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진과 준태, 대칠과 성민이 가리봉동 사거리에 있는 황제커피에 앉아있다. 카운터 라디오에서 사이먼 & 가펑클의 'Mrs. Robinson'이 흘러나왔다. “마침내 완벽한 장소를 찾아냈다!” 준태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그래 어딘데?” 대칠이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요기 종점 근처에 ‘종삼이네 분식점‘이라고 있어. 거기야. 지난주에 성민이랑 나랑 거기서 떡라면 먹으면서 살펴봤어. 그랬더니 분식점 뒤쪽으로 커다란 환풍기가 달려있더라고. 그걸 뜯고 안으로 침입하면 되는 거야. 금고는 계산대 뒤에 있고.” 준태가 말했다.
성민이 쌍화차를 마시고 말했다. “이건 자기 집 들어가서 엄마 곗돈 훔쳐가지고 나오는 것처럼 식은 죽 먹기야.”
“분식점 같은 덴 그날 매상을 그날 챙겨가지, 금고에 두고 가진 않을 텐데.” 형진이 고개를 꺄우뚱했다.
“넌 항상 부정적인 태도가 문제야. '보이스 비 앰버서더 호텔'이란 명언도 있잖아. 들어갔다가 돈이 없으면 도로 나오면 돼. 정 그냥 나오기 아쉬우면 즉석떡볶이 4인분 만들어먹고 나와도 되고. 분식점이니 재료는 있을 거 아냐. 근데 한 가지 꺼림칙한 건...” 준태가 말끝을 흐렸다.
“뭔데?” 대칠이 물었다.
“거기 아줌마가 너무 좋은 분이야. 혼자 힘들게 고생하면서 자식들을 키우나 봐. 몇 년 전 남편이 중풍으로 쓰러진 후론...” 준태가 말했다.
그 말에 형진과 대칠, 성민이 뭉클한 표정을 지었다.
“야이씨... 그런 델 어떻게 터냐? 우리가 아무리 도둑이라도 철학은 있어야지. 가난한 사람들 돈엔 손을 대면 안 돼. 뜯으려면 부자들한테서 뜯어야지.” 형진이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해? 이런 거 저런 거 다 따지면 털 수 있는 데가 많지 않아.” 준태가 한숨을 내쉬었다.
“걱정 마. 다른 좋은 방법이 있다.” 성민이 말했다.
“그게 뭔데?” 대칠이 물었다.
“소매치기를 하는 거야. 골목에 숨어 있다가, 여자가 오면 백을 낚아채 냅다 달리는 거야. 뭐 뜯어내고 뚫고 할 필요 없이 깔끔하잖아.” 성민이 말했다.
“오 괜찮은 생각인데. 근데 어디서?” 형진이 물었다.
"부촌의 상징인 청담동이지. 청-담-동. 명품백 하나당 기본이 몇백만 원인데 세 개만 들고뛰어도 천만 원을 들고 달리는 거야. 건호 형이 백만 가져오면 파는 건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 했어. 그 형한텐 10퍼센트 주면 되고. ” 성민이 말했다.
“거긴 경찰들이 많을 텐데.” 준태가 말했다.
“그러니 철저한 사전답사가 이뤄져야 해. 만일을 대비해 리허설도 필요하고.” 성민이 말했다.
"아무래도 기역자를 연상시키는 낫 같은 것도 필요하겠지? 겁주려면 말이야.” 대칠이 코를 벌름거리며 말했다.
“야 무슨 벼 베러 가냐? 그냥 손톱깎기 하나씩 들고 가자. 겁 많은 청담동애들은 그거로도 충분해.” 성민이 말했다.
“난 그 동네 한 번도 안 가봤는데.” 준태가 개구리처럼 툭 튀어나온 눈알을 굴렸다.
“자식, 거기 사람들은 얼굴 때깔부터가 달라. 여기 가리봉동 하곤 차원이 완전 다르단 말이야. 부티가 좔좔 흐르는 게, 아르헨티나에서 공수된 무슨 특수한 육포를 먹는다는 소문도 얼핏 들은 것 같아. 그런데 한 가지 조심해야 할 건, 청담동 살지도 않으면서 그 동네를 배회하는 인간들이 있어. 그런 애들한테 속아선 안 돼. 걔네들 빽 들고 튀어봐야, 후라보노껌이나 쥬단학 파운데이션 밖에 안 나와.” 성민이 말했다.
“근데 어떻게 구분하지?” 형진이 물었다.
“좋은 질문이다. 너, 대칠이 얼굴을 한 번 봐봐. 얘를 누구한테 삼성의 이재용입니다,라고 소개하면 사람들이 믿겠냐? 아니지? 바로 그거야. 그냥 얼굴을 보면 얜 청담동이다, 란 게 딱 나와." 성민이 말했다.
“오케이. 근데 사전답사는 언제 할래?” 준태가 웃으며 물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지금 가보자.” 성민이 말했다.
“여기 커피값 제하면 돈이 안 남는데...” 대칠이 말했다.
“교통비도 안 나와?” 형진이 물었다.
“2천800원 남네.” 대칠이 말했다.
“2천800원. 뭐만 하려고 하면 자금이 달리는구먼. 이래서 아까 내가 당구 치지 말자고 했잖아!” 성민이 투덜거리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