 잠깐의 침묵 끝에 어서 병원에 가볼 것을 권하고 '곧 괜찮아질 거야'라고 해주었다. 동네 정신건강의학과를 검색해 전화를 했더니 2주간 예약이 다 차 있었다. 아픈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놀랍기도 하고 묘하게 위안이 되었다. 나만 아프고 힘든 게 아니라는 사실이. 2주를 더 이 상태로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괴롭지만 더 먼 곳을 찾아갈 기력도 없어서 기다려보기로 했다. 어떻게 해 볼 여지도 없는 숨 막히고 지난한 2주.
또 하루가 왔다. 아침이 어김없이 또 기어이 오고야 말았다. 심연에서 떠밀려와 잠이 깬다.
희끄무레한 안갯속을 더듬어 찾은 시계는 6시 50분을 가리킨다. 이불속에 가라앉아 또다시 무자비하게 쳐들어온 시간을 무시한다. 아침 따위. 아래가 보이지 않는 못의 표면에 반쯤 잠겨 있다가 알람 소리에 몸을 일으킨다. 물을 잔뜩 머금은 몸을 일으키는 것이 쉽지 않다. 침대와 내 몸이 보이지 않는 수많은 실들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그 실은 탄성도 전혀 없고 내 움직임에 반응해 더욱 타이트하게 침대와의 사이를 좁혀간다. 그 힘에 굴복하고 자리에 다시 누워보지만 아이를 학교에 보내야 한다.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다듬어 명랑하게 아이를 깨우고, 혼신의 힘을 다해 아침을 준비하고, 현관에서 가방을 두드리며 아이를 세상으로 보냈다.
일을 해야 한다. 침대에서 나와 노트북을 켜는데 3시간이 걸렸다. 모니터를 앞에 두고 앉았다. 창밖에서 나무 자르는 윙윙소리가 들리다가 이내 조용해진다. 새소리와 윗집 아니 옆집 어디선가에서 TV소리가 들린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자판 하나하나의 무게가 느껴진다. 그동안 이 무거운 노트북 자판을 어떻게 밀어내며 살았을까. 그런 힘이 어디서 나왔던 거지? 새삼 경이롭다. 자판은 무겁고, 축축하고, 모니터는 내 노력을 차갑게 비웃으며 줄곧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조금씩 창틀의 그림자만 길어지고 있다.
음식이란 뭘까. 밥을 먹기 위해 준비하고 먹는다는 행위는 아주 길고도 고된 과정이다. 살기 위해 무언가를 입에 밀어 넣지만 7kg이 빠졌다. 이해하기 어렵다. 내 몸은 이렇게 무거운데. 심해의 수압을 밀어내며 천천히 움직여본다. 바닥의 풍경은 농도가 짙은 젤라틴 같다. 애를 써봐도 위로 올라가는 건 내 능력밖이다. 곧 현실을 깨닫는다. 아, 나는 이제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구나. 음식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할 수가 없다. 살기 위해 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도 해낼 수가 없다. 무력하게 천천히 암흑으로 가라앉는다.
컴컴한 집 안으로 빛 한줄기가 새어 들어온다. 아이가 귀가했다. 우울증에 걸리지 않은 엄마처럼 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많이 피곤하고, 생리증후군, 몸살, 배탈에 시달리는, 면역력이 떨어져 골골대는 엄마를 연기한다. 멀쩡해 보이려고 웃으며 실없는 농담도 해본다. 아이를 안고 있으면 그래도 살만했다. 오르내리는 숨소리, 콩닥거리는 심장소리, 말랑말랑한 온기, 지금의 내게는 없는.
도파민과 항불안제가 결여된 살풍경한 시간들.. 더하기 또 2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