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한 줄이 가슴을 무겁게 만든 날

2023년 10월 23일 – YTN을 인수한 유진기업, 왜?

by 기록하는노동자

※ 매주 목요일 발행되는 ‘버티는 중입니다 위원장의 비밀일기’는 과거 사건에 대한 회상일기입니다.


2023년 10월 23일, 부당해고 상태로 싸움을 이어간 지 한 달을 조금 넘긴 시점이었습니다. 하루 일정을 진행하던 중, 유진기업의 YTN 인수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날 느낀 소회와, 이후에 떠오른 생각을 덧붙인 일기입니다.
속보로 전해진 YTN 인수 소식

부당해고 당한 지 한 달 남짓.
아침 출근 시간에 인천공장 동지들에게 간식과 노동조합 입장문을 건네고,
오후엔 법무법인 오월에서 강호민 변호사님과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 행정법원 사건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 속보 알림이 울렸다.
“유진기업, YTN 인수대상자로 선정”

노조를 이렇게나 탄압하는 기업이 뉴스보도 전문채널을 갖게 된다는 소식을 들으니 여러 생각이 스쳤다.
그중에서도, 과거 하이마트와 동양 인수 때처럼
이번에도 현장 구성원들에게 부담이 전가될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먼저 떠올랐다.

희생 위에 쌓인 회사의 성장

유진기업은 2000년대와 2010년대 여러 차례 M&A로 덩치를 키워왔다.
그 과정에서 캐시카우 역할을 했던 유진기업 구성원들은 늘 희생과 헌신을 요구받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2010년 부채로 연간 이자만 600억 원을 감당해야 했을 때도,
2013년 건설경기 침체가 시작됐을 때도,
노동자들은 회사가 세운 목표를 맞추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동양을 계열사로 편입시키기 위해
전 직원이 하루 2~3만 보씩 걸으며 주주들을 찾아다니고,
멀리 1000km 가까운 거리를 운전해 주주를 설득하던 시절도 있었다.

보상은 부족하고 압박만 반복되다

그렇게 버텼음에도 하이마트는 매각됐고,
우리가 받은 건 소액의 유진기업 주식뿐이었다.
건설경기가 폭발적으로 오르며 유진기업이 1조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린 2021년에도
성과급은 고작 한 달 치 기본급 수준이었다.

회사의 체급은 대기업 반열에 올랐지만
제대로 된 보상 시스템은 찾기 어려웠다.
실적 달성을 위한 압박이 반복되는 구조 속에서
YTN 인수 뉴스는 다시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3200억 원의 자금, 그리고 불안

몇 년간 진행된 초저온창고, 리모델링 브랜드 런칭, 에이스하드웨어 매장 오픈 등으로
회사의 재무 여력이 넉넉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번 인수를 위해 3200억 원이라는 거금을 어떻게 조달할지가 의문이었다.
결국 그 부담이 현장 노동자들에게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됐다.

노조 설립 1년 만에 위원장을 부당하게 해고한 기업이
언론사의 대주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들었다.
경영진의 판단을 전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왜 YTN을 인수해야 하는지,
구성원들에게 그 이유와 기대효과를 설명해 줬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회사가 커지면 좋은 것 아니냐”는 단순한 말만 전달됐다.

기대와 회의가 교차하다

한편으로는 언론의 관심을 받게 되면

우리 노동조합의 억울함도 세상에 알릴 기회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그간 YTN·MBC 등에 수차례 제보 메일을 보냈지만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한 경험을 떠올리면

그것이 현실이 될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무거워진 발걸음

YTN 인수 과정에서 현장 구성원들이 또다시 감내해야 할 고충이 얼마나 될지 걱정이 앞선다.
오늘도 회사의 부당노동행위에 관한 서면을 제출하며
진정 언론사를 인수할 자격이 있는지 되묻게 된다.

노동조합과 상생하는 모습을 보여줬더라면
지금 이 인수 과정이 훨씬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아쉽고, 안타깝다.

변호사 사무실을 나서는 길,
앞으로 들려올 동지들의 한숨과 고단함이
벌써 귀에 들려오는 듯했다.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그리고 현재 상황

YTN 인수 이후, 건설경기 악화로 유진기업의 재무구조는 악화돼 주채무계열에 편입됐다.
그 사이 현장은 실적 압박, 조직개편, 최소 인력 배치, 보상 축소로 힘든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대리급 숙련자들의 퇴사도 잦아졌다.
최근에는 YTN 인수 과정의 위법 여부를 두고 ‘김건희 특검’이 수사를 진행 중이다.
그럼에도 경영진은 여전히 “노조가 발목을 잡아 회사를 어렵게 만든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노동조합의 건전한 견제가 있었다면
우리는 지금, 그간 쌓아온 재원을 바탕으로
건설경기의 어려움을 더 잘 버텨낼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이라도 경영진이 현명한 판단을 내리길 바란다.

KakaoTalk_20250804_175413375.jpg 상암동에 있는 YTN사옥
이 기록은 단지 나의 하루가 아니라, 수많은 노동자의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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