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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Jang Nov 04. 2024

시카고 모놀로그 (1/3)

1.

6a.m. 알람 시계가 요란하게 울렸다. 침대에 누워있던 상구는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더니 머리를 긁적거렸다. 거실 바닥에 놓인 매트리스에서 잠을 자던 준식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리며 몸부림을 쳤다. 용칠이 "시카고 조기 축구단" 글자가 새겨진 노란색 수건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화장실을 나왔다. 빨리들 일어나라, 이러다 또 늦는다, 아침도 먹어야 하잖아,라고 그는 큰소리로 말했다. 반쯤 눈이 감겨 있는 상구가 콧구멍을 후비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용칠은 준식이 덮고 있던 이불을 들추어내고 그의 엉덩이를 힘껏 발로 찼다. 준식은 짜증을 내며 그제야 마지못해 일어났다. 준식은 목 부위가 늘어난 색 반팔 라운드 티를 입은 채 용칠을 따라 부엌으로 들어갔다. 용칠이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낸 다음 식탁 위에 있는 식빵 옆에 놓았다. 준식은 우리가 무슨 덴마크 사람들도 아니고, 어떻게 맨날 우유하고 식빵이냐, 라면 같은 거라도 없어?라고 투덜거리며 우유 통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일주일 전에 산 라면 한 박스를 나흘도 안 돼 다 먹은 게 누구냐며 용칠이 쏘아붙였다. 준식은 헤헤 그런가,라고 한 다음 차가운 흰 우유를 들이켰다. 상구가 키친으로 들어와 얼굴에 남아있는 물기를 페이퍼 타월로 닦아냈다. 아니, 수건으로 잘 닦지, 꼭 부엌까지 와서 저런다니까. 용칠은 아침부터 시어머니처럼 잔소리를 요란스럽게 쏟아냈다. 상구는 피식하고 웃으며 알았다고 한 후, 그나저나 매일 같이 피곤해서 미치겠다, 비타민 B를 먹는데도 이러네,라고 말하며 종이컵에 우유를 따랐다. 너는 피곤하다면서 대체 뭘 하길래 매일같이 새벽 한 시가 넘도록 컴퓨터 앞에 앉아 있냐,라고 용칠이 말하자 의 입 속에 있던 식빵 부스러기가 튕겨 나왔다. 조만간 내가 이놈의 일 그만둔다, 이러다 정말 골로 가겠다,라고 준식이 허리를 주먹으로 두드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자 상구는 그들이 일하는 해피 엔터프라이즈 사장이 시간당 페이도 올려주고 휴가도 돌아가면서 준다고 하지 않았냐며 준식을 달래듯이 말했다. 시간당 페이를 올려주긴... 넌 순진하게도 그 말을 믿냐? 그 인간이 언제 그 약속했는지 알아? 육 개월 전이다, 육 개월, 이라며  준식이 투덜거렸다. 용칠이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출발하자며 시카고 컵스의 C 로고가 새겨진 파란색 야구모자를 썼다. 준식과 상구그를 따라 집을 나섰다. 준식이 차를 몰고 하이웨이를 부리나케 달리며 라디오를 켰다. U2의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준식은 보노의 보컬을 들으며 액셀을 더욱 세게 밟았다. 그가 창문을 내리자 호수 쪽으로부터 불어온 강한 바람에 그들의 머리카락을 일제히 위로 치솟았다. 웬일인지 94번 고속도로는 막히지 않았고, 그들은 해피 엔터프라이즈에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해피 엔터프라이즈의 면적은 시카고에 있는 수백 개의 뷰티 서플라이들 중에서 Top 3 안에 들 정도로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카운터에서 ㄱ자 형태로 꺾이는 벽에는 수많은 헤어 피스가 걸려 있었고, 여섯 개의 통로 선반에는 미용제품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진열대 안에는 값비싼 헤어 클리퍼와 금 목걸이 구비돼 있었다. 상구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니 뷰티 서플라이 특유의 화학제품 냄새가 훅 풍겼고, 사장 창고 옆 작은 사무실에서 커피를 들이켜고 있었다.  튀어나온 광대뼈가 도드라진  사장은 170센티미터의 키 해병대 출신이라 그런지(적어도 본인은 그렇게 주장했다) 오십 대임에도 다부진 체격을 자랑했.

“난 말이에요. 미시즈 히긴스. 하루라도 아침에 스타벅스를 안 마시면 입안에 가시가 돋쳐.”

 사장이 의자를 뒤로 젖히며 젓가락처럼 마른 미시즈 히긴스에게 말했다.

미시즈 히긴스는 사십 대 중반이었지만 머리가 하얘서 그런지 몰라도 환갑이 넘은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동두천 하우스에서 만난 미군과 결혼해서 이십 년 전 테네시 주에 있는 작은 시골 마을로 이민을 왔다. 알코올 중독자에 난폭한 성격이었던 남편은 걸핏하면 가녀린 미시즈 히긴스를 구타했다. 영어도 제대로 못하고, 아는 사람도 없었던 그녀그의 무자비한 폭력을 그저 감내해야만 했다. 그러던 중 토네이도가 마을을 덮친 어느 날, 그녀의 남편은 이젠 때리기도 지쳤다며 이혼을 선언한 뒤, 회오리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차라리  미시즈 히긴스에겐 석방이었고 방면이었다. 결국 그녀는 혈혈단신 중서부 최대 도시인 시카고로 이주했고, 한인 교회에서 알게 된  사장의 가게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 "난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면 속이 안 좋아서 못 마시겠더라고요." 미시즈 히긴스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난 고사장하고 골프 약속 때문에 지금 나간다.”  사장이 출입문 쪽으로 걸어가며 종업원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사장님, 아무 염려 마시고 오늘 내기 골프에서 꼭 승리하시길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오늘 아침과는 전혀 다른 톤 앤 매너로 준식 아부를 떨었다.

“자식... 암튼 가게 잘 봐라. 깜둥이들은 틈만 주면 물건 훔치려고 하니까 주의하고.” 사장이 커피를 한 손에 들고 스토어를 나섰다. 그가 주차장에서 있던 렉서스 문을 확 열어젖혔다. 그 순간 컵 뚜껑이 열리며 마그마같이 뜨거운 커피가 그의 손등 위로 왈칵 쏟아졌다. 쌍둥이를 낳는 산모 마냥 앙칼지게 두 번의 비명을 지르며  사장이 펄쩍 뛰었다. 상구는 그의 길길이 뛰는 모습을 보며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오전에는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거의 없다가 오후가 되자 한두 명씩 해피 엔터프라이즈를 찾았다. 그들 중 대부분은 값이 나가는 헤어피스나 가발이 아니라 주로 가격이 낮은 릴렉서 헤어젤을 찾았다. 1번과 2번 통로가 만나는 지점에서 흑인 엄마와 십 대 딸이 수상한 눈짓을 주고받았다. 용칠 오 분 전부터 이들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지난달 오십 불이 넘는 블론드 가발을 훔쳐 가는 흑인 남자를 잡아낸 적이 있었다.  사장은 용칠을 극찬하며 재패니스 레스토랑인 사쿠라에서 직원 회식까지 시켜주었다. 사장은 그날 술에 얼큰하게 취해 앞으로 가게에서 도둑을 잡은 날은 특별 보너스를 주겠다고 공약했고,  사장만큼 술에 취했던 용칠은 앞으로 99%의 절도 점거율을 보이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딸이 헤어스프레이를 집더니 엄마에게 토스했다. 엄마는 그것을 "Jesus is my boss" 프린트가 새겨진 그녀의 얇은 재킷 으로 쑤셔 넣었다. 이때를 놓칠라, 용칠의 찬란하게 부서진 영어가 허공을 때렸다. “How do you do maybe over there? (거기서 지금 뭣들 하는 거야?)”

용칠이 흑인 모녀를 향해 성난 진돗개처럼 다가갔다. “I see you my eye, I see you my eye! (내 눈으로 봤어, 내 눈으로 똑똑이 봤어!)” 용칠의 고함소리에 흑인 엄마의 얼굴이 더욱 검게 변했다. 그녀는 시큼한 냄새를 풍기며 용칠에게 무슨 소리를 하냐면서 사납게 맞받아쳤다. 용칠은 여인의 재킷을 손으로 가리키며 단호하게 대응했다.

“I saw you steal hair spray now before! (당신방금 전 헤어스프레이 훔치는 거 봤어!)”

“Don’t touch me!” 용칠이 그녀에게 손대자 흑인 여성은 성전인 자기 몸에 함부로 손대지 말라며 비명을 질렀다.

“I calling cop, I calling FBI.” 이에 질세라 용칠도 버럭 소리를 지르며 휴대폰을 꺼냈다. 그러자 안 되겠던지 흑인 여성이 헤어스프레이를 꺼내 바닥에 내동댕이 친 후 가게를 나갔다. “Son of a bitch!” 딸이 엄마를 따라나가며 걸쭉한 욕설을 내뱉었다.

“감히 어디서 저것들이…” 용칠은 콧구멍 벌름거리며 긴박하게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미시즈 히긴스는 즉각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보고 했다.  사장은 내기 골프를 치다 말고 용칠의 업적을 치하했고, 용칠은 불철주야로 감시를 한 결과였을 뿐입니다,라며 겸손을 떨었다. 카운터 뒤쪽에 걸 둥그런 벽시계가 문 닫는 시간인 8시를 가리켰다. 준식이 창고로 들어가 스위치를 내렸고 거대한 매장은 순식간에 컴컴해졌다. 용칠이중 삼중으로 가게 문이 제대로 닫혔는지 확인을 한 다음 차에 올랐다. 케미컬 냄새로부터 해방된 세 사람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시카고 중부 마트에 들러 고기와 야채 그리고 달걀과 주전부리 등을 잔뜩 샀다. 허기가 진 세 사람은 아파트에 들어서자마자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오늘의 저녁 메뉴는 삼겹살이었다. 상구가 프라이팬에 놓인 삼겹살을 나무젓가락으로 뒤집었다.

“오랜만에 뱃속에 고기가 들어가는구나.” 준식이 노릇 하게 익어가는 고기를 보며 군침을 흘렸다.

이게 다 자신의 활약 덕분이 아니겠냐며 용칠이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암튼 대단해 정용칠. 도둑놈 눈엔 도둑놈만 보인다고, 가게에서 슬쩍 돈 삥땅 치는 놈이." 준식이 혀를 끌끌 차며 용칠을 바라봤다. 그러자 용칠은 역사는 자신의 성과와 자신의 과오를 냉정하고 공정하게 판단할 것이라고 뻔뻔하게 말했다.  

상구가 익은 고기를 접시에 놓기 무섭게 용칠과 준식은 젓가락을 부딪혀가며 삼겹살을 집어먹었다. 책상 위에 놓 상구의 휴대폰이 요란스럽게 진동을 했다. 상구는 젓가락을 놓고 전화기를 집었다. 한때 상구와 세탁소에서 함께 일했던 토마스였다. “전화를 한 번 한다 하면서도.. 형님 잘 지내시죠?” 상구 의도적으로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몇 분 동안 토마스의 말을 듣던 상구는 이번 주말쯤에 한 번 들리겠다고 말한 다음 통화를 마쳤다. 휴대폰을 여전히 손에 쥔 채 상구는 한숨을 내쉬었다.

“토마스 형 아직도 술에 찌들어 사냐?” 준식이 상추의 물기를 털며 물었다.

"뭐 그런 것 같다. 형수랑 딸이 사라지고 상심이 클 테니까. 그런데 술을 너무 마셔서 걱정이 되기는 ." 상구는 말하고는 젓가락으로 햇밥을 먹었다.

“알코올 중독자인데 술 끊기가 쉽겠냐? 지금 그 형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완전히 질서가 무너진 것 같아.  누군가의 도움을 빨리 받아야 할 텐데, 큰일 나기 전에 말이다.” 용칠이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준배가 토마스 형 잘릴 때까지 식당에서 같이 일했잖아. 얼마 전에 준배를 만났을 때 들었는데, 토마스 형, 아내하고 딸이 없어진 후완전히 맛이 갔다고 하더구먼. 식당에 총을 가지고 온 적도 있었대. 그래서 결국엔 잘리게 된 거고. 착한 사람이었는데 어쩌다가 그 지경이. 상구 네가 경제적으로 힘들었을 때 그 형이 도움도 주고 그랬다고 했잖아.” 준식이 상구를 힐끗 보며 말했고, 상구는 굳은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용칠이 음식물이 널려 있는 저녁상을 치웠준식은 옆으로  채 이쑤시개로 치아 사이를 쑤셨다. 트림을 크게 한 다음 준식이 미숙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숙은 그의 여자친구였는데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 다니는 유학생이었다. 준식은 리글리빌에 있는 한 클럽에서 우연히 그녀를 만났다. 준식은 시카고 대학에서 MBA를 전공하는 학원생 행세를 했는데, 그의 너무나도 뻔한 거짓말을 그녀는 순진하게도 믿고 있었다. 준식이 그녀와 통화한 다음 며칠 전에 산 회색 폴로셔츠와 리바이스진을 꺼내 입었다. 용칠 늦은 저녁에도 나갈 채비를 하는 준식에게 혼자만 재미 보고 다닐 거냐며 투덜거렸다. 용칠은 지난 오 년간 여자 구경을 못 해본 자신을 이렇게 방치하다간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는 공갈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알았다 자식아, 다음 주까지 성형수술이나 해놔라.” 준식이 말한 다음 날랜 제비처럼 집을 미끄러져 나갔다. 준식이 닫고 나간 문을 멍하니 바라보는 용칠에게 상구가 말했다. “뭘 그렇게 보냐. 우리 바람이나 쐬자.” 용칠과 상구가 발코니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초가을의 시원한 바람이 그들의 얼굴을 스쳤다. 영롱하게 빛나는 도심지의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들어왔다. “저놈의 시어스 타워는 어딜 가든 보이는 구만, 시커먼 거시기 같이 생긴 게 벌떡 솟아있네.”

용칠은 웅장한 시어스 타워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상구가 피식 웃으며 곱실거리는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넘겼다.

“무슨 놈의 삶이 맨날 똑같은 지 모르겠다. 일하고 집에 오면 한국 드라마 보고 술 먹고 그러다가 다음 날 또 일 나가고…" 용칠이 말한 다음 카멜을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너만 그렇게 사는 거 아니잖아. 여기 사는 한국 사람들 삶이 다 그렇지 뭐.” 상구가 용칠의 입술에 걸린 담배를 빼앗아 피웠다.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이런 인생에서 뭔가 좀 끝내주는 일이 없을까. 준식이 녀석은 그나마 만날 여자라도 있지.” 용칠은 준식에게 서운한 감정이 남아 있는 듯 푸념을 늘어놓았다.

“쓸데없는 신세 한탄하고 쿠어스 라이트나 시원하게 한 잔 자.” 상구는 말한 다음 담배꽁초를 시어스 타워를 향해 튕겨버렸다. 준식은 새벽 두 시가 넘어 아파트 문을 빼꼼 열고 들어섰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도 그는 익숙하게 자신의 매트리스를 찾아 누웠다. 준식이 매트리스에 누운 채로 옷을 벗고 있는데, 그의 귀로 화장실에서 통화를 하고 있는 용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내가 돈 벌어서 수술시켜 줄 테니까... 아프더라도 좀 만 참아. 난 잘 지내니까 내 걱정은 조금도 할 필요가 없어. 여기 미국이잖아. 내가 일하는 가게 사장님이 내가 일도 잘하고 도둑도 잘 잡는다고 매니저로 승진도 시켜주고 영주권도 해준다고 했어. 그러니까 누가 아들 뭐 하냐고 물으면 미국에서 아주 잘 나가는 사업가라고 해. 일 잘 풀리면 엄마랑 민정이도 내가 초청할 테니까 우리 식구 모두 여기 시카고에서 정말로 행복하게 살자고. 아 참 민정이는 식당 일 잘하고? 그래, 걔랑 나랑 엄마를 닮아서 그런지 아주 성실하잖아.”

용칠의 통화 내용을 듣던 준식의 망막 속으로 칠흑 같은 어두움이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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