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조지킴이 재킷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은 다음 라이터를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맞은편에서 다리를 약간 절뚝이며 걸어오던 멕시칸 남자에게 불을 빌렸다. 조지킴으로부터 라이터를 돌려받은 남자는 가던 길을 계속해서 걸어갔는데, 조지킴이 다시 그를 보니 그는 더 이상 다리를 절뚝거리지 않았다. “Jong Ro Room Salon” 붉은 네온사인이 조지킴의 입술 위로 립스틱처럼 번지며 반짝거렸다.
그가 종로 안으로 발을 들여놓기가 무섭게 한 여인이 인사를 하며 그를 맞았다. 사십 대 한국여자인 그녀는 검은색 블라우스에 진주 목걸이를 하고 있었는데 조지킴이 처음 보는 여자였다. "몇 분이시죠?" 그녀가 문신한 눈썹을 추켜올리며 물었다. "저 혼자..." 조지킴이 겸연쩍은 듯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잠시 뜸을 들이다가 구석에 있는 룸 11로 그를 안내했다. 조지킴이 모니카가 출근했느냐고 묻자 여인은 십 분 정도 있으면 오는데요,라며 왠지 모르게 경계의 눈초리로 그를 쳐다봤다. 조지킴은 모니카가 출근하면 자기 룸으로 넣어달라며 이십 불짜리 지폐 두장을 여인에게 건넸고, 그녀는 그제야 뜨악한 시선을 풀며 알았다고 말했다. 룸 11은 혼자 오는 손님들을 위한 전용룸이었던지라 방 사이즈가 작았고, 주황색 소파와 탁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모니카는 정확히 십오 분이 지나자 조지킴의 방으로 들어왔다. 짙은 색 코트 속으로 몸에 착 달라붙은 연보라색 원피스를 입어서 인지 모니카의 몸매는 더욱 육감적으로 도드라져 보였다. 그녀의 파란 눈동자는 시카고강보다 푸르렀고 미시간호수보다도 깊었다. 그녀는 시카고에서 산 지는 삼 년째 접어들었고, 룸살롱에서 일한 지는 일 년이 되었다. 그녀는 일하면서 서너 차례 조지킴을 접대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조지킴이 실제 나이인 삼십 세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이고 키도 작았지만, 그를 귀엽고 재치 있는 아시안 남자로 긍정적으로 인식했다. 사실 조지킴도 자신에 대한 모니카의 이러한 평가에 대해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는 자살을 하기 전 용기를 내어 모니카를 찾아온 것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조지킴이 주문한 코냑을 홀짝 거리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모니카는 일본 음식을 가장 좋아하고, (한국 사람이 주인인 사쿠라 재패니스 레스토랑을 가끔 간다고 했다.) 영국 록밴드인 라디오헤드의 음악을 즐겨 듣고, 좋아하는 작가는 누가 러시안 아니랄까 봐 톨스토이라고 했고, 브래드피트가 그녀의 가장 좋아하는 배우였는데, 브래드피트의 영화 중 최고는 누가 뭐래도 "가을의 전설"이라고 그녀는 강조했다. 그들은 미국과 러시아 관계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눴는데, 모니카는 러시아가 알래스카를 미국에 헐값에 판 것이야말로 가장 멍청한 실수라고 말했다. 그러자 조지킴은 시베리아를 팔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고 농담을 던졌다. 모니카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또다시 술잔을 내밀었다. 그는 모니카의 얼굴을 힐끔거리며 그녀의 술잔에 헤네시를 따라주었고, 그녀는 이번에도 단숨에 양주잔을 비웠다. 조지킴은 그녀의 눈동자가 서서히 초점을 잃어가는 것을 목도했다. 조지킴은 이때가 기회다 싶어 모니카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특히 모니카의 외모와 동시에 그녀가 갖고 있는 의외의 지적인 이미지에 관해 그는 극찬을 하면서, 자신이 한때 서울에서 연예인 기획사를 경영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만난 어떤 연예인 지망생보다도 모니카가 예쁘다고 허풍을 늘어놓았다. 모니카는 조지킴의 이러한 거짓이 섞인 아부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던지 얼굴을 붉히며 고맙다고 말하고는 가느다란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녀의 눈빛이 내뿜는 찰나의 성적인 어필을 동물적인 본능으로 감지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조지킴으로선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는 모니카의 허리를 와락 끌어당겼다. 그러자 그녀의 입에서 아, 하고 짧은 신음소리가 튀어나왔다. 조지킴이 재킷 안주머니에서 장지갑을 꺼내 탁자 위에 놓았는데, 두툼한 그 모양은 누가 보아도 많은 현찰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지킴은 자본주의에 물든 러시아 여인의 물질욕을 자신의 성욕과 비등한 것으로 여기며 그녀의 가슴을 격정적으로 어루만졌다. 그의 바람과 기대대로 모니카는 그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고, 거칠어진 숨소리를 상체와 하체를 넘나드는 그의 현란한 손놀림에 맞추어 내쉬었다. 조지킴이 그녀의 귀에 입술을 바싹 대고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일 언제 끝나지?"
"당신이 원한다면 지금 나갈 수도 있어. 대신 돈이 좀 들어." 그녀는 그가 허벅지를 만지자 허리를 비틀며 말했다.
조지킴은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었기에 그녀에게 돈 걱정은 하지 말라고, 어떤 비용이던지 가게로 계좌이체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룸 11을 나왔고, 모니카는 카운터에 서 있던 한국여자에게 뭐라고 말한 후, 조지킴과 함께 종로를 나왔다. 때 마침 그들 앞으로 노란 택시 한 대가 지나갔다. 모니카가 잽싸게 어빙 파크!라고 소리치자 택시가 급정거를 했다. 조지킴은 그녀를 따라 택시에 탑승을 했다. 모니카는 어빙 파크에 있는 라벤더향이 은은하게 배인 작은 원베드룸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누추하게 보이지만 그래도 한 달 렌트비가 팔백 불이나 된다며 모니카는 코트를 벗으며 말했다. 조지킴은 벽 쪽에 있는 소파에 슬그머니 엉덩이를 내린 다음 외투를 벗었다. 그녀가 칠레산 레드 와인과 와인잔 두 개를 가지고 소파로 왔다. "Cheers, " 모니카가 잔을 들며 말했다. 조지킴이 와인잔을 부딪혔다. 시뻘건 포도주로 목을 적신 모니카는 일어나 창가 쪽으로 가더니 그곳에 설치되어 있는 오디오 플레이어의 버튼을 눌렀다. 선정적인 굴곡을 가진 그녀의 육체 뒤로 펼쳐져 있는 직선과 곡선의 조화로 이루어진 도심지의 빌딩 불빛들이 조지킴의 눈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조지킴은 와인잔을 탁자에 내려놓고 모니카에게 다가간 후, 그녀를 뒤에서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빌리 홀리데이의 "I'm A Fool To Want You"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조지킴이 그녀의 황금빛 머리카락에 입을 맞추자 그녀는 고개를 돌려 그의 입속으로 그녀의 혀를 집어넣었다. 그는 그녀의 브래지어를 내린 다음 팔딱거리는 유방과 단단해진 유두를 혀로 핥았다. 그녀의 원피스가 아래로 툭 하고 떨어졌고, 모니카는 손을 뒤로 해서 거추장스러운 브래지어를 풀어버렸다. 몸이 닳을 때로 달구어진 조지킴은 마저 남은 그녀의 팬티를 벗긴 다음 자신의 팬티도 급하게 벗어 버렸다. 그는 이 순간이 눈앞에서 꿈처럼 사라질세라 다급하게 그녀의 몸 안으로 들어갔다. 다음날 아침, 조지킴이 눈을 떴을 때는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차가운 겨울비로 인해 거리는 촉촉이 젖은 상태였다. 방바닥에 어지럽게 널린 옷가지들은 지난밤 그들의 성행위가 얼마나 격렬한 것이었는지를 가늠케 했다. 조지킴은 흐뭇한 얼굴로 옆에 누워있는 모니카를 보더니 날숨을 콧구멍으로 내쉬었다. 모니카는 기지개를 켜며 굿모닝, 이라고 그에게 인사한 다음 침대를 벗어났다. 실오라기 하나 없이 알몸인 그녀는 명암으로 인해 환하게 빛이 났고, 냉장고에서 에비앙을 꺼내 들이키는 그녀의 모습은 흡사 광고의 한 장면과도 같이 몽환적이었다. 저토록 환상적으로 생긴 백인 여자와 이 작고 못난 죄인에 불과한 아시안 남자인 내가 진정 섹스를 했단 말인가. 조지킴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모니카의 알몸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예술 작품을 바라보듯 바라보았다. 모니카 역시 거의 기절할 정도로 자신에게 강렬한 오르가슴을 선사한 저 동양 남자를 겉모습만으로 판단하는 건 옳지 않아,라고 생각하며 깊숙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침대로 돌아와 조지킴의 옆에 다시 누웠다. 그는 그녀에게 팔베개를 해주었고, 두 사람은 마치 오래된 연인처럼 입맞춤을 나누었다.
"오늘도 일하는 건가?" 조지킴이 그녀에게 물었다.
"응, 오늘은 여섯 시까지 나가야 해." 모니카가 대답한 후 모로 누웠다.
조지킴은 그녀에게 출근하지 말고 함께 있어 달라고 간청하며 일당의 세배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녀는 잠시 골똘하게 생각한 후 종로에 전화를 하겠다고 했다. "그 대신 같이 가보고 싶은 데가 있어." 모니카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어디를 가고 싶은 건데?" 그녀의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조지킴이 물었다.
"동물원에 가보고 싶어. 오늘 동물원에 놀러 가자." 모니카는 사춘기 소녀처럼 수줍게 말했다.
왜 하필이면 동물원이냐고 조지킴이 묻자 그녀는 어릴 적 러시아에서 살 때 온 가족이 동물원에 놀러 갔던 적이 있었는데, 그날이 그녀의 생애 중 가장 행복했던 날이었다고 대답했다. 링컨파크 동물원에 가보면 되겠다,라고 말한 후 조지킴은 그녀의 목에 입을 맞췄다. 모니카가 깔깔 웃으며 즐거워했다. 또 하고 싶어? 라며 모니카는 그의 가슴을 손끝으로 살살 쓰다듬었고, 조지킴은 끄응, 하는 짧은 신음소리를 대답대신 토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