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2024년 4월 22일 - 처음 방송시위를 한 날

by 기록하는노동자

※매주 목요일 발행되는 '버티는 중입니다 위원장의 비밀일기' 과거 사건에 대한 회상일기입니다.


2024년 4월 22일, 화학연맹에서 방송차량을 지원받아 유진기업 본사가 위치한 여의도 파크원 빌딩 앞에 섰습니다. 같은 해 4월 4일, 중앙노동위원회는 위원장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정하였으나, 회사는 복직 요구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1년 넘게 지연되고 있던 단체협약 체결을 촉구하는 우리의 요청 역시 공문만 오갈 뿐이었습니다. 공문만으로는 더 이상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에 처음으로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과거, 거리에서 마이크를 잡고 외치던 이들을 시끄럽다고 비난했던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하루였습니다. 그날의 기록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공문만 오가는 노사관계, 1년 8개월의 단절

2024년 4월 22일, 화학연맹의 방송차량을 빌려 유진기업 본사 앞 여의도 파크원 빌딩 앞에 섰다.

중앙노동위원회가 나에 대한 해고를 부당하다고 판정한 지 18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2024.4.4. 중노위 재심판정)

복직을 요청하며 수차례 공문을 보냈지만, 회사는 별다른 회신 없이 침묵했다.

단체협약 체결 요구도 1년 넘게 진전되지 않고 있었다.

더는 공문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에 처음 거리로 나서게 됐다.

합리적 대화를 거부한 건 회사였다

노조가 설립된 이후 지금까지 회사는 간담회 요청을 단 한 번도 수용하지 않았다.
교섭 역시 '회사 지정 시간·장소·형식'이 아니라면 진행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2023년 11월 상급단체인 화학연맹에 교섭을 위임한 뒤에도 사정은 같았다.

공문만 오갈 뿐, 상호 신뢰를 전제로 한 대화는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교섭의 지연과 간담회 불응은 회사가 먼저 택한 태도였다.

내가 시위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거리에서 소리를 높이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민중가요, 마이크 소리, 구호의 반복은 나에게 그저 시끄럽고 비합리적으로 느껴졌고,
청각이 예민했던 탓에 그런 자극은 더욱 스트레스를 주었다.

그랬던 내가 여의도 한복판에서 방송차량에 올라 마이크를 잡게 됐다.
과거의 나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거리로 나온 이들 대부분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던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조합원은 멀리 있고, 시간은 없다

방송시위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진행됐다.
조합원들이 전국 각지 사업장에 흩어져 있는 구조상 함께 거리로 나서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성수기엔 한 사람의 부재도 생산에 큰 영향을 준다.

그래서 문자로 유튜브 생중계 링크를 공유하며 조합원들의 마음이 함께하기를 바랐다.

카메라와 통제, 익숙했던 방식과 마주하다

시위가 시작되자 본사 소속 몇몇 직원이 내려와 내 모습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불편했지만 공공장소에서의 공개촬영이라 생각하며 넘겼다.

그런데 잠시 후, 수풀 너머에서 누군가가 내 쪽을 향해 촬영 중인 모습이 보였다.
회사 홍보팀 직원으로 추정되는 사람이었고, 마이크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저기 촬영하시는 분들, 다 보입니다. 사전 고지 없는 촬영은 자제해주십시오.”

그들은 이내 촬영을 멈추고 자리를 떴다.
나 역시 과거 홍보팀에 있었고, 수많은 시위를 현장에서 대응해왔다.
하지만 그때 나는 숨지 않았다. 당당히 마주했다.
그 점에서 지금의 방식은 씁쓸하고 아쉽게 다가왔다.

장소 선정에도 남은 기대

파크원 타워1 앞은 유동 인구도 많지 않고, 시위 장소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도 있다.
그럼에도 그곳을 선택한 건, 마지막 남은 기대 때문이었다.

길 건너 유진빌딩이 아닌 파크원 앞에 선 것은 회사와의 대화를 위한 최소한의 제스처였다.
또한 장소 선정 과정에서 회사 측과 비공식적인 접촉이 있었고, 일정 부분 양해가 이뤄진 것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당일, 직원들이 시위 장소로 이동하지 못하도록 내부 통제가 있었다는 소식과
촬영과 같은 대응을 보며, 이제 더는 대화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로 나서는 건 선택이 아니다

거리에서 싸우는 일이 얼마나 외롭고 고된 일인지 비로소 체감했다.
대화가 단절되고, 회사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현행 노동법은 대부분 '합의'를 전제로 하고 있지만,

회사가 이를 거부할 경우 조합은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법이 보장하는 권리조차 '합의' 없이는 실행되지 않는 현실,
시간이 흐를수록 조합은 모래알처럼 흩어질 위험에 놓인다.

그래서 거리로 나섰고, 앞으로도 나설 수밖에 없다.
회사가 응답하지 않는다면 유진빌딩 앞으로,
그마저 거부된다면 국회 앞으로, 우리의 목소리는 계속될 것이다.

보장된 권리, 막힌 현실

법이 보장한 노동권이, 현실에서 실현되는 날은 올까?

외롭고 서러운 하루였지만, 회사의 응답 없는 대응은 오히려 내 투쟁의지를 더욱 뜨겁게 만들었다.


KakaoTalk_20240422_113243786_05.jpg 거리에서 방송시위를 하는 모습
KakaoTalk_20250706_211509737.jpg 불쑥 나타난 카메라...꼭 이렇게 까지 해야 했나?


이 기록은 단지 나의 하루가 아니라, 수많은 노동자의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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