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는 거부당했고, 법이 답했다

2024년 5월 2일 - 대화로 풀고 싶었지만, 회사는 끝내 귀를 막았다

by 기록하는노동자

※매주 목요일 발행되는 '버티는 중입니다 위원장의 비밀일기' 과거 사건에 대한 회상일기입니다.


2024년 5월 2일
회사는 결국 고용노동부로부터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대한 시정지시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대화로 풀자고 수차례 공문을 보냈지만, 회사는 끝내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단 한 통의 메일로 휴가의 성격과 사용방식을 바꾼 회사.
그로 인해 벌어진 침묵과 무시는, 오늘 도착한 고용노동부의 공문 한 장으로 바뀌었습니다.
노동조합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 그 하나는 바로 이런 부당한 취업규칙 변경을 감시하고 권리를 지켜내는 일입니다.


‘시정지시’라는 말의 무게

2024년 5월 2일, 드디어 기다리던 공문이 도착했다.

고용노동부 서울남부지청에서 날아온 종이 한 장.

그 안엔 “근로기준법 제94조 위반,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시정 지시”라는 문장이 담겨 있었다.

이 문제는 처음부터 대화로 풀고 싶었다.

하지만 회사는 우리의 네 차례 공문에도 단 한 번도 마음을 열지 않았다.

결국 행정지도가 아닌 법 위반에 대한 ‘시정 명령’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옳았다고.

시작은 아주 오래전이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 사건은 2019년으로 이어진다.

회사는 그해부터 공장 근무자에게 ‘사업장 유급휴가’ 5일을 부여하고 이를 취업규칙에 명시했다.

우리는 이 휴가가 본사 직원들이 5년에 한 번씩 받는 10일짜리 장기휴가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라 여겼다.

공장은 14일 연속 비울 수 없기에, 대신 매년 5일씩 추가로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 휴가는 연차처럼 자유롭게 사용되었다.

근태시스템에도 연차와 함께 반영됐고, 연차 미사용 수당 정산 때는 사업장 휴가가 먼저 차감되기도 했다.

‘취업규칙에는 없는 본사의 휴가’를 보상받는 방식이었던 셈이다.

우리는 불만이 없었다. 아니, 최소한 불만을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문제는, 갑자기 찾아왔다

2024년 1월 8일.

회사는 돌연 메일 한 통으로 '사업장 휴가 분리 운영'을 공지했다.

이제부터 사업장 휴가는 공장장이 판단해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

날씨나 물량에 따라 단축 근무가 발생하면, 그때 휴가를 쓰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정작 이건 취업규칙에 있는 내용과 전혀 달랐다.

취업규칙은 여전히 “매년 5일의 유급휴가를 부여한다”고 되어 있었고,

그 휴가는 오랫동안 연차처럼 개인 사정에 따라 사용되어 왔다.

메일 한 통으로 바뀌어선 안 되는 것이 바뀐 것이다.

우리는 대화를 원했다

우리는 1~2월 사이, 무려 네 번이나 회사에 공문을 보냈다.

대화로 풀자고. 법 위반인지 아닌지를 떠나, 근로자 입장에서 혼란스럽다고.

하지만 회사는 네 번 모두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들의 주장은 간단했다.

“사업장 휴가는 원래 공장 단축근무용이었고, 공장장 재량이 맞다.”

“우리는 법과 원칙을 따랐을 뿐이다.”

우리는 더는 설득할 수 없었다.

그래서 3월 19일, 고용노동부에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진정을 제출했다.

우리가 내민 것은 기억과 기록

회사는 자신만만했다.

법적 검토를 마쳤다고 했고, 자신들은 문제없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우리도 알고 있었다.

우리는 단순한 주장만 내세운 게 아니었다.

우리에겐 근태 시스템의 변화 기록, 복리후생 안내 공지, 2019년 도입 당시 사내 메일까지 다 있었다.

그 안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사업장 휴가는 개인 사정에 따라 연차처럼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옳았다는 답이 왔다

2024년 5월 2일.

고용노동부는 명확히 판단했다.

사업장 휴가는 과거부터 연차처럼 개인 사정에 따라 사용되어 왔다.

회사가 메일을 통해 사용방식을 공장장 재량으로 바꾼 것은

취업규칙 제44조의 근로조건을 불이익하게 변경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 노동조합 혹은 근로자 과반동의 없이 시행한 것은 명백한 법 위반이다.

우리가 법을 몰라서 싸운 게 아니다.

우리가 괜히 시비를 걸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법대로 하자고 했을 뿐이었다.

아쉽고, 서럽고, 그래도 우리는 버틴다

이 문제는 대화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다.

회사가 연차 수당 부담을 줄이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우리는 일부 양보하고, 절차대로만 해달라고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일방적으로 바꿨고,

우리는 공문 말고는 말할 수단이 없었다.

시정기한은 5월 24일.

그날까지 회사가 바꾸지 않으면, 다시 진정하고

또다시 근로감독 요청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 싸움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도 기록한다.

당연했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는 게

이렇게 외롭고, 또 서러운 일이었다는 것을.

그래도 우리는 버텼고, 결국 맞섰고, 그래서 이겼다.

그걸 알기에, 오늘도 버틴다.

우리는 노동조합이니까.

고용노동부 공문.jpg


이 기록은 단지 나의 하루가 아니라, 수많은 노동자의 하루입니다.

























keyword
이전 15화작지만 큰 사무실, 1,012일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