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인(ALL IN).
이 말은 그 시절 홍콩 영화에서 처음 알게 된거 같다. 당연히 장르는 거친 사내들의 낭만과 로맨스가 넘치는 르와르였고, 아직도 기억에 남는 명장면은 여럿 있다.
더 크게, 더 과감하게,
전부를 걸어라.
라스베이거스의 수많은 광고 중, 유독 이 카피가 걸음을 멈추게 하고, 출장 기간 내내 신경이 많이 쓰였다. 처음엔 화려한 카지노 배경의 도박꾼들이 나오는 그저 그런 영화의 대사로 보였다.
그런데, 곱씹을수록 ‘올인’은 내게 사뭇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더 세게 밀어붙이라는 말로 들리지 않았다.
불필요한 것들을 정리하라는 신호를 주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너무 많은 것에 반응하며 살아 왔다. 지금 이순간에도 우리는 그렇게 힘들여 살아 간다.
버티고 지켜내기 버겁다.
분명한건,
이 버거움의 원인이 나의 에너지가 부족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문제는 이 에너지를 너무 많은 곳에 여기저기에 뿌리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불편을 넘어 피로가 쌓인다.
니체는 말했다.
“결단력 없는 자유는 결국 피로를 낳는다.”
또 노자는 말한다.
“쫓아가면 잃고, 비우면 얻는다.”
맞다.
바보같이 ‘적당히 여러 개’를 붙잡느라,
정작 어느 것 하나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결단이 필요하다.
‘올인’은 낭만적일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불편한 사실(이유)가 있다.
올인-전부를 걸어 버리는 순간,
빠져나갈 핑계가 사라지고,
도망칠 여지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은 적당히 남겨둔다. 보험처럼, 변명처럼. 또는 미련 뒤에.
문제는,
그렇게 조금씩 남겨둔 것들 때문에
우리의 갈망은 반복된다.
항상 처음부터 싹 다 다시 시작하고 싶다?
뭔가 리셋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묵은 때와 찌거기를 배출하고 싶을 때도 점점 많아진다?
나다움을 방해하고 저항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는 꿈꾸고 있다?
당신도 그렇다면,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더 얻기 위한 ‘전부를 걸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더 비우기 위한 ‘전부를 버려야 하는’ 것인지.
후자다.
지금 쥐고 있는 것 중, ‘무엇에, 왜, 전부를 버려야 하는가?’냐고 질문을 바꿔야 한다.
그렇게 올인이 만들어 낸 비워진 공간에서 흩어진 에너지를 하나로 모으고,
내가 정말 써야 할 곳에서 요구하는 ‘결단’의 힘으로 써야 하는 것.
올인은 그렇게,
비로소 나에게 해방으로 작동한다.
혹시,
지금이 모든 걸 비울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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