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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Jang Oct 11. 2024

윈디 시티 블루스 (1/3)

1.      

책상 위에 놓인 휴대폰이 부르르 소리를 내며 요란하게 진동했다. 청소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제이가 휴대폰 액정을 보니 ‘문어발 청소용역업체’ 고사장의 이름이 떠 있었다. 이 인간이 무슨 생트집을 잡으려고 자정이 다 된 이 시간에 전화를 했지? 제이가 투덜거리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잔뜩 화가 난 고사장의 목소리가 건너편으로부터 들려왔다. 그는 학교 청소를 어떻게 그따위로 했어? 화장실 바닥이며 교실 플로어가 제대로 청소가 되지 않았잖아. 정말 이런 식으로 하면 이번 달 월급 한 푼도 못 받는 수가 있어,라고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는 제이에게 도로 학교로 가서 제대로 마무리하고 오라고 했다. 용건을 마친 고사장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런 일이 몇 번 있었음에도 그럴 때마다 화가 나는 것은 제이로서는 어쩔 수 없는 감정이었다. 이런 나쁜 인간 같으니, 툭하면 월급 안 준다는 협박을 하는구먼, 이라며 제이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는 청소 파트너인 건호에게 전화해서 방금 고사장에게 들은 내용을 전해야만 했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건호가 그 말을 듣고 화를 버럭 내며 소리쳤다. "뭐 이런 개 같은 잡이 다 있냐! 트집을 잡으려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는 일이잖아." 그 말에 제이는 그래도 다른 일을 찾을 때까진 어쩔 수 없다삼십 분 있다가 수위실에서 보자고 건호에게 말했다. 제이는 전화를 끊은 다음 옷장을 열었다. 몇 주전 월마트에서 할인할 때 샀던 청바지를 꺼내어 입고 남색 파커를 걸친 뒤 그는 집을 나갔다. 제이는 거의 십만 마일을 뛴 혼다 시빅을 몰고 인터섹션 90에 올라 그가 청소를 하고 있는 펠로우 고등학교를 향해 질주했다. 라디오 록 스테이션에서는 펄잼의 ‘In My Tree'가 흘러나왔는 데 펄잼은 제이가 좋아하는 록밴드 중 하나였다. 록음악을 즐겨 듣는 그는 역사상 최고의 록밴드 베스트 5는 모두 영국 출신이라고 생각했고, 미국 록밴드 중 최고는 이글스라고 간주했다. 멀리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에이온 센터가 제이의 눈에 들어왔다. 심한 밤에도 입을 크게 벌린 채 들지 않는 도시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도시인은 악어와 악어새와의 관계와도 같은 것이다. 제이가 삼십 여분을 달려 학교 주차장에 착했더니 건호가 먼저 와 있었다. 제이가 점퍼 주머니에서 윈스턴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건호가 플라스틱 라이터로 불을 붙여 주었다. 두 사람은 수위실 앞에서 나란히 선 채 담배를 피웠다. 건호가 이참에 고사장 하고 담판 져서 청소구역을 줄여달라고 하자고, 이렇게 넓은 사이즈의 학교를 두 사람이 청소한다는 건 도무지 말이 안 된다며 콧구멍을 벌름거렸다. 그의 입에서 나온 담배연기가 공기 속으로 빠르게 흩어졌다. 제이는 아무 말 없이 담배꽁초를 옥외 재떨이통에 비벼 껐다. 그리고 언제 기회를 봐서 고사장에게 얘기를 해보자고 말했다. 두 사람이 출입문을 열고 중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호가 어느 화장실이 더럽다고 얘기를 했느냐고, 자신이 생각하기엔 아무래도 고등학교 쪽 같다며 로비 벽에 붙어있는 스위치를 올렸다. 몇 미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캄캄했던 실내가 순식간에 환해졌다. 그러고 보니 아까 고사장은 그저 학교가 더럽다고 했지, 그게 중학교인지 고등학교인지는 확실하게 말하지 않았다. 제이가 바닥을 두리번거리며 더러운 곳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는 건호의 말대로 고등학교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중학교의 로비와 교실, 그리고 화장실과 복도는 파리가 착륙하다가 미끄러질 정도로 깨끗하게 반질거렸다. 두 사람이 중학교와 농구장을 사이로 두고 나누어진 고등학교로 부리나케 이동했다. 고등학교 로비는 중학교와는 달리 바닥 군데군데가 지저분했다. 건호가 복도 중간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가 불을 켰다. 락스 냄새가 가볍게 나는 화장실은 완벽하게 깨끗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고사장의 표현처럼 그토록 지독한 상태는 아니었다. 건호는 나쁜 인간, 이 정도라면 굳이 우리를 부르지 않고 자기가 걸레질 한 번만 해주면 됐을 텐데,라며 고사장을 욕했다. 제이는 물품 창고에서 청소 도구들을 꺼내 가지고 왔다. 버켓에 물을 붓은 후 클리닝세제를 섞었다. 제이가 대걸레를 야무지게 꼭 짜낸 뒤 화장실 바닥을 닦았다. 제이가 휘두르는 걸레봉은 완벽한 앵글을 유지했고 일정한 속도로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옆에서 그를 지켜보던 건호가 감탄하며 혀를 찼다. "마치 화가가 붓을 놀리듯 그렇게 대걸레를 움직이네. 난 아무리 노력해도 너처럼 그런 자세와 각도가 안 나온다." 제이가 걸레질을 하다가 말고 건호를 보며 빙긋 웃었다. 화장실 청소를 순식간에 끝낸 그들은 이번엔 교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교실의 전반적인 상태를 확인한 뒤 제이는 말했다.  

"우리가 아까 많이 피곤했긴 피곤했나 보다. 여기는 고사장이 뭐라고 할 만은 하네."

건호가 바닥의 먼지를 빗자루로 재빠르게 쓸었다. 제이는 그의 뒤를 곧바로 뒤따라가며 대걸레질을 했다.  

그러다가 교실 한쪽에 붙어있는 책장에 제이의 눈이 갔다. 영어 소설책들이 가득히 꽂혀있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 주홍 글씨. 분노의 포도. 무기여 잘 있거라. 젊은 예술가의 초상. 진열된 책을 따라 그의 시선이 이동했다.

"이 책 읽어봤냐?" 제이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꺼내 들며 건호에게 물었다.   

"장난하냐? 영어로 된 소설을 내가 무슨 수로 읽어?" 건호는 가당치도 않다는 듯 되물었다.

"영어 원서를 말하는 게 아니라 한글로, 이거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거든." 제이가 말했다.

"허클베리 핀이라면 책은 아니고 만화로는 봤지. 베키하고 톰하고 인디언 조인가 나오는 거 아니야.. 어렸을 때 봤는데 아주 재미있었던 기억으로 내 머릿속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다." 건호가 능글맞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톰 소여의 모험이고. 허클베리 핀은 좀 다른 거라고." 제이가 피식 웃으며 소설책을 도로 책꽂이에 꽂았다. 그리고 창가로 걸어가 창문을 반쯤 열어젖혔다. 탁한 실내 공기가 밖으로 빠져나가고 신선한 바깥공기가 안으로 치고 들어왔다.  두 사람이 잠시 휴식 시간을 갖기 위해 창틀에 걸터앉았다. 멀리 파노라마처럼 펼쳐져있는 다운타운이 보였는데, 제이는 오늘따라 왠지 도시의 야경이 아름답게 보이기는커녕 아무런 의미 없는 불빛들의 혼란스러운 조화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2월의 차가운 겨울바람이 미시간 호수로부터 매섭게 불어왔다. 누가 별명이 윈디시티 아니랄까 봐, 바람 한 번 날카롭네. 이건 완전 고문이잖아,라고 건호가 점퍼의 지퍼를 목언저리까지 올리며 말했다. 그가 바람에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넘긴 다음 제이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언제까지 이 놈의 청소일을 계속해야 하는 것일까. 너나 나나 올 해로 서른이 되었다. 우리가 여기 시카고까지 왔을 때는 무슨 대단한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떤 꿈을 가지고 온 것이었잖아."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서울을 떠나 여기로 온 건 이곳에 어떤 꿈이나 목표를 가지고 왔다라기보다는, 서울에서는 도저히 제대로 살 자신이 없으니까 이리로 건너온 거잖아. 넌 무슨 이유로 왔는지 몰라도 적어도 난 그렇거든." 제이가 사이를 두었다가 말을 계속했다. "우리가 현재 관광비자로 와서 그냥 눌러 있는 것이니까 일단은 지금처럼 편법으로라도 비자를 계속 유지하면서 하루라도 빨리 영주권을 받아야 해. 고사장이 노동허가증은 내어주기로 약속했으니까." 제이가 말한 후 이마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그 개 같은 인간이 행여나 해주겠다. 아무튼 노동허가증 안 해주면 내가 고사장 이 인간, 이민국 하고 노동청에 싹 다 신고한다. 우리가 일주일에 50시간이 넘게 일하면서도 한 달에 천 불만 받는 건 그 인간이 노동허가증 받으려면 돈이 든다고 해서 그러는 거잖아." 건호가 분통을 터트리다가 다시 감정을 추스른 후 말했다. "네 말처럼 일단은 영주권이 있어야 이곳에서 어떤 목표를 가지고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제이 너는... 이루고 싶은 어떤 꿈이 있냐?"

꿈이라..,라고 제이는 말끝을 흐린 후 창가 쪽에 놓인 티슈박스에서 티슈 장을 꺼내 코를 풀었다.

"평생 교실바닥이나 닦다가 죽을 순 없잖아." 건호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글쎄다... 대답하기가 쉽지 않네. 지금 현재로선 영주권 받는 거 자체가 꿈이라서. 굳이 하나 더 얘기하자면 저 달이 지구로 떨어지는 것 정도다.” 제이가 하늘에 박힌 노란 달을 보며 웃었다.

건호는 우리의 꿈이 결국 영주권 받는 것이라니, 난 청소 구역 줄어드는 것도 꿈이라고 해야겠다,라며 제이를 따라 소리 내어 웃었다. 두 사람은 다운타운을 몇 초 동안 응시하다가 창문을 받고는 하던 청소를 마저 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제이는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방 한쪽으로 던졌다. 그는 이동식 히터를 켠 후 매트리스에 엎드린 채 책을 펼쳤다. 매트리스의 차가운 촉감이 그의 몸으로 전해졌지만 그다지 춥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가 집어든 책은 며칠 전 반스 앤 노블에서 산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이었는데, '별 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의 중간쯤을 읽을 차례였다. 삼십 분 가까이 책에서 눈을 떼 않았던 제이 소설책을 덮고 일어났다. 히터에서 나온 열기로 인해 방 안의 온도가 어느 정도는 따뜻해졌다. 그가 냉장고에서 쿠어스 캔 맥주를 꺼내어 딴 다음 한 모금을 길게 들이켰다. 건호와 교실을 청소하면서 주고받은 이야기가 그의 뇌리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올랐다. 꿈이라... 제이는 중얼거리며 책상 위에 놓인 납작하고 네모난 형태의 알람시계를 쳐다봤다. 3:15 a.m. 제이는 하품을 늘어지게 한 후 맥주 캔을 단숨에 비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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