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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Jang Oct 31. 2024

굿바이 Chi-Town (3/3)

3.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이제 그쳤지만 하은 여전히 짙은 재색이었다. 집을 나온 두 사람은 근처에 있는 데니스에서 간단하게 오믈릿과 커피를 먹었다. 그런 다음 그들이 계획한 대로 택시를 타고 링컨파크 동물원으로 향했다. 모니카는 두꺼운 색 후드 집업에 청바지 차림이었는데, 캐주얼하게 입으니 영락없 대학생처럼 보였다.  그녀는 조지킴의 팔짱을 낀 채 동물원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구경을 했다. 조지킴은 무표정한 얼굴로 우리에 갇힌 가련한 피조물들을 관찰했다. 포효하지도 못하는 북아프리카서 건너온 사자. 자기가 갇힌 게 아니라 자신이 인간을 가둬놨다고 생각하는 정신 나간 남미 원숭이. 코가 크면 뭐도 클까요?라는 질문을 던지며 어슬렁거리는 인도에서 온 코끼리. 미끌거리는 몸을 커다란 젤리처럼 덜렁거리며 생선을 받아먹는 북태평양 출산의 물개. 조지킴은 동물들을 보다가 그런데 저 동물들이랑 나랑 뭐가 다르지? 내가 쟤네들보다 나은 게 대체 뭐가 있느냐는 말이지,라고 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뭐야! 곰이 탈출했다고?" 모니카의 격양된 목소리가 그의 사유의 심화를 막고 그의 넋두리를 산산조각 냈다.

모니카의 말에 깜짝 놀란 조지킴은 고개를 돌리고 그녀가 가리키는 사인을 바라봤다. 안내문을 읽어 내려간 그는 실소를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즐리 베어 두 마리가 엊그제 사육사를 물어뜯중상을 입힌 다음 우리를 탈출했는데, 한 마리는 동물원 입구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포획되어 바로 돌아왔고, 나머지 한 마리는 여전히 행방이 묘연하다는 내용이었다. 조지킴이 휴대폰으로 확인을 하자 곰의 탈출 소식은 이미 시카고 미디어를 통해 도시에 퍼진 상태였다. 조지킴은 껄껄 웃으며 살다 보니 별의별 일이 다 있구나 생각했다. "나가자. 어디 가서 먹자고." 조지킴이 모니카의 허리를 손으로 감싸며 말했다. 그녀오믈릿을 먹은 탓인지 별로 고프지 않았다. 그녀는 동물원을 조금만 더 둘러보자고 말했고 조지킴은 그럼 그렇게 하자고 대답했다. 십 여분이 지나 동물원을 빠져나오면서 조지킴은 도망간 곰을 머릿속에 떠올다. 절대로 붙잡히지 마라. 그렇게 영원히 전설 속으로 사라지는 거야. 두 사람의 다음 지는 사우스 사이드에 있는 차이나타운이었. 그들은 그곳에 있는 'Wang's Express‘란 유명한 차이니스 레스토랑을 찾았다. 언제나 손님들로 북적거리는 곳이었지만, 오늘은 희한하게도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식당은 그리 크지 않았고 노포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중국 전통의상인 빨간 치파오를 입고 이마에 커다란 사마귀가 박힌 웨이트리스가 그들의 테이블로 왔다. 조지킴은 평상시에 즐겨 먹는 중국 음식인 쉬림프 로메인을 주문했고, 모니카는 메뉴판을 탁 소리 나게 덮으며 오렌지 치킨으로 주세요,라고 말했다. 모니카와 조지킴이 탁자 위로 서로의 손가락을 만지며 장난을 쳤다. 잠시 후 웨이트리스가 주문한 음식과 블랙티를 가지고 왔다.

"Do you need anything else?" 종업원이 반을 옆구리에 끼며 물었다.

"No thank you." 조지킴이 개를 까딱하며 대답했다.  

"그런데 조지무슨 일을 해?" 모니카가 나무젓가락을 가르며 물었다.

조지킴은 갑작스러운 그녀의 질문에 순간 당황하며 작비즈니스를 한다고 둘러댔다.  역으로

모니카에게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로메인을 가락으로 집으며 물었다.  그녀는 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말했고, 그는 무슨 공부를 하고 싶으냐고 재차 물었다.

"사진도 좋고, 오일페인팅도 배워보고 싶고.” 모니카는 포시 웃으며 대답.

구름 사이를 비집고 떨어진 햇살이 그녀의 앞니 위에서 반짝거렸다. 그녀의 치아 지킴은 날이 개었구나,라고 생각했다. 상쾌한 민트향이 나는  모니카의 순수한 미소를 보며 조지킴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진 인간이든 가지지 못한 인간이든 누구라도 영원히 살 수 없는 인생, 서둘러 떠날 필요 있을까. 땀방울이 그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다. 모니카는 오렌지치킨에 기꼬간장 뿌렸다. 조지킴은 그녀의 동작 하나하나를 관찰하며 계속 사유했다. 이럴 때일수록 더 악착같이 살아야지. 안 그래? 내가 지금 죽어버리면 어디서 이렇게 섹시한 여자를 다시 만나며, 어디서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겠냐고. 자살은 내 시각과 미각에 대해 무책임한 결정일 수도 있어. 내가 생각이 너무 편협했고 부정적이었어. 살다 보면 힘들 때도 있고 좋을 때도 있는 거잖아. 직장이야 또 구하면 되는 것이고 여자는 이제 모니카를 만나면 되는 거잖아. 조지킴. 살자 살아. 살면서 인생의 감춰진 작은 행복을 발견하고 그것들로 인해 감사하자. 조지킴은 화색이 도는 얼굴로 거리를 내다봤다. 흉하게 살찐 비둘기가 푸드덕거리며 시카고 대학 캠퍼스 으로 날아갔다. 모니카는 조지킴이 어떤 극적인 심적 변화를 겪든 말든 개의치 않고, 왕성한 그녀의 식욕을 따라 치킨 피스를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밀레니엄 파크에 가보자." 조지킴이 블랙티를 마신 다음 그녀에게 제안했다. 모니카는 치킨 한 점을 또다시 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를 끝낸 그들은 Tak's Express를 나 운타운 방향으로 가는 택시를 잡아 탔다. 터번을 착용한 택시 드라이버새로운 국제커플 한 쌍을 축하하듯 밀레니엄 파크를 향해 질주했다. 조지킴은 택시 안에서 줄곧 모니카의 손을 하늘에서 내려온 구원의 동아줄 마냥 꼭 고 있었다. 미시간 애비뉴에 접어든 택시는 곧 밀레니엄 파크 앞 횡단보도에 멈추어 섰다.

$9.25, 택시 미터기가 깜빡거렸다. 조지킴은 이십 불을 운전수에게 건네며 말했다. "Keep the change." 시카고라는 질주하는 고속열차에서 내려 잠시 숨을 고르는 사람들로 밀레니엄 파크는 붐다. 어떤 이는 벤치에 앉아 트리뷴지를 읽고 있었고, 어떤 커플은 공원 테이블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다. 조지킴은 한 표정으로 공원을 둘러보았다. 주위를 병풍처럼 둘러싼 빌딩들의 조명들이 물안개처럼 지면에 내려앉았다. 조지의 입에서 아, 하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이토록 아름다운 도시를 내가 떠나려 했다니. 짓의 왕 사탄에게 속아 하마터면 어서도 후회할 짓을 할 뻔했구나. 조지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생각했다. 네이비 피어로부터 출발한 한줄기 빛이 모니카의 채를 주황빛으로 물들였다. 그녀의   속에서 벌어지는 불꽃놀이를 보며 조지킴은 결심을 했다. 그리고 천천히 그는 입을 열었다.  

"Monica, I've got something to tell you." 

"What's it, George?" 모니카가 그를 보고 담담한 톤으로 말했다.

조지킴은 목을 가다듬은 다음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열 번의 해고와 그에 따른 자살계획, 끼는 캠리를 판 것, 그리고 모니카를 찾아가고 나고 그녀를 통해 깨닫게 된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과 소망을 자세 호소력 있게 설명했다. 조지킴은 일장연설을  후, 미소를 지으며 모니카를 보다가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말했다. 감사합니다. 검은 비닐봉지 하나에이온 센터의 벽을 타고 날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주위는 오묘한 느낌이 들 정도로 고요했다. 그는 성당에서 고성사를 하고 나온 교 목사처럼 어색한 표정으로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니카의 얼굴 표정은 모스크바의 겨울을 연상시켰다. 그녀의 침묵 속에서 조지킴은 불안한 어린아이처럼 쪼그라들었다. 이거 괜히 말했나. 너무 빨리 참사랑이니 어쩌니 읊어댔나.  차를 판 돈이 전 재산이란 말은 할 필요가 없었는데. 씨발 뭐야... 엄습한 불안감에 의 정신이 습격을 당한 사이, 모니카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파크를 빠져나갔다. 그녀는 슬라브족의 긴 하체를 이용해 종종걸음으로 뒤따라오던 조지킴을 여유 있게 따돌렸다. 그녀는 파크 앞에 정차해 있던

택시에 올라 쏜살같이 그곳을 빠져나갔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일어난 상황에 조지킴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의 다리는 종이 인형처럼 후들거렸고 그의 입술은 파르르 떨렸다. 휴대폰을 꺼내 모니카에게 전화를 걸었다. 물론 그녀는 조지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구소련년한테 내가 완전히 속았구나..." 의 마음속에서 숨 쉬던 염원의 기류는 대기권 밖으로 증발했다. Back to the original plan. 세상을 향한 증오와 저주가 의 마음속에 독사처럼 똬리를 틀었다. 그의 눈에선 마그마를 토해낸 화산처럼 김이 났다.

김종식은 횡단보도를 건넌 다음 와바시 리쿼 스토어에서 위스키 두 병을 샀다. 가게를 나온 그는 걸어서 애들러 천문대를 가려고 했지만 결국 한 블록을 걸은 뒤에 생각을 바꾸어 지나가던 택시를 멈춰 세웠다. "Where are you going?" 택시 운전수가 백미러를 통해 그에게 물었다. "Adler Planetarium." 김종식은 위스키가 담긴 페이퍼백을 갈마쥐며 대답했다. 비장한 김종식의 모습에서 차가운 살기가 뿜어져 나왔고, 그의 결연한 기운을 느낀 운전수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채 택시를 몰았다. 거리에 즐비하게 늘어선 웅장한 건축물들과 다채로운 네온 불빛들이 김종식에게 작별의 윙크를 보냈고, 그의 비통한 영혼을 품은 밤하늘은 깊고도 숨 막히게 도시 속으로 내려앉았다.


미시간 호수는 이제 막 다시 쏟아지기 시작한 비로 인해 출렁거렸고, 사우스 사이드에서 어젯밤 총에 맞아 죽은 자들의 영혼 빗속에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택시가 목적지인 애들러 천문대 앞에 도착했다. 김종식은 고맙습니다, 행복한 인생을 사십시오,라고 말한  남은 현찰 모를 기사에게 준 후 택시에서 내렸다. 기사는 그에게 고맙습니다,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길, 이라고 말한 뒤 쏜살같이 차를 몰고 그 자리를 떴다.

김종식은 장비를 맞으며 애들러 천문관 앞 길을 따라 걸었다. 멀리 레이크 쇼어 드라이브 위 차량들의 혼이 그의 혼을 울렸다. 종이 백에서 위스키를 꺼내 들이키는 김종식. 위스키는 그의 몸속 구석구석으로 골고루 퍼져나갔다. 순식간에 위스키를 모두 마신 그는 멀리 다운타운을 향해 위스키 병을 던졌고, 빈 병은 잠시 비행하다가 호수 속으로 퐁당 빠졌다. 그는 두 번째 위스키 병을 열었다. 깊은 한숨을 토해낸 후 김종식다시 술을 들이켰고, 그의 두 눈은 알코올과 절망과 애통으로 인해 간잔지런해졌다. 말없이 도시를 바라보던 김종식은 문득 그의 등 뒤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그는 고개를 돌리고 뒤를 바라보다. 솔저 필드 방향에서  마지막 선지자 보이는 한 남자가 폭우를 뚫고 그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색 양복을 위아래로 입은 남자는 조지킴을 발견하자 멈칫하더니 발걸음을 멈추었다. 김종식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남은 위스키를 재빨리 벌컥거리며 들이켰다. 극악무도한 계부가 채찍으로 그의 등짝을 후려듯 장대비가 쏟아졌다.


김종식(마연극배우라도 된 듯 큰소리로 건너편 다운타운을 향해): 그래, 난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게 아니야! 어쩌다 보니 이렇게 존재하게 된 거야! 내가 만일 부유한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면, 아니, 적어도 그들로부터 사랑이라도 듬뿍 받으며 성장했다면 이런 인생은 살지 않았을 거야! 찢어지게 가난한 집구석에서 태어나 허리띠 하나 물려받은 게 없었어. 그리고 부모라는 사람들 허구한 날 서로의 얼굴에 침을 뱉고 서로를 죽이겠다고 싸우는, 그런 거지 같은 집구석이었단 말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악착같이 살아보려고 했어. 미국에 와서 열심히 일하고 사람들이  이용하고 사기를 치는 것을 알아그저 묵묵히 참고 인내한 적도 많았어! 나는 그들을 용서하려고 애를 무진장 쓰면서 기도도 많이 했어! 예수가 죄인을 용서하듯이 나에게도 그 용서하는 마음을 달라고 진심으로 기도한 적도 있었어! 신이 있다면 내가 지금 하는 이 말이 거짓이 아니란 걸 알 거야. 자살을 하면 지옥을 간다는 교리도 언젠가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아. 하지만 어쩔 수가 없어! 왜냐면 이곳에서 나는 이미 지옥을 경험했기 때문이야. 신이 있다면 분명히 정상참작을 해줄 거야! (사이를 두었다가) 잔인하기만 한 너 시카고여! 너의 찬란한 외형도 결국은 너의 그 잔인함을 감추기 위한 교묘한 가면에 불과하지! 너의 그 가증스러움에 나는 치가 떨릴 뿐이다! 지금 나의 이 절규를 들어, 너 시카고여! 오늘 나는 이 지옥과도 같은 도시를 떠나 영원한 도시로 들어간다! 이 세상에 올 땐 내 의지  오지 않았지만, 이 세상을 떠날 땐  의지 대로 떠나는 것이라고!


김종식의 입을 떠난 소리의 파장이 요리조리 비 사이를 통과한 뒤 선지자 귀에 꽂혔다. 온몸에 퍼진 알코올로 인해 조지킴은 무아지경에 이르렀다. 그의 독백 대사에 감동했던지 선지자는 전속력으로 에게 달려왔다. 작별의 악수라도 하려는가. 김종식은 빗물에 흠뻑 젖은 속눈썹을 비벼대며 생각했다. 눈 깜짝할 사이 자신의 앞에 도착한 남자에게 김종식 오른손을 내밀었, 남자 역시 손을 내밀었다. 마주 잡은 두 사람의 손등 위로 악성 종기처럼 빗물이 터져나갔다. 온몸에서 기이한 악취를 풍기는 선지자는 칼빈주의 TULIP이나 다섯 가지 솔라 중 솔루스 크리스투스를 김종식에게 전하러 온 전령이 아니었다. 김종식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의 손을 감싸고 있는 손은 인간의 손이 아니었다. 뻣뻣한 털로 뒤덮이고 날카로운 발톱으로 무장된 괴물의 손이었다. 윌리스 타워 첨탑에 위력적인 낙뢰가 떨어졌다. 몇 시간 전 링컨파크 동물원에서 보았던 안내문이 김종식뇌리를 전광석화처럼 치고 지나갔다. 아... 짧은 탄식이 그 사이로 새어 나왔다. 거대한 회색 곰이 포효하며 두 발로 일어섰다. 공포심에 압도당한 김종식짝달싹 못하고 돔산의 소금기둥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는 순간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곰은 강력한 앞발로 김종식의 얼굴을 수차례 후려쳤다. 그리고 그의 목을 사정없이 무자비하게 물어뜯었다. 김종식의 얼굴과 목은 순식간에 너덜너덜해졌고, 그는 청난 양의 피를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이로써 김종식의 현세 탈출 계획은 마침내 완성되었다. 것은 해석하기에 따라 절반의 성공일 수도, 절반의 실패일 수도 있었다. 김종식 지나칠 정도로 부정적인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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