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남산너머로 사라졌다. 도시는 형형색색 네온불빛들로 속도감 있게 물들어갔다. 대칠과 형진, 준태와 성민은 압구정동을 향해 가는 중이었다. 버스를 타기 전 마신 소주 때문인지 그들의 얼굴은 홍조를 띠었고, 숨 쉴 때마다 알코올 냄새가 풍겼다. 버스 스피커에선 델리스파이스의 "차우차우"가 낮은 볼륨으로 흘러나왔다. 버스는 잠실을 지나 청담동으로 진입했다. 반짝이는 거리를 보며, 대칠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경직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성민이 입을 열었다.
“드디어 이곳에 왔다. 교만하기만 한 이 동네에 마침내 우리가 온 것이다. 오늘은 암스트롱이 달에 첫 발을 내디딘 날, 한국이 월드컵 4강에 오른 날과 견줄 만하다. 행여라도 맘 약해지면 안 되니, 우리 각자 절도를 해야 하는 이유를 말하며 전의를 다져보자. 누가 먼저 할래?”
대칠이 말했다. “내가 절도를 하려는 이유는... 여자친구를 위해서야. 너희도 알잖아. 지희가 나한테 얼마나 잘해. 그런데 난 걔를 위해 좋은 선물을 사준 적도, 근사한 곳에서 밥 한 번 사준 적이 없어. 마음은 있는데, 돈이 없기 때문이지. 이번에 돈 생기면 지희를 멋진 곳에 데려갈 거야. 이년 전 내 맘을 훔쳐간 지희한테 훔친 명품백도 줄 거고.”
대칠의 말에 세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열에 다섯은 수긍할 명분이다.” 성민이 말했다.
“나는 우리 엄마... 불쌍한 우리 엄마를 위해서야. 재작년 아버지 돌아가시고, 청소부로 일하면서 그렇게 고생하는 우리 엄마를 위해... 엄마가 좋아하는 갈비 원 없이 사드리고 싶다.” 준태는 금세 붉어진 눈으로 말했다. “너의 그 황금빛 효심이 반드시 빛을 발할 거다.” 성민이 확신에 찬 얼굴로 그의 손을 잡았다. 두산베어스 모자챙을 만지며 형진이 말했다. “이미 말했지만, 난 우리 아버지 때문에 하는 거야... 허구한 날 술 마시고, 가족들한테 폭언에 폭행에. 정작 세상을 향해선 찍소리도 못하면서, 가족들만 괴롭히는 아버지에게, 난 이렇게 대담한 짓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그의 말에 성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앞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긴 뒤 성민이 말했다. “난... 그저... 저들의 허황된 자아도취를 무너뜨리고 싶어서야. 에르메스백을 훔침으로써 그 사명을 감당하고 싶다.”
버스는 갤러리아 사거리 앞에 멈춰 섰다. 네 사람이 차례로 하차했다. 대칠이 화려한 백화점 외관을 보며 중얼거렸다.
“제기랄... 근데 왜 이렇게 지희가 보고 싶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