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된 노동조합 위원장은 어떻게 버텼는가

노조설립 1년을 기념하고 해고됐다

by 기록하는노동자
1주년 기념 영상과 해고 통보

2023년 9월 5일, 노동조합 설립 1주년을 기념하는 영상을 유튜브 채널에 게재했다.
9월 7일 오후 5시 30분, 회사가 지정한 부천 복사골문화센터에서 10번째 본교섭이 열렸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9월 8일, 회사는 인사위원회 의결 결과라며 해고통지서를 내밀었다.

노동조합 설립 1년을 기념하고 해고당했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회사의 직원이 아니었다.

위원장은 해고당해도 노동조합은 남는다

해고를 당한 그날의 감정, 그리고 그 이후의 싸움에 대해서는 이미 이전 글들에서 이야기했다.
이번 글에서는 ‘해고된 노동조합 위원장’이 어떻게 노동조합을 이끌며 버텨내는지
실무적인 측면을 중심으로 써보려 한다.

요즘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해고된 노조 간부들
세종호텔 고진수 지부장,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박정혜 수석부지회장, 신성자동차 김원우 지회장
그리고 유진기업 노동조합 홍성재 위원장.
다 다른 이름이지만, 본질은 같다. ‘해고된 노조 간부’다.

노조가 존재하던 중 해고된 경우도 있고,
나는 노조를 만들었기 때문에 해고된 경우다.
해고 사유는 다르지만, 싸움은 모두 질기고 고단하다.

그래도 노동조합이 남아있기에 다들 맨 앞에 서서 모진 비바람을 버텨내고 있다.

감정 관리가 첫 번째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감정을 잘 챙기는 것이다.
속은 썩어문드러지고 열불이 나도, 담담한 얼굴로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억울함에 주저앉는다고 누가 도와주지는 않는다.

나는 매일 1시간씩 러닝머신을 뛰며 잡생각을 떨쳐냈고,
잠을 잘 자기 위해 노력했다.
감정을 관리하니 비로소 보이는 게 있었다.

연대의 끈을 놓지 않는다

연대가 필요했다.
조합원들과의 유대를 위해 전국 사업장을 돌았다.
출입이 막히면 공장 앞에서 간식과 입장문을 나눠줬고,
상급단체인 화학연맹, 언론, 정치권, 시민사회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문제는 해고 사유였다.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회사의 프레임은 연대의 장벽이었다.
경험 없는 외부는 쉽게 판단할 수 없고,
"혹시 진짜 그런 게 있던 건 아닐까"라는 의심을 갖는다.

그 벽을 넘기 위해선 끊임없는 소통과 진실한 공유가 필요했다.
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인정, 중앙노동위의 재확인,
그리고 법원의 판결이 나올 때 비로소 연대는 확장되기 시작했다.
심판문과 판결문이 우리의 정당성을 증명해주기 때문이다.

노무법인, 법무법인과의 협업도 매우 중요하다.
증거를 정리하고, 사건의 맥락을 조리 있게 설명해야
그들도 자신 있게 나의 억울함을 대변할 수 있다.

자본과 시간의 싸움에서 버티기

다음은 경제적 안정을 확보하는 일이다.
해고 투쟁은 자본과 시간의 싸움이다.

노동조합이 나의 생계를 책임져주고 있지만,
부담을 덜고자 실업급여 신청도 해보았다.
그러나 서울지노위의 판정 전까지는 가승인만 가능했고,
수급은 그 이후부터 가능했다.

중요한 건 기한 내 가승인을 꼭 받아놓는 것이다.

노조의 한정된 재정 여건을 고려해 생계 지원이 어려울 경우를 늘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2년 가까이 지나며 노조 재정도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대안을 찾기 위해 콘텐츠 제작, 굿즈 판매, 외부 후원 등 다양한 시도를 모색하고 있고,
화학연맹도 모금 등 지원 방법을 찾고 있다.

법적 싸움은 비용이 많이 든다.
회사 측이 항소 한 번 할 때마다 법률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설립 1년 만에 위원장이 해고된 노동조합이 이 모든 걸 감당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지금껏 연대를 쌓아온 덕에 버티고 있다.

우리는 ‘싸우는 지도’가 되고 있다

회사는 점점 궁지에 몰려가고 있지만,
여전히 자본과 시간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건 회사다.
그래서 싸움은 길어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버틴다. 그리고 우리 노동조합은 잘 버텨내고 있다.
기록하고, 연결하고, 설득하고, 설계하고, 싸우고 있다.

노동조합의 기록은 언젠가 새롭게 조직될 노조에게 ‘이정표’가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이 기록도, 그 믿음을 담아 남기는 것이다.

KakaoTalk_20250727_222207412.jpg 회사가 주장한 해고 사유들은 노동위원회, 행정법원 등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글은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질 노동조합의 싸움에 대한 기록입니다. 공정한 사회를 위한 모든 목소리와 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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