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돈의 싸움, 노동자는 버텨야만 한다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이 행정소송으로 이어진다

by 기록하는노동자
슬프고도 현실적인 이야기

'부당노동행위, 인정률 15.8%'에서도 간략히 다뤘지만,
이번에는 실제로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부터 행정소송까지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재미없는 이야기다. 그리고 슬픈 현실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 싸움을 기록해야 한다.

주소 하나로 달라지는 관할과 시작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은 노동위원회에 하게 돼 있다.
우리 노동조합은 처음 여의도 본사를 주소지로 등록했지만,
회사는 그 주소를 쓰지 말라고 통보해왔다.

결국 부득이하게 수석부위원장 자택으로 주소를 변경했고,
고유번호증을 받기 위해 무상임대차계약서도 제출해야 했다.
사실 이 자체도 법의 보호가 필요하다.
노조가 사무실이 없더라도, 본사 주소를 쓸 수 있는 최소한의 길은 열려 있어야 한다.

그렇게 소재지가 인천으로 정해지면서
우리의 구제신청은 인천지방노동위원회에서 초심을 맡게 됐다.

증거를 내면, 불이익은 노동조합 몫

구제신청을 하면, 노동조합이 이유서를 먼저 낸다.
회사는 답변서를 내고, 우리는 다시 반박 이유서를 낸다.
이렇게 2~4차례 서면 공방이 오가는 동안
노동위원회가 직접 조사에 나오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회사 측 부당노동행위의 증거를 노조가 직접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는 이를 빌미로 “자료 유출”이라며
노조 내부를 색출하고 징계 근거로 삼기도 한다.

법상 노동위원회 제출자료로 불이익을 주어선 안 된다고 되어 있지만,
실제 다툼 과정에서 그 원칙은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법은 존재하지만, 보호하지 못하는 지점이 분명히 있다.

현장조사부터 심문까지, 긴장과 불균형의 시간

우리 노조는 계양구청 인근의 공유오피스를 임시 사무실로 사용했다.
그곳에 노동위원회 조사관이 방문해 조사를 진행했다.
질문은 많았고, 조사관은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그 과정 하나하나가, 노동조합 입장에서는 간절한 설득의 시간이었다.

심판기일은 예정일보다 늦춰져 2023년 2월 14일로 잡혔다.
당시 회사는 나눔로또 수탁사업 종료 후 입찰 준비 중이었고,
우리는 입찰이 방해되지 않도록 일정 조정까지 요청했다.
그 배려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참 씁쓸했다.

결과 통보, 인정은 단 2건

심판 당일, 공익위원 3인과 근로자·사용자위원이 나란히 앉아
서로의 주장을 듣고 질문을 던진다.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은 각 입장을 대변하며
때로는 엉뚱한 질문이나 훈계성 발언이 나오기도 한다.

그날 저녁, 문자로 통보된 결과는
우리가 제기한 7가지 부당노동행위 중 단 2건만이 인정됐다.
증거를 낼 수 없는 노조, 구조적으로 불리한 싸움이었다.

더구나 사용자측 대표는 업무 시간 중 참석할 수 있지만,
노동조합 위원장이나 간부는 개인 연차를 써야 참석할 수 있다.
같은 사안을 두고 싸우는데, 출발선부터 다르다.

중앙노동위원회, 그리고 행정소송의 벽

중앙노동위원회도 형식은 같지만
세종청사에서 열리고, 보다 전문성이 있는 위원들이 배석한다.
결과는 초심과 같았고, 우리는 인정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 항소했다.
회사는 자신들에 불리한 판정에 대해 항소했다.

여기서 예상치 못한 새로운 절차적 문제를 마주했다.
노동위원회는 한 자리에서 통합 심문했지만,
행정법원은 각각의 항소를 별개의 재판부에 배당한다.

결국 변호사 선임도 각각 필요하다.
우리는 노동위원회 심판에 노무사도 2회 선임했고, 비용 부담이 컸다.
행정법원부터는 승소해야 비용이 환수되고

패소하면 상대방 변호사 비용까지 부담해야 한다.

돈이 많은 쪽이 유리한 게임이라는 말, 그저 감정이 아니다.

구조적으로 노동자에게 불리한 법의 현실

노무사 선임비는 저소득층에 한해 일부 지원이 가능하지만

변호사 비용은 요청할 곳조차 없다.

결국 법의 심판은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신생노조가 회사의 흔들기에 쉽게 무너지고,

초대 위원장은 모든 책임을 홀로 짊어진 채 끝내 소진되는 일이 반복된다.

행정법원 이후, 시간은 더 길어진다

행정법원에 가면 준비서면을 주고받고
공판은 짧게는 2~3분, 많게는 10분 간격으로 돌아간다.
실제 공방은 문서로 이뤄지며, 판사는 그 문서를 통해 판단한다.

2025년 1월, 우리는 일부 사건에서 승소했다.
그러나 회사는 망설임 없이 고등법원에 항소했다.
아직 첫 기일도 잡히지 않았다.

중노위 결정부터 지금까지 1년 8개월,
행정법원 판결까지 오는데 그만큼 걸렸다.
앞으로 고등법원, 대법원까지 간다면
노조의 한 건의 권리 구제는 최소 3년 이상 걸릴 수도 있다.

기업에겐 ‘비용’, 노조에겐 ‘생존’이다

행정법원까지가 사실상 부당노동행위 사건의 3심 구조다.
회사에게는 소송이 ‘비용’일 수 있지만 노동조합에겐 매번이 ‘존립의 위기’다.
단 한 번만 져도, 결속이 흔들리고 조직이 약화된다.

시간을 끌면, 세상은 잊는다.
그걸 노리는 기업도 있다.
그러니 법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목소리를 낼 차례다

나는 지금 쓰고 있는 '출근대신 기록합니다. 乙의 일지'를 30화로 마무리하고 나면

이런 법적 구조에 대한 문제를 공론화해보려 한다.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에서 시작해 노조가 감당해야 할 비용, 시간, 감정, 구조의 모순까지

누군가는 말해야 하고, 누군가는 바꿔야 한다.

노동자들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오기를 바라며 목소리를 내보려 한다.

인천지방노동위원회.jpg 인천지방노동위원회 모습


이 글은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질 노동조합의 싸움에 대한 기록입니다.
공정한 사회를 위한 모든 목소리와 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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